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입문과 신천 강씨 (4회)
  제1장 박천에서 만주와 신천으로

기독교 입문

내가 신천으로 이주하여 처음 정착한 곳은 신천읍 사직리라는 조금 언덕진 곳에 위치한 초가집이었다. 초가집은 1년에 한 번씩 볏짚을 엮어 지붕을 덮어야 한다. 나는 부친께서 틈틈이 하시다가 남겨 둔 볏짚 엮기를 배우기도 할 겸 해보려고 하였으나 처음 하는 일이라 잘되지를 않았다.

그러던 중 아랫동네에 살고 계시는 조 씨라는 할아버지가 오셔서 지켜보시다가 나의 모습이 하도 딱했던지 볏짚 엮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친절하게도 그 일을 손수 도와주시고 지붕 위에 올려서 지붕을 완전히 덮어 주기까지 하는 친절을 베풀어주기도 하였다. 그래 나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고비를 드리려고 했지만 조 씨 할아버지는 절대로 사절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약간의 돈을 받으셨으나 그 돈으로 성경 찬송을 사서 나에게 주면서 교회에 나가기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조 노인은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매 주일이면 교회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찾아와 교회에 동행하기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런지 그것이 싫어서 주일날 그 시간만 되면 일부러 어디론가 피하다가 하루는 뒷산 솔밭에 가서 은신해 있는데 조 노인은 그곳까지 찾아와 교회에 동행을 권유해 왔다. 그렇게 끈질긴 권유를 거절하기가 미안해 한두 번 교회에 따라 간 것이 결국 신앙을 갖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는 교회에 나가기 전부터 기타를 치는 등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는 더욱 음악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또 성가대며 관악부며 심지어는 음악부장 직을 맡기까지 하였다. 관악에는 더욱 취미가 있어서 클라리넷, 트럼펫, 트럼본 등을 손쉽게 배워 찬송가 정도는 물론 합주가 가능해지기까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음악성과 재능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 조 씨 노인은 나에게 영생을 얻도록 인도하신 은인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조 노인으로부터 인도되어 출석하게 된 교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천서부교회였다.

신천에는 서부교회와 동부교회 두 교회가 있었는데 두 교회 모두가 장로교회였다. 그리고 서부교회는 나를 비롯해서 어머니와 아내가 처음 주님을 영접한 교회다.

우리 가족이 사직리에 살다가 생활형편이 조금 나아져서 새로운 기와집 주택을 사고 척서리로 이주를 하였는데 서부교회는 그 집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교회 건물은 현대식 건물이 아니었으나 포근하고 어딘지 모르게 살림집 안방 같이 안정감을 주는 꽤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교회였다.

내가 다닐 때의 교인 수는 약 1천여 명 정도로 그때 형편으로는 상당히 큰 교회라고 하겠다. 담임 목사는 우리나라 교역자로서는 102세의 최고 장수를 누리시었던 김경하 목사님이 시무하셨는데 김 목사님께서 월남하시고 나서는 후임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 부임하시어 그 공산 치하에서 끝까지 남아 교회를 지키시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는 도중 강당에서 공산당에게 총격을 당해 순교를 하신 교회다. 어머니께서는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하시었다는 말씀을 나에게 전해 주시었다.
 
▲ 신천 서부교회 / 김익두목사가 평생 시무하다 순교한 교회이다 [출처 ;  당당뉴스]

 
요약한 신천 강씨(信川 康氏) 족보

신천(信川) 강씨(康氏) 대동보 기록에 의하면 강씨의 시조는 강호경(康虎景) 성골장군(聖骨將軍)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14世(세) 지연(之淵) 부원군(府院君)의 묘가 황해도 신천군 북부면 산죽리 광복동(黃海道 信川郡 北部面 山竹里 廣福洞)에 모셔지면서 부터는 중조(中祖)로서 신천 강 씨 본관이 되는 유래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지연(之淵)중조를 1世(세)로 하여 현재 나의 세대까지 25世(세)가 된다고 하겠다.
 
시조(始祖)
강호경(康虎景) (성골장군) ----- 14世(세) 之淵(지연)

중조(中祖) 1世(세)
之淵(지연) (부원군) ----- 24世(세)   선응(善應) 1897. 3. 22生(생)   1947. 3. 20卒(졸)
                                    장선화(張善嬅) 1900. 5. 23生(생)   1982. 11. 30卒(졸)

25世(세)  祥福(상복) 1923. 2. 1生(생)
              李春明(이춘명) 1922. 8. 18生(생)

26世(세) 希光(희광) 1943. 12. 30 希文(희문) 1951. 7. 26 希慶(희경) 1954. 3. 1生(생)
             李相福(이상복) 1949. 4. 3 黃惠珠(황혜주) 1957. 8. 19 李慶愛(이경애) 1960.
             1. 3 生(생)

27世(세) 太信(태신) 1973. 8. 25 太賢(태현) 1982. 2. 18 太昱(태욱) 1983. 3. 25生(생) 
              太一(태일) 1988. 2. 19生(생)

지연 부원군에 관한 전해 오는 일화는 유명하다. 황해도 신천고을에 사또가 부임하면 3일이 못되어 급사하는 이변이 발생하는 것이 수차나 반복되었다. 그러므로 이 소문을 들은 사또들은 누구나 신천에 가는 것을 사양하고 있었는데 어떤 용감한 사또 한 분이 자청해서 가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신임 사또는 부임 첫날부터 횃불을 밝히고 병사를 동원하여 청사를 지키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자정이 지나자 하얀 소복을 한 노인 한 분이 나타나 자기의 소원을 풀어 주면 신임 사또를 해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 노인의 소원을 물었더니 그 노인은 내일아침 이 청사의 오른쪽 기둥 밑을 파면 해골이 나올 테니 그 해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장지는 많은 만사를 들고 갈 때 회오리바람이 불어 만사 하나가 떨어져 하늘중천으로 날아가다가 떨어지는 그곳을 묘지로 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래 사또는 그리하겠다는 굳은 약속을 하자 그 노인은 어데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음날 사또는 즉시 지난밤에 나타났던 노인의 말대로 해보니 모두가 그대로여서 장례를 성대히 거행하는데 마침 난데없는 돌개바람이 불어 만사 한 장이 하늘높이 훨훨 날아가는 것을 쫓아가 그곳에 묘소를 정하였고 그곳이 바로 신천 강 씨 선조의 묘소가 된 신천군 북부면 산죽리 광복동이었다. 나는 지난날 신천에 거주할 때 이곳을 한번 찾아가 본 일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첨언하는 것은 강 씨에는 많은 종파가 있지만 모든 종파들은 이 중조의 같은 후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방과 소련군 진주 (3회)
  삼팔선 월경 1차 실패 (5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