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 퇴임 (53화)
  제7장 서울아산병원장 시절

내 인생의 은인, 정주영 회장
 
정 회장은 시간만 나면 나를 불러들였다. 

“병원은? 허가 났나?”
“조금만 기다리세요. 허가 절차가 워낙 복잡합니다.”

이 무렵부터 내 몸에도 이상이 왔다. 10년 정도 원장생활을 하는 동안 귀가 많이 어두워지는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정 회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병원장 직을 이제 그만두고 싶습니다. 귀가 안 들려서 회의를 주관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병원장을 귀로 하나? 머리로 하는 거지. 계속해.”

정 회장은 내 사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계속해서 원장업무를 보고 있었지만 회의를 주관할 때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은 내게 가장 큰 고역이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로 불편했다. 음악회 관람은 물론 전화를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정 회장에게 병원장직을 그만두겠다고 호소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정 회장은 펄쩍 뛰면서 나를 붙잡았다. 그러다가 나는 예순여섯 살 때부터 보청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정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2000년 12월 초였을 것이다.

“정말 그만둘래?”
“예.”
“유능한 사람을 추천해봐.”

‘살았다!’
나는 정 회장에게 두 명을 추천했다. 바로 홍창기 교수와 박건춘 교수였다. 최종 결정도 내가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그 당시 정몽준 이사에게 결정 권한을 넘겼다. 

홍창기 교수가 2001년 1월에 내 후임 병원장이 되었고, 2년 후부터 박건춘 교수가 병원장으로 재임 중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 만약 내가 더 젋었을 때 좀 더 일찍 정 회장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내 운명은 훨씬 웅대하게 펼쳐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다. 

정 회장은 누가 뭐래도 내게 지대한 영향과 강한 인상을 선사해주고 떠난 인생의 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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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않은 송사(訟事)
 
서울아산병원에 몸담으면서 하마터면 11년 명예에 큰 오점 하나를 남길 뻔 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그 사건의 최종 판결은 무죄로 확정되었다. 

YS시절이던 1997년, 내가 병원협회 회의참가 차 호주 멜버른에 가 있을 때였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시내의 주요 대형병원 13곳이 보혐료를 부정 징수했다는 혐의를 가지고 검찰이 우리 병원을 포함한 13개 병원을 수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빨리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요한 협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귀국해서 알아보니 정말로 야단이 났다. 몇 개 병원은 압수수색까지 당한 모양이었다. 이는 “병원 문턱이 높으니 회사들의 콧대를 꺾어 환자들에게 서비스를 잘 할수 있도록 혼내주라”는 청와대의 지시 아래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 제3부가 실행한 기획수사였다. 

병원장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물론, 나 역시 검찰에 출두해서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보험수가에 관한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질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험담당 과장을 곁에 앉혀놓고 검사가 질문할 때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무슨 뜻이냐? 우린 어떻게 했느냐?“
그러면 실무자의 대답을 듣고 나의 답변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나중에 신문조서를 보니, 그 조서는 병원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고 원장인 나 개인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다. 조사를 받은 후 다른 병원에 연락해보니 모두 같은 형편이었다. 

“병원장 개인을 혼내줘야 병원장이; 자진해서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다나요? 병원장들에게 사기죄를 적용한답디다.”:
“왜 하필이면 뜬금없이 사기죄냐?”
“검사들도 마땅히 병원장들에게 적용할 죄목이 없을 테니 하는 수 없었겠지요.”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되었다. 

첫 번째로, CT보험료 그 문제였다. 환자가 CT촬영을 하고 암으로 확정될 때만 보혐료를 지급하게 되어 있었는데, 의사나 환자는 암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CT촬영을 원했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암이 발견되면 보험료를 적용해주었고, 암이 발견되지 않았을 경우 CT촬영 비용에 대한 보험료를 적용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CT촬영 후에 암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되면 대단히 기쁜 일이지만, 환자로서는 보험료 없이 촬영비용을 내야했기에 부담이 컸다. 

이때 환자가 지불하는 CT촬영비용이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굳이 찍어보지 않아도 될 환자를 병원에서 무작위로 찍어대는 것은 아닌지 보험당국에서는 의아했지만, 막상 암의 여부를 의심하는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면 누군들 CT촬영을 해서 정확히 확인해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을 이들은 불법징수로 간주했다.

 
  정 회장의 병원 추가건립에 대한 애착 (52화)
  처음으로 법정에 서다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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