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가지 않을래? (12화)
  제2장 전쟁과 의과 대학생

그럭저럭 최전선 해병대 파견근무를 마치고 진해 해군병원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해군장교의 봉급은 박봉이어서 먹고살기가 정말 힘들었다. 물론 길은 있었다.

일본의 사세보가 본거지인 미7함대 소속 구축물은 한국 근해작전을 마치고 사세보에서 재보급을 받은 후 다시 전선으로 북상하기 전 진해에 들르는 것이 관례였다. 그 구축함에는 군의관이 한명씩 타야했는데, 말할 것도 없이 동기생 열세 명이 번갈아가며 승선을 했다.

그들이 일본에서 물건을 사와 동료들에게 넘기면 우리는 그것을 시장에 마진을 붙여서 팔았고 그 부수입으로 생활했다. 그 중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제품은 ‘쭈쭈크림’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 구축함을 쭈쭈함대라고 불렀다.

결혼한 군의관 대개가 이 쭈쭈크림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가난하고 불안한 전시였지만 아직 우리는 충분히 젊었다. 때때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휘파람 불 듯 가벼운 유머를 주고 받기도 하면서 청춘의 한 때를 보냈다. 그곳에서 잠시 뿌리내렸던 그리운 추억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진해 해군병원 일반외과 과장은 송진무 대위였다. 송 과장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미국에서 2년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보기 드문 인재였다. 그는 인턴을 가르치는 일이 몸에 익은 사람이었다.

송 과장은 인턴들에게 교대로 세미나 주제를 준 뒤 여러 군의관 앞에서 발표를 시켰다. 나는 나에게 부여된 ‘급성 신부전증’에 대해공부를 해야 했고 2주일 뒤 세미나에서 30분간 발표를 했다.

급성 신부전증이란 심한 출혈로 혈압이 떨어져 신장의 혈액순환 상태가 나빠지면서 신장의 기능이 소실되어 오줌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나는 많은 부상병들을 통해 그와 같은 상태를 봐왔다. 의료지식이 부족했고 인공신장기도 등장하기 전인 시절이었기에 이 증세로 오면 대개 살아남지 못했다.
 
▲ 6.25당시 진해 해군병원에서 해군장교로 근무할 때 / 맨 오른쪽이 필자이다

나는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급히 관련 참고문헌을 찾고 이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여전히 존슨 중령을 보좌하고 있던 터라 중령과 같이 사용하는 책상에 참고문헌을 가져다 놓고 하나씩 검토하면서 공부에 몰입했다. 퇴근 후에도 계속 남아 발표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물론 그러한 공부는 존슨 중령이 부여한 임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고 난 다음에 했다. 이와 같은 완벽주의는 늘 내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원동력이었다.

하루는 존슨 중령이 다가와 말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지? 한번 볼 수 있을까?”

나는 관련 자료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자료를 열심히 읽어보던 존슨 중령이 말했다.
“넌 참 열심히도 공부하는구나. 미국에 유학가고 싶지 않니?”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 번 천 번 가고야 싶죠. 하지만 어떻게.......;”

“인턴 자리는 내가 소개해 줄 테니 제대 문제는 민 중위가 알아서 해결해봐.”
“고맙습니다!”

신이 났던 나는 결코 길지 않은 기간 안에 세미나 준비를 마쳤다. 물론 발표는 성공적이었고 함께 모인사람들로부터 한결같은 칭찬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송 과장의 교수법은 내 평생의 진로를 바꿀 만한 일을 벌이게 하였다.

존슨 중령은 미국에 있는 여러 병원에 서신을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콜로라도 주 덴버의 한 병원으로부터 인턴으로 오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꿈만 같았다. 유학이라니!

그러나 존슨 중령의 도움으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세 사람의 추천서였다. 나는 백기호 병원장과 송진무 과장, 그리고 에이스 중령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백 원장과 송 과장은 격려와 함께 두말없이 추천서를 써주었다. 에이스 중령은 짐짓 짓궂게 굴었다.

“알았다. 술 잘 먹고 잘 논다고 있는 그대로 써주마.”
“아, 제발!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걱정마. 써 줄 테니까.”

그렇게 추천서 문제는 싱거울 정도로 쉽게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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