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법정에 서다 (54화)
  제8장 진료실 밖에서

7년 6개월의 지난한 재판
 
두 번째, 30년 전 의료보험제도가 발효될 당시, 수술에 사용되는 봉합사는 극히 일부분의 장선(Gatgut, 동물의 장을 갖고 만든 실로써 일정 시간이 지나면 흡수되는 실)을 제외하곤 모두 일일이 바늘귀에 꿰어서 사용하는 실이었기 때문에 이 봉합사를 수술료에 포함시켰다. 

그 후 지금까지 많이 진보되어 다양한 수술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봉합용 바늘이 아예 실끝에 붙어서 나오며, 바늘이 통과할 조직에서 출혈되지 않는 특수 봉합사도 나와 있었다. 

이러다보니, 예를 들어 간 절제수술의 경우, 보험에서 지급되는 수술료가 40만원인데 이때 대개의 특수봉합사 원가만도 40만원이 넘는 것이었다. 

간 절제 수술을 하려면 외과의사 네 명, 마취과 의사, 간호사 서너 명이 팀을 이뤄 몇 시간 동안 수술해야 하는데, 이 수술작업에 대한 수술비가 전부 재료비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 병원마다 특수 봉합사 재료비는 환자에게 별도로 청구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검찰은 이렇게 해서 받은 봉합사 값은 보험규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주장에 의심받지 않으려고 어떤 병원에서는 보호자들에게 필요한 실을 사오라고 할 정도였다. 

세 번째는, 뇌파검사에 관한 문제였다. 환자가 뇌파검사실에서 검사를 할 경우 지급해야 할 수가는 정해져 있었다. 이와 달리 기술자가 수술실까지 출장을 나가 검사를 해야 할 경우 진료청구비는 높아진다. 소위 왕진 뇌파 검사비에는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전도자(電導子, 전파 방해를 받지 않도록 전도자 적용) 비용을 추가한다. 

뇌파검사실에서 20분이면 되는 이 검사가 수술실에서는 대개 서너 시간이 걸린다. 기술자와 기계 하나가 고정되어 있어야 할뿐 아니라, 수술실 내에서 여러 방해전파를 극복하기 위해 특수 전극을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특수한 경우, 원가를 따로 산출하여 그 차액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는데, 이것이 또 보험급여 규정에 어긋난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 같은 사안을 관례상 진료수가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집행했기 때문에 정작 병원장인 나는 몰랐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그런 일을 병원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을지라도 대체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겠느냐며 의심을 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병원 수익을 위해 알면서도 묵인했을 거라고 추측하며 법조항에 적용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병원장이 환자들에게 사기를 쳐서 제3자인 병원에 이윤이 가도록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세 가지를 물고 늘어진 검찰은 마침내 병원이 아닌, 병원장 개인을 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병원을 기소하여 벌금으로 때려봤자 별 효험이 없다고 생각한 검찰은 병원장 개인에게 벌을 주면 반드시 병원행정 전만에 걸쳐 정부가 기대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 서울 아산병원장 시절의 한 때

자존심이 짓밟힌 30회의 법정출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병원장의 입장에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보건법, 의료법 위반이라면 몰라도 파렴치한 사기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3개 병원 중에서 3개 병원의 병원장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약식기소로 3천만 원씩 벌금을 내고 이 문제에서 해방되었다. 나머지 병원장들은 이로 말미암아 서울지방법원 형사 법정에까지 서게 되었다. 당사자들끼리 모이면 다들 흥분해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서로 다짐하기도 했다. 

지방법원의 제1심만 4년만이 걸렸다. 재판부가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지루한 법정공방전이 계속되었다.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병원장들은 별의별 잡범들과 섞여 각기 다른 재퍈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정말로 굴욕적인 경험이었는데, 지방법원 제1심에서만 총 30회 정도 법정에 출두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사사건이라 피고인들은 반드시 출두해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벌금형 3천만 원의 유죄선고를 받았다 .

우리 열 명의 병원장 중 일부는 4년 반에 걸친 재판에 지쳤는지, 제2심을 포기하고 3천만 원을 내버린 뒤 그만두겠다고 했다. 나는 이들을 설득하여 고등법원의 제2심에 기어코 항소를 했다. 그러고는 1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다. 

보험규정을 무시한 채 병원에서 진료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병원장 개인이 사기를 친 것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판정이었다. 병원장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에 불목한 검찰은 대법원에 항소를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등법원에 다섯 번 출두했다. 

대법원 상소는 재판 없이 전 과정을 서류심사로 진행한다. 제1심과 제2심 재판이 법적으로 제대로 되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판결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담당 대법관도 바뀌었다. 드디어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검찰의 상고는 기각되었고, 2005년 봄 대법원에서는 병원장 모두에게 무죄확정 판결을 내렸다. 

총 7년 6개월이 걸린 재판과정 속에서 나는 법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처음으로 몸소 체험했다. 그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새삼스레 되돌아보게 된다. 뒤늦게 인생공부를 톡톡히 한 셈이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검찰과 사법부 간에도 의사와 병원관계 못지않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약 8년 동안 아까운 자존심을 무참히 빼앗아간 법정출두의 대단원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병원장 퇴임 (53화)
  대체의학과 외과학회 (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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