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레슨 날 6.25 (7화)
  제2장 전쟁과 의과 대학생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위해 종로에 있는 홍지유 선생에게 갔다.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를 레슨 받은 후에 근처 가게에서 빈대떡을 먹고 나와 종로에서 전차를 탔다.

명륜동에서 내렸더니 도로 위의 트럭들이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트럭마다 군인들을 가득 태웠는데, 그들은 군가를 불렀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그들의 행렬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군인들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표정은 한결 같이 심각해 보였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었다.

“저 사람들 어디 가는 겁니까?‘
“이북 인민군과 전쟁하러 가는 거죠.”
“전쟁?”

나는 깜짝 놀라 또 물었다.

“어디가 이길 것 같습니까?”
“국군이 밀리고 있어.”

전쟁이 일어났다니,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라디오를 켰다. 방송에서는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26일에는 먼데서 대포소리가 들려왔다. 27일이 되자 가까운데서 대포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짐을 지고 지나가기에 나는 물었다.

“어딜 가는 겁니까?”
“피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겁니까?”
“하여간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는 거지.”

27일, 시내는 보따리를 이고지고 남쪽으로 행하는 행렬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앞날을 걱정하며 아내와 상의를 했다. 사태를 좀 더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는 첫딸을 낳은 아내가 서울로 올라와 명륜동 집에서 함께 살 때였다.
 
그러나 곧 안 되겠다 싶어 우리도 결국 6월 27일 밤 보따리를 쌌다. 전쟁 중에는 화폐보다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옷감과 약간의 필수 일용품 등이 나을 듯싶어 그것들을 챙겨 내가 짊어졌다. 돌바기와 아내와 일해 주는 아이가 번갈아 업으면서 명륜동 산 너머 계동 큰 길가까지 나왔다. 퇴각하는 국군들과 함께 계동 입구 근처까지 갔으나, 벌써 입성하고 있는 인민군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경성 예대에 막 입학해서 진주고 출신들과 / 아랫줄 오른쪽에서 둘째가 필자

6월 28일,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은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 도처에서 인민재판이 열리는 가운데 식량은 구할 길이 없었다. 잡곡과 밀가루를 구해서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서울대 병원에 가면 밥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하기에 가보았다.

부상당한 인민군으로 가득 찬 병원에서는 학생인 내게 허드렛일을 시켰다. 기다리던 식사 시간이 되어 식권을 받아 식당에 갔더니 쌀밥과 고깃국이 나왔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이삼일 나가다보니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반강제로 남한 출신의 의사는 물론 학생까지 인민군 입대를 장려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겁이 나서 몇 번 일해보고 이 방법을 포기하기로 했다.

하루는 친구 신익성(훗날 서울대 언어학 교수)이 집에 놀러왔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다면서 내 근황을 알려고 찾아온 것인데, 그는 우리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하숙집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수제비 한 그릇을 내밀자 그는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피차 불안한 마음을 주고 받던 끝에 그의 하숙집 주인 한 씨가 여주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주군 개군면 하면 쌀 생산지로 유명하다는 것을 떠올린 우리는 그곳에서 양식을 사올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국군과 인민군의 정세를 알아야겠기에 시간을 벌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식생활이 걱정된 터라 7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나는 신익성과 함께 여주로 쌀을 사러 갔다.

물물교환 할 옷감을 배낭에 넣어 가져다주고 쌀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한강변에서 익성과 함께 한강물로 밥을 해먹었다. 반찬을 고추장 한가지였지만 꿀맛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은 쌀을 아내에게 주었다.

이때 쯤 전세는 낙동강 교두보 속에 갇힌 국군과 미군이 인민군들의 총공세에 혼쭐이 나는 상황이었다. 최전선보다 후방인 서울에서는 강제동원령이 내려졌다. 이러다가는 정말이지 인민군으로 끌려갈 판국이었다. 때마침 용산에 살고 계시는 내과의 전종희 교수님이 명륜동으로 피난해지내고 싶다는 말씀을 해서, 나는 그 분께 집을 부탁하고 당분간 서울을 떠나있을 결심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의과 대학생 (6화)
  피난길 (8화)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