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선 월경 1차 실패 (5회)

어느 날 보위부에서 교회 청년 면려회(청년회) 간부들은 모두 출석하라는 통보가 왔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공산당은 드디어 교회 탄압의 첫 단계로 교회 청년회를 해산시킬 목적으로 우선 청년회 간부들을 불러들였던 것이다.

나는 당시 청년면려회 음악부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호출을 당한 것이다. 그들의 술책은 청년회를 해산하든지 아니면 해산할 때까지 계속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그 술책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가 출두를 한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항복을 하는 것이 되어서 교회 청년회 간부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기로 하였다.

그러나 피해 다닌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장기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월남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당시 월남한다는 생각은 그저 단순한 마음에서 잠시 위기를 피했다가 다시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큰딸 금자(錦子) 6세와, 장난 희광(希光) 4세, 둘째딸 금숙(錦淑) 1세, 그리고 처와 같이 부모님 슬하에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경제적 부양책임은 없었다.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떠나는 길이 실제로는 굉장히 먼 길이고 생사가 걸려 있는 길이며, 어쩌면 불귀(不歸)의 객(客)이 될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가족과 생이별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그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떠나는 시간은 저녁 시간을 택했고 소지품은 배낭에 옷 한두 벌을 넣었고, 혹시 여비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를 명주 두필과 내가 외로울 때 달래 줄 수 있는 클라리넷 악기 하나를 넣어 등에 메고 도망치듯 이웃의 눈을 피해 집을 나섰다.

신천에서 해주까지는 150리였다. 38선을 넘는 곳은 해주 앞바다로 이곳에서 돛단 목선을 타고 파라개를 건너 청단이라는 남한 땅에 도착한다는 예비지식만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해주 앞바다 풀숲에 조그마한 오막살이집 한 채가 있다. 이곳은 월남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안내자를 만나 월남을 약속 받는 하나의 아지트였다. 그곳에 해가 완전히 지고 칠흑같은 캄캄한 밤이 되어서 도착하였다. 모인 사람은 약 10명 정도 그 중에는 잘 아는 친지 한 사람도 있었다.

출발 시간은 초승달이 뜨고 밀물이 들어오는 밤 자정 경으로 정하였다. 배를 타러 가는 방법은 만일을 위해 2인조씩 조를 짜고 앞사람들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뒤따라가는 것이었다. 맨 선두에는 안내자와 일행 중 한 사람이 걸어 나가고 나는 두 번째로 따라갔다. 옷은 팬티만 입고 모두 벗어서 배낭에 넣고 알몸으로 감시병에게 잘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배를 타는 곳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어 나가야 했다.

가는 길은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갯벌에 군데군데 나 있는 풀 사이를 이리저리 피하며 앞서가는 안내자만 보고 조심조심 따라갔다. 때로는 풀숲 뒤에 앉아서 주위를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허리를 굽히기도 하며 기어가다시피 걸어가기도 하며 약 20분 정도 걸어 나갔을 때 저 멀리 바다 위에 뜬 배 한 척이 달빛에 어렴풋이 보였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 배 위에서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아닌가. 그 불빛은 분명히 담배 불빛이었다. 나는 생각하기를 저렇게 겁 없는 사람들이 있나, 소위 38선을 넘어가겠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담배를 피우면서 반짝거리는가 라고 속으로 꾸짖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배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앞에 가던 안내자는 보이지를 않는다.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또 한 척의 배가 아직 물에 뜨지 않은 채 갯벌 위에 있는 것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옳지 저 배가 우리가 타고 갈 배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그 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드디어 배 바로 앞까지 갔다.

이것이 웬일인가. 돌연 따발총 구멍을 내 가슴에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고 하늘이 노랗게 보이며 전신에 힘이 쫙 빠지면서 아무 저항도 못하고 그저 갯벌에 힘없이 펄썩 주저앉고 말았다.

▲ 월남시킬 배를 찾아가던 중 보위부원의 따발총이 가슴을 겨누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폈다. 내 앞에는 소위 보위부 경비원 한 명이 서서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하시오 라고만 하는 것이었다. 배 위에와 주위에는 나와 같은 약 10여 명의 월남하려는 사람들이 서성대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 동안 큰 보따리를 지고 오는 사람, 심지어는 옷장을 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간은 점점 흘러 밀물이 들어와 배가 뜰 정도가 되고 주위 갯벌의 낮은 곳에는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에는 저 보안대원에게 끌려가면 어떤 벌을 받을는지 그리고 월남하겠다는 꿈은 산산무산이 되어 버리겠지 라는 온갖 상념이 스치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어떻게 하든지 이 자리를 피하는 방법이 없을까, 이 많은 사람들이 저자 하나를 처치할 수는 없을까, 이런저런 옳지 못한 생각까지도 교차되었다. 그러나 저 앞바다 물위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아까부터 담배를 피우며 감시하고 있는 사람이 같은 보위부원이라는 점에서 감히 소동을 부릴 수도 없었다.

결국 일행과 의논하여 약간의 금전을 수집해서 뇌물을 주며 해결을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수집된 화폐는 보기에도 푸짐해 보였다. 내가 그것을 들고 총대를 들고 있는 보안대원에게 가서 사정을 하며 교섭을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응해 주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점점 흘러 이번에는 우리가 타려던 배도 완전히 물에 뜨게 되고 갯벌 주위에는 밀물이 상당히 들어왔다. 저지대에는 물이 무릎까지 차게 되었다.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내가 거두어 들고 있던 지폐뭉치를 일행 중 나이가 지긋한 분에게 맡기면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겠으니 형 씨께서 좀 수고해 주십시오 하고는 보안대원과 조금 떨어진 물웅덩이에 들어섰다.

물은 벌써 허벅다리까지 차게 되어 나는 엄살을 하며 보안대원에게 말하기를 “물이 벌써 가슴까지 올라왔는데 사람이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니오. 빨리 물을 건넙시다” 하며 재빨리 물을 건너면서 보안대원 쪽을 바라보았다. 보안대원은 자기도 겁이 나는지 군화를 벗으면서 물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사이 나는 웅덩이 물을 다 건너고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거의 어둠에 묻혀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였다.

나는 이때라고 생각되어 ‘하나님 나 살려 주십시오’ 하며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얼마나 뛰었는지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 뒷산을 향해 한참 가다 보니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어두운 밤중에 혼자서 공동묘지 사이를 달리고 있었으니 평상시 같으면 어떻게 그런 곳을 갔을지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해진다. 그러나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곳도 벗어나 처음 출발 지점인 바닷가 오막살이집에 도착했다.

숨을 헐떡이며 방문을 열어 보니 초롱불 밑에 우리 일행은 모두 다 모여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붙잡혔던 것은 나 혼자 뿐이고 다른 일행은 붙들리기 직전에 모두 피신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