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의 병원에 대한 애정 (51화)
  제7장 서울아산병원장 시절

나는 우선 병원 동관 18층에 의사들이 식사도 하고 회의도 할 수 있는 고급식당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워킹런치(working lunch)를 할 수 있도록 10인석과 15인석을 만들고 홀에는 20개 정도의 테이블을 준비시켰다. 

이 식당은 한강과 잠실대교를 바라볼 수 있도록 통유리를 사용해 전망 좋은 스카이라운지나 마찬가지였다. 음식은 경주 현대호텔에 위탁했는데, 코스요리를 정식으로 하고 일품요리도 함께 메뉴에 넣게 했으며 일반 주류 및 와인도 준비하게 했다. 병원에 오는 외부인과 각 임상과의 학회 및 간부회의를 장려해서 점심, 저녁시간에 단체식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지하층에 식당가로 확장했는데, 손님들에게 음식의 맛과 값에 대한 설문조사를 꾸준히 해서 여론이 나쁜 식당은 퇴출시키면서 전체적으로 질적인 향상을 꾀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다는 손님들의 평가가 나오면서부터 식당가는 흑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유독 18층 식당만은 적자였다. 병원에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추가 전략을 세웠다.
“양식만으로는 계속 적자다. 곰탕, 비빔밥도 추가하라.”

이런 결정에 호텔출신 지배인은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므로 나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지하 식당가는 자리가 잡힐 때까지 현대백화점에서 위탁경영 방식으로 관리했는데, 지하 식당가에 영업장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병원이 자리 잡히자 식당가는 재인수하여, 지금도 병원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식당가의 수입은 병원에 적잖은 보탬을 주고 있으며 18층 식당도 이제는 흑자로 돌아섰다. 

정주영 회장은 18층 안쪽 룸에서 식사를 즐겨했다. 양쪽 유리문으로 한강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그곳에서 특히 비빔밥과 갈비탕을 자주 주문했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기분이 나면 포도주를 곁들였다. 

한번은 푸념처럼 말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더라.”

부인의 병이 낫지 않는 데에서 오는 좌절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부인의 병명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경과적인 운동장애가 문제였다. 그즈음 콜롬비아 대학의 신경과 닥터 판(Fahn)이 왕진을 와서, 부인을 세심하게 진찰한 뒤 놀랍게도 희망을 심어주었다. 
 
“육 개월 안에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보겠습니다.”

내가 이 사실을 회장실에 알렸더니, 정 회장은 다른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점심시간 무렵 정 회장은 인터콘티넨탈호텔 34층 프랑스 식당에서 나와 닥터 판, 그리고 내과 주치의 홍창기 교수, 신경과 주치의 이명종 교수 등 예닐곱 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기분이 좋았던 정 회장은 호텔 지배인에게 말했다. 
 
▲ 하버드의대와의 협력프로그램 협약식에서
 
“야, 니 집에서 제일 좋은 포도주 갖고 와.” 

정 회장은 백만 원도 넘는 비싼 포도주를 잔에 가득히 따르라고 주문했다. 격식에 따라 지배인이 술을 조금씩 따르니까 이내 야단을 쳤다. 잔에 가득 채운 포도주 잔을 들고 정 회장은 건배를 외쳤다. 

“노털카(놓지도 말고, 탈지도 말고, ‘카’ 소리를 내지 말고 단숨에 소주를 마시라는 데서 나온 음주은어)하자.”

정 회장이 닥터판에게 노털카를 설명해주라고 하자 홍창기 교수가 영어로 정확히 그 뜻을 전달했다. 

정 회장은 결코 포도주 마실 때의 격식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기분 좋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기에 분위기는 자연스러웠고, 우리 모두는 유쾌한 점심식사를 할수 있었다. 희망을 갖게된 정 회장은 그 후 자주 부인의 병실에 들렀다. 부인은 약간의 차도를 보였지만 약속대로 호전되지는 못했다. 

정 회장과 함께 야유회를 간 적이 있는데, 1991년쯤으로 설악산 단풍놀이를 갔을 때다. 당시 정 회장은 한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였다. 그는 산에  오르는데 자꾸만 넘어지곤 했다. 주변에서는 회장의 연세 때문에 다리 힘이 없는 줄 알고 곁에서 부축해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시력이 안 좋아 자꾸만 헛발을 디딘 것이었다. 

어느 순간 뒤돌아서서 나를 쳐다보는 정 회장의 눈빛과 마주쳤을 때, 내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한쪽 시력으로만 산길을 오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물의 깊이와 높이는 물론, 거리도 가늠이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정 회장은 이른바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토록 정열적인 정 회장이 건강의 적신호를 빨리 맞이한 이유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실패 때문이었다. 상대편 진영의 승리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싱가포르, 일본으로 외유를 나갔다가 귀국해 검찰 취조실에 불려갔을 때, 국민당 의원 30여명이 모두 모였다. 

당수인 정 회장은 취재경쟁으로 난장판이 된 틈바구니에서 어느 방송 카메라에 이마를 부딪혔다. 피를 흘리고 있다는 전갈을 받고 의사들이 함께 취조실로 갔다. 의사가 치료를 해주려고 다가가자 정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필요 없어.”

아픈 줄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그 노기어린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사를 다 받고 밤 11시쯤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을 때였다. 

“당분간 좀 아플 겁니다.”
“괜찮아.”

성형외과에서 봉합수슬을 마친 정 회장은 당원들과 함께 소주를 곁들여 설렁탕을 먹었다. 밤 12시가 넘어 병원을 나설 때, 주치의가 수면제를 꺼내자 정 회장은 손으로 주치의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는 말없이 병원을 나갔다. 

정 회장은 차에 오르자마자 3분 만에 코를 곯며 잠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비서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토록 강단이 밴 건강도 정치적 타격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환자편의시설의 개선 (50화)
  정 회장의 병원 추가건립에 대한 애착 (52화)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