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0년이 지난 1993년이 되어 군민회는 몹시 어지러웠다. 그동안 부적격한 군민회장들이 거쳐 가면서 질서가 어지러워진데다 1992년도의 회장은 중도하차를 시키는 사태까지 일어나 결국 그 수습을 위해서는 내가 가장 적임자라고 하여 재차 제39대 군민회장의 잔여임기 승계자로 추대되었던 것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재차 책임을 맡았을 때의 군민회 분위기는 그전과는 너무나 판이했다. 그동안 돈푼 꽤나 냈다고 자격 없는 회장들이 등용되면서 질서가 어지러워질 대로 어지러워졌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듯했다. 나는 1년 동안 예전과 같은 질서를 잡아 놓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이번에도 1993년도판 군민수첩을 제작하는 업적을 남기고 임기를 마쳤다.
나는 그 새로 만든 수첩을 평북도지사에게 보고 겸 드렸다. 그런데 내무장관께서 이북 5도청을 순시하면서 그 수첩을 보시고 그동안 말만 듣던 이산가족이 1개 군의 숫자가 2천명이다 되는 것을 확인하시고 크게 감탄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다른 군에서도 그러한 월남가족의 수첩을 만들도록 권장하게 되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다른 군의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이북5도청에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도지사를 각 도에 1명씩을 두어 월남민들의 동향과 북한 실지 회보의 기회에 대비해 각 도별로 명예군수와 명예면장을 임명하고 약간의 거마비까지 지급하며 월남도민에 대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각 도별로 민선에 의해 선출한 도민회장 산하에 군민회와 면민회를 조직하여 군민 상호간의 친목과 유대를 도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체육회와 민속보존회, 부녀회, 새마을협의회, 그리고 청년회 등의 체게적인 조직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 이북5도청의 임무라고 하겠다.
그 중 민속보존회에서 하는 일이라면 국가에서 1년에 한 번씩 전국적으로 실시하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이북5도 각 도별로 전국의 다른 도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출전하여 이북5도 각 도마다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를 하면서 그 보존유지를 하고 있는 부서가 민속보존회다.
나는 1983년 6월 27일에 평북민속보존회 제2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3년간 직무를 수행한 바 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내가 민속에 대해 별로 가진 지식은 없으나 민속놀이도 일종의 예능에 속하는 부문이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수락하였던 것이다.
내가 책임을 맡은 후 첫 번째로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게 된 것은 1983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경북 안동시 시민운동장에서 개최하는 제24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였다. 출연종목은 내가 처음으로 개발한 “달래강 망패싸움” 놀이였는데 출연자들은 각 군에서 선출한 40대에서 60대까지의 청장년 80명이었다.
“달래강 망패싸움” 놀이란 무엇인가? 우리 겨레의 애환과 조상들의 숨결이 담겨져 있는 소박한 고유문화로 “망패싸움” 놀이는 오랜 옛날부터 조상들이 오랑캐의 침해로부터 향토를 지키기 위해 손쉬운 자위수단의 하나로 평소생활을 통하여 부락민의 협동심과 운명공동체 의식을 훈련의 일종으로 발전시켜 왔다.
즉 정월 대보름날이나 5월 5일 단오절을 기하여 부락 단위로 젊은 청년들로 하여금 동ㆍ서군으로 편을 지어 개천을 사이에 두고 망패싸움을 하여 우열을 가리는 하나의 석전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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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충주 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된 제 25회 민족예술경연대회에서의 달래강 망패싸움 놀이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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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패란 허리띠 모양의 천 중앙부에 가죽으로 돌을 싸게 만들어 빙빙 돌리다 한쪽 끝을 놓으면 돌이 멀리 날아가도록 하는 용구를 말하며 옛날 손쉬운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싸움이 평안북도 정주지방에서 가장 크게 성하였고 특히 정주지방을 흐르는 달래강변의 망패싸움은 이름난 것이라 하여 “달래강 망패싸움” 놀이로 명명하였던 것이다.
이 달래강 망패싸움 놀이가 어데 각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전을 해 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출연자들을 한강변 고수부지로 인솔해 나가 내가 직접 연출을 하며 수차례 연습을 해 보았으나 처음 해 보는 싸움놀이라 정리정돈이 잘 되지를 않았다. 심지어는 당일 안동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까지도 연습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대회에서는 새로운 작품의 민속놀이였기 때문에 많은 기대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연습부족으로는 엉성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총 24개 팀 출연 중에서 3등에 해당하는 문예진흥원상(공로상) 상금 60만원을 수상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새로 발굴한 신 작품으로는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수상을 하게 되어 그동안 출연자들의 노고에 대한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다.
다음해 1984년 9월 21일부터 23일까지 3일간 충북 충주시 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한 제25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도 역시 이 “달래강 망패싸움” 놀이의 작품으로 출연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인원을 출연시켜 더욱 충실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오산학교 학생 약 220명을 동원하였다.
오산학교는 본래 정주에 있었던 학교로 현재는 한남동에 이전 설립하고 있으나 평북과는 피할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관계이므로 한 번쯤은 협조가 가능하다고 보아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인원을 참가해 줄 것을 의뢰했던 것이다. 마침 전제현 교장은 오산학교 출신이어서 쾌히 승낙해 주시었다. 게다가 전 교장은 특별한 관심을 갖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충분한 연습을 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드디어 안동에서 개최하는 전국 18개도, 시 21개 팀 2200여 명이 출연하여 열띤 경연을 하는 제25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우리 평북 팀은 220명의 대인원이 출연하여 실전을 방불케하는 열연을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선수가 출전 행진하는 과정에서 좀 더 흥미롭게 한다고 호랑이 춤을 넣은 것이 그만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애석하게도 출연자 대표인 유재영 씨의 개인 연기상 4등에 해당하는 상금 30만원만을 수상하는 것으로 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인 1985년 9월 19일부터 20일까지 2일간 강릉시 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는 제26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는 영변의 성황대제(당굿)놀이라는 작품으로 출연하였다. 이 작품은 그전에도 한번 출연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출연인원은 무속인 협회에 속해 있는 무속인들 47명과 임원 등 61명이었다.
내용은 글자 그대로 당굿 무속놀이였고 무속인들이 실제 하는 것이어서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당초 19일 열릴 예정이었던 입장식이 우천으로 20일로 연기가 된 데다 우리 팀의 출연 장소는 강일여고 체육관에서 하는 등 대회가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를 못하였던 것이었고 게다가 지난번 안동대회나 충주대회와 같이 축제분위기가 되지를 못한 점이 아쉬웠던 대회였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우리 팀은 역시 출연자 대표자인 이선호 씨 개인 연기상 30만원 상금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3년 동안 세 번 출전하여 모두 다 입상을 하는 큰 공을 남겼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