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나는 그때가 음악학교를 갓 졸업한 시기여서 그 혼란한 속에서도 용호도 피난민을 상대로 음악 발표회를 하고 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규합해 음악단을 조직하여 용호도는 물론이고 백련도까지 가서 공연을 하여 당시 미 해군 군인들도 많이 관람을 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귀한 추억으로 남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 음악단을 잠깐 소개한다면 그곳에는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내가 선봉 서서 규합을 해보니 악기종류에는 바이올린, 트럼펫, 클라리넷, 기타 등 경음악 반주를 하기에는 가능한 숫자였다. 그리고 문학, 무용, 연극 등에 소질 있는 인재들도 고루 있었다.
나는 이들을 모두 등용시키는 방안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곡을 모아 대사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오페레타 형식의 악극단을 만들었다. 총지휘는 물론 내가 맡았고 감독은 김주온, 연출은 옥파일이 담당했다.
여주인공은 이화대학 재학 중에 피난 온 김은경이었고 총 인원은 30명이었다. 공연 막을 올려야 하겠는데 공연 장소는 그런대로 넓은 곳이 있었지만 무대 막이 없어 생각해낸 것이 돛배의 돛을 빌려 쓰기로 했다.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음악단의 공연이었다. 그래도 연주자들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많은 청중들이 몰려왔고 그들에게는 충분한 위안의 밤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피난살이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지낸바 있다.
그리고 나에게는 용호도에서 잊지 못할 가장 귀한 소득이 있다. 그것은 나의 둘째아들 희문이가 탄생한 일이다. 희문이는 내가 신천에 귀향했을 때 아내가 임신하였는데 임신하자마자 피난길을 떠나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고 창린도에 와서는 발진티푸스가 만연할 때도 임산부는 예방주사를 못 맞게 하여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 보다는 더 병을 심하게 앓기까지 하는 위험한 고비를 지나 용호도까지 와서 출산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감사한 일은 용호도에서는 내가 소위 보도대장이라는 직책 덕분에 그곳 우체국 사택 건물에 거주하게 되어 다소 여유 있는 환경에서 출생한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출산 당시는 내가 백련도로 출타를 하고 부재중이어서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출산을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용호도 피난생활은 다양한 체험의 기간이기도 하였다. 용호도에 있었던 기간은 불과 9개월 정도였고 창린도에서 3개월 합해서 1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피난사절은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절이었다.
그때의 전선 상황은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물밀 듯 밀려 내려오고 아군과 유엔군은 38선 접경지대에서 서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을 치르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용호도에 접해 있는 옹진 지역은 인민군이 점차 전력을 증강하고 있어서 용호도와 주위 섬들은 날로 그 방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 모든 주위 정세와 특히 나의 앞길을 위해서는 용호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운영해 오던 보도대는 해산하는 것보다는 그곳에 있는 헌병대에 위임하는 것이 좋을 듯해서 헌병파견대장과 타협하여 헌병대가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도 내가 용호도를 떠나면서 모두가 무산되었던 것이 당시의 정세였다.
나는 배 한 척을 강제 동원하다시피 해서 우리 모든 가족과 그동안 사용하던 약간의 가재도구를 싣고 그 옆에 있는 섬 어화도로 떠났다. 그런데 내가 떠난 것은 순수하게 나의 앞길을 위한 행동이었는데 그곳 주민들의 여론은 다른 면으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도대장이 떠난다는 것은 정세가 위급해지고 이곳 용호도가 위험한 범주 내에 들었기 때문에 떠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여론이 섬 주민들 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접해 있는 옹진 방면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인민군에까지도 전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인민군들이 용호도 점령을 꿈꾸고 정찰대를 파견하는 등 곧 점령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탐지하게 된 주민들과 그곳 피난민들은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어화도에 도착하자 곧이어 인민군은 용호도에 상륙 작전을 감행했고 계속해서 어화도까지도 탈환을 위해 포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화도에서 2일간을 머무르고 다시 연평도로 출발을 하였다.
어화도에서 연평도까지 가는 동안에는 풍랑이 몹시 세어서 많은 고생을 했다. 그 대신 강풍에 의해 연평도까지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가게 되었다. 연평도에 도착한 것은 저녁 늦은 밤이었는데 연평도 자위대는 우리 배를 적선으로 오인하고 총을 계속 쏘아 대며 해안에 접근을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바다에 돛을 내리고 기다리다가 다음날 아침 날이 밝아서야 겨우 입항을 하게 되었다.
연평도에 들어가서는 용호도에서 알고 지내던 어느 장로님 한 분이 먼저 와 계셔서 그곳에 3일간을 머물러 있다가 이제 또 목적지인 서울로 향하였다. 연평도에서 인천까지 오는 동안은 여러 시간이 걸렸는데 제일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그때 형편에 어떤 간식을 준비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산모가 먹지를 못해 젖이 나오지를 않아 백일이 조금 지난 희문이가 젖을 먹지 못해 몹시 보채어서 산모가 애를 태우던 일이었다.
드디어 인천에 도착하여서는 우선 우리는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산모가 음식을 먹자마자 그 안 나오던 젖이 술술 나와 아기를 달래게 되었던 것은 인간의 기묘한 생리상태를 체험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갖은 고생을 하며 천신만고 끝에 서울 영등포에 도착을 하였다. 이번에는 당시 상황이 군 작전상 민간인의 한강 이북 거주는 당분간 불허한다는 것이어서 하는 수 없이 영등포 문래동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로서 우선 그 동안의 험하고 고생스러웠던 피난살이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