한국산 도자기, FDA 승인 (27회)

1963년에 박정희 정부가 출범하고 1965년에 한일협정을 조인해 청구권 자금을 받고, I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을 통해 돈을 벌어들인 우리나라는 1970년에 들어오며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고 경부 고속도로를 개통하며 비로소 경제발전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그러나 경공업인 가발이나 섬유 같은 재품을 수출하는데 그쳤지만, 1970년에는 수출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나 삼성의 자동차나 조선, 전자 같은 제품의 수출은 아직 요원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의 무역이 성장하는 데는 이병철이나 정주영 같은 기업가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시대를 앞서 개척했던 젊은이들이 있었다.

I960년대 초기 당시 정부는 세 가지 정도의 당면 과제를 갖고 있다. 서민들의 생활, 국가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이었다. 정치적 한계를 경제 발전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박정희 정부는 공업단지의 신호탄으로 경공업만 하던 공업단지에서 중화학 공업이라는 한충 성장된 공업단지 조성으로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조국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서 나는 무역에 모든 것을 바치기로 했다. 가난했던 조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무엇이든지 조국의 상품이면 미국 시장에 팔리고 결심하고 홍보에 나섰다. I960년대까지 막그릇만 굽던 국내 도자기 산업은 오늘날 세계적인 수준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대표주자인 한국도자기도 세계 톱5의 도자기 브랜드로 성장, 한국을 널리 알리는 상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국산 도자기의 최초로 미국 진출 이면에는 우리 회사의 공로가 바탕이 되었다. 1970년 회사를 설립하고 TWA 사와 거래를 트게 되면서 홍보를 했다.

“기내에 필요한 제품은 무엇이든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기내 담당자로부터 문의를 받았다.
“기내식 그릇인 캐서롤(Casserole)이 일본 제품인데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만들 수 있겠습니까?”

기내식 그릇은 표면에 바르는 유약, 수분 흡수율, 식약청(FDA) 검사에 통과를 해야 하는 등 조건이 아주 까다로웠다. 나는 1970년 한국을 방문해 1943년에 설립된 한국도자기의 김동수 사장을 만나 청주공장을 둘러보았다. 그 무렵 대부분의 도자기 공장들은 가내수공업 형태로서 재래식 불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실정이었다.

만일 납품이 되면 재래식 가마에서 굽는 생산방식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현대식 오븐으로 굽는 생산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도자기 압력, 구울 때 온도, 도자기의 강도와 음식을 담았을 때 색깔이 변하지 않아야 하는 등의 FDA와 TWA 사가 제시한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했다.

한국도자기 제품을 뉴욕의 US Testing Lab에 의뢰해서 FDA 규정대로 테스트를 하러 보냈다. 뉴욕에 한국산 도자기 샘플을 테스트를 보내고 나서 마음을 졸였다. 단순히 한국도자기 회사의 제품을 테스트 받는 게 아니라 한국의 도자기가 세계시장을 두드리는 시험대와 같았다.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기간이 그토록 지루할 수 없었다.

마침내 성공적으로 FDA에서 공식 승인을 받게 되었다. 한국산 도자기가 최초로 FDA 승인을 받는 역사적인 일이었기에 한국도자기뿐 아니라 나 역시 무척 감격스러웠다. TWA사에 납품을 하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한국 도자기가 현대화된 생산설비를 갖추고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게 된 계기는 마련되었다. 한국도자기 측은 ‘미국 FDA 승인 미국 수출’ 이라는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했다.

수주를 받기까지 샘플에 대한 까다로운 승인 절차마다 마음을 졸였다. 설명회에서 담당자가 보는 가운데 도자기 샘플을 여러 번 방바닥에 던져보았는데 깨어지지 않았다. 그런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어 담당자의 마음을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담당자가 물었다.

“한 달 동안 제조할 수 있는 수량이 얼마입니까?”

담당자가 물으며 내미는 연간 소비량 리스트를 보며 깜짝 놀랐다. 무려 연간 40만 개였다. 나는 감격에 벅차 잠시 말을 잊었다. 기내식 그릇을 수주하려고 한국을 몇 차례 방문했던가? TWA사 관계자와 FDA에 들어갈 자료 등을 만들고 테스트 의뢰하며 보낸 1년은 또 얼마나 초조했던가?

가슴 졸이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연간 계약이 체결되자, 마치 올림픽에서 일본 유도선수를 엎어치기 한판으로 승리한 느낌 이었다. 수주 성공으로 인해 1973년에는 한국도자기로부터 북미주 지역 총대리점으로 위촉받기도 했다.

▲ 부친이신 김창화 회장，Kim 부사장，김영주(뒤)，성기초 회장

일본 제품을 밀어내고 한국 제품이 미국 항공사 기내에 실려 세계인의 그릇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가? 임진왜란 때 한국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다기를 정착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은 역사 문헌에서도 숱하게 찾을 수 있다.

한국도자기의 미국 항공사 입성은 어쩌면 한일 양국의 도자기 경쟁관계에서 쟁취한 승리를 상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록 작은 승리였지만 지난 세월, 일제의 압제에서 고통받아온 한민족이 이제 독립해서 세계무대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마치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굳은 표정과 가슴에 달린 일장기. 나라 잃은 한 위대한 선수의 가슴 아픈 심정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면서 마치 그의 한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1070년대 초반, 해외 도자기 시장에서 일본과 겨루어 승리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한국산 도자기의 미국 진출을 계기로 무역도 더욱 활발해졌다. 한국도자기협동조합이 결성되고 한국도자기 김종호 회장과 김동수 사장, 밀양도자기의 성기초 회장을 비롯한 각사 대표들이 도자기 대미 수출을 위한 전시회 개최를 위해 협조를 구해왔다.

우리 회사는 캔사스시티 다운타운 컨벤션 센터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도록 적극 후원했다. 그 일로 대한도자기공업 협동조합으로부터 1974년에는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그 이후로 한국도자기를 비롯해서 밀양도자기, 행남자기, 동양요업 등과도 거래하게 되었다.

일본 제품보다 가격 경쟁이 좋아서인지 유나이티드(United) 항공사에서도 여러 가지 기내식 식기류들을 주문해서 납품했다. 납품 경쟁상대는 일본 제품을 취급하는, 유태인이 경영하는 식당 재료 전문회사였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하루라도 경계의 끈을 느슨하게 하면 경쟁사에게 밀리게 된다.

기내 그릇을 판매하며 납품기일에 맞추지 못할 문제가 발생했다. 사업은 신용이 생명이다. 한국에서 30~40일가량 걸리는 배편에 선적하면 납품 기일에 열홀 가량 늦어지게 되었다. 기내에 그릇이 탑재가 안 되면 승객들이 식사를 못하게 되는 그야말로 큰일이 벌어진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신용을 잃지 않으려고 항공편으로 한 컨테이너 분량인 4만 파운드를 수송하도록 조치했다.

회사는 납품가격보다 5배 이상 손해는 봤지만 고객과의 신용을 잃지 않고 납품을 계속할 수 있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한 주가 지난 월요일 오후 킴(Kim) 부사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들어왔다.

“Good news?(좋은 소식이라도 있나?)”
나는 왠지 좋은 느낌 이 들었다.

“항공사 몇 군데서 더 전화가 왔습니다. 유나이티드(UA), 팬암(Panam), 이스턴(Eastern), 델타(Delta), 브레니피(B raniff Air Line) 등 여러 곳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Kim 부사장의 눈빛이 빛났다. 그간 고생한 노력이 이제야 풀린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시 내 방으로 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감사 기도를 드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대학 시절 마케팅 수업에서 ‘The Customer is King(고객이 왕이다)’ 이라는 강의가 생각났다. 회사를 운영하면 예기치 못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제품에 하자가 생겨서 클레임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납품기일에 선적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들에게 믿음 경영, 신용을 지키는 일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때문에 눈앞의 작은 이득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멀리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기업이 오랜 세월 생명을 지속하려면 시대의 흐름에 신속하게 대처하면서 탄력 경영을 해야 하기에 그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처럼 경쟁사 제품에 대한 정보와 노하우를 알려고 노력했고, 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신용거래는 필수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넓히는 일도 중요한 경영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