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은 재임 중 남북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해 보기 위해 8.15 경축을 기해 남북 이산가족은 남북을 자유왕래 하자는 대북정책을 선포한 일이 있다. 그러나 북에서는 하등의 반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냉소를 하는 태도였다.
당시 남북은 서로 남북통일을 하자는 제창은 그럴듯하게 외치면서도 실지 이렇게 구체적인 행동을 하자는 데는 무반응의 태도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모처럼의 획기적인 제안을 했음에도 성과가 없자 민간외교를 펴서라도 세계 주요국가 인권기관에 호소를 해보자는 방침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홍성철 통일원장관 때에 이복5도에서 선출한 각 도 2명씩의 대표 10명과 1천만 이산가족 대표 조영식 박사와 그의 사무비서관 겸 통역관 1명 등 모두 12명이 일행이 되어 세계 인권기관을 방문하여 우리의 입장을 호소하기로 하였다. 여기 평안북도 대표로는 나와 지금은 고인이 된 한공철 전 도민회장이 선발되었다.
일행 12명은 물론 이산가족들이었고 경비는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료를 포함한 금액의 반 정도를 개인별로 부담을 하고 잔여금은 통일원에서 보조하는 것으로 하였다. 각 도별로 선발대회도 성대히 거행하였거니와 일행은 청와대로 초청되어 노태우 대통령으로 하여금 오찬을 겸한 격려도 받았다. 그리고 출발 시에도 성대한 환송을 받으며 의기에 찬 출발을 하여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기관이었다.
드골 공항에 내려 보니 현지 우리 공관 직원들은 공항까지 영접을 나와 교통편이며 숙박절차, 또 우리가 찾아가 호소할 인권단체의 방문일정 등을 상세하게 계획해 놓고 있었다. 이는 물론 본국 통일원의 지시에 의한 계획된 행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현지 통역까지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역할은 다만 인권기관에 가서 우리의 사정을 하소연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의 통일의지에 응하도록 설득을 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유네스코 규범국장대리 파츠코브스키 씨였다. 우리의 호소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는 부모 처자와 친척이 서로 헤어진 지 40여 년이 되도록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를 못하고 생이별을 한 부모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편지왕래조차도 못하고 있는 현실을 설파했다.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도 하지만 이는 인간의 도리 상 있을 수 없는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이라고 단정하고 이 문제를 하루 속히 국제기구를 통해서 해결해 달라는 눈물어린 내용의 호소를 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주장과 호소 내용을 인정을 하고 충분한 이해를 하면서도 자기들은 어떤 원인이 있는 뚜렷한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을 다루어 보겠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딱한 사정에 대해 기회가 있으면 노력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파리 주재 함태영 대사는 바쁜 시간을 내어 우리와 같이 많은 대화를 나누며 보살펴 주었던 것이다.
다음 찾아간 곳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 적십자위원회 카라치 부총재와 모노드 아태지역 담당부장 그리고 챠프이스 실종자 추적센터 소장 앤더슨 씨였다. 그리고 또 스위스 적십자연맹본부 윌리엄스 카시스 위원장과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 스톨넨비그 씨와도 면담을 했고 스위스 제네바 유엔소위원회에 들러 세계 160여 개국 대표들이 열띤 토의를 하는 장면도 참관을 하였다.
이곳에서도 현지 공관의 배려로 우리의 주장과 호소는 잘 전달이 되었다. 특히 스위스에는 당시 이상옥 대사가 계셨는데 수년 후 외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지만 당시 윌 일행을 공관 저택으로 만찬초대를 하여 극진한 대접을 해준 것은 귀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다음은 영국으로 가서 역시 그곳 인권기관인 런던 국제 사면위원회를 찾아 마클린토크 아태연구부장과 반달레 한국담당 연구원과 만나 우리의 방문목적을 상세히 전달하며 호소를 하였다. 그리고 영국주재 최근배 공사의 많은 도움도 받았고 또 영국주재 오재희 대사는 우리 일행을 관저로 만찬초대를 하여 극진한 환대를 해주었던 것은 귀한 추억으로 남는 일이었다.
이렇게 가는 데마다 많은 호응과 관대한 환영을 받은 것은 물론 우리 공관원들의 정해진 스케줄에 의해 행동했지만 우리 대표인 조영식 총장의 활약과 영향력도 지대하였던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 간 곳은 미국 워싱턴이었다. 그곳에는 전 외무부장관으로 계시던 박동진 대사가 계시면서 공적으로는 미국 국회 하원의원회관 아시아 담당 보좌관 라이저 헤이스 여사를 만나 우리의 주장과 호소를 했고 박대사는 우리를 그곳 한국음식점 우래옥으로 만찬초대를 하여 많은 조언을 하여 주었던 일도 추억에 남는 일이다.
다음은 우리의 종착지인 뉴욕으로 갔다. 뉴욕에서는 뉴욕 국제인권연맹 펠리스 게어 사무총장 대리와의 면담에서 우리의 주장과 호소를 했고 뉴욕주재 현홍주 대사의 환영의 만남과 뉴욕주재 채의석 대사의 관저로 만찬초대가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뉴욕주재 한인회 간부들을 음식점 강서회관으로 초청하여 현지의 사정을 듣는 가운데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들과 흑인들 사이가 불편한 관계여서 흑인들이 한인 상점들을 불시에 습격을 하는 등 불상사가 일어나 우리 교민들은 약 2만 정도가 이에 대한 항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측 조영식 대표는 그전 일본에서 있었던 관서지방 지진대란 사건의 예를 들면서 우리가 타관에 와 살면서 그런 일로 말미암아 혹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가급적 무사하고 조용히 지내줄 것을 간청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의 제안을 하기를 흑인 대표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한국을 이해시키고 한국 민족을 우러러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의 하나라고 하며 우리 측에서 약 2만 불 정도의 여비를 부담해 흑인대표 20명 정도를 우선 선발해 한국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으로써 조영식 대표가 그 즉석에서 조영식 대표가 1만 불을 부담한다고 하여 우리 일행들도 10명이 각히 1천 불씩을 부담하여 합계2만 불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 일은 차질없이 추진되었고 약 6개월 후 뉴욕의 한인대표는 흑인대표 20명을 인솔해 한국으로 와 한국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해시키는 데 노력을 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당시 우리는 세계 인권기관에 우리나라가 남북 분담으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한 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실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의 호소력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미국 흑인들과의 관계개선에도 한몫을 했던 민간외교 유엔사절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