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의사, 컴퓨터 의사_1 (56화)
  제8장 진료실 밖에서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의사로서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그 사이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진료실 풍경도 많이 변화한 것 같다. 옛날에는 아픈 환자를 대할 때 첨단 의료장비 대신에 환자와의 대화와 청진기와 손에 의한 진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배가 아프다는 환자를 대하게 되면, “어떻게 아팠느냐?”, “살살 뒤틀리듯 아프냐?”, “쑥쑥 쑤시냐?”, “무지근한 둔통이냐?”, 또 “이런 통증이 어떻게 하면 발생하느냐?”, “어떻게 하면 가라앉느냐?”를 자상히 물음으로써 장에서 오는 통증인지, 궤양에 의해 오는 통증인지, 아니면  화농의 징조인지를 분별하려고 애썼다. 

더욱더 도움을 얻기 위해선 환자의 과거 병력과 가족의 병력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야 했다. 세심한 진찰을 위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환자의 전신을 손으로 만지고 청진기로 듣는 것이 필수였다. 

이러한 방법은 환자 한명을 보는 데 많은 진료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사적인 대화와 진찰을 거치는 동안 환자와 의사 사이엔 어느덧 친밀감과 신뢰감이 구축되었다. 

그 시절, 피검사나 엑스레이 검사는 아주 드물게 시행되었다.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이라고는 큰 대학병원 정도밖에 없었고, 결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검사방법이 많지도 않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진단은 병력을 듣는 것과 진찰과 경험을 통해 얻은 의사의 짐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결정적인 검사를 위해 환자를 큰 병원에 의뢰한 적은 있지만, 진료 후 치료에 대한 처방을 내릴 때도 “이 약을 먹어보고 낫지 않으면 곧바로 다시 병원에 오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이 예사였다. 진단이 틀렸으면 약이 안 들을 것이고, 그러면 다시 진찰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질병의 예방과 진단, 치료 등 모든 진료과정은 물론, 질병의 발생경로를 이해하는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과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중 컴퓨터로 대표되는 진단분야에서 발전은 가장 괄목할 만하다. 

일일이 예를 들 것도 없이 현재 대형병원에서 매일 사용되는 진료장비들은 최근 10년에서 20년 사이에 탄생된 장비들이다. 옛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의료전달체계가 바뀌고 수가 제도가 바뀐 탓도 있지만, 새로 나온 복잡한 진단장비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환자와의 대화는 최소화되었다. 

손이나 청진기로 하는 진찰 역시 최소한으로 끝난다. 대신 5~10장 정도의 처방전이 나와서 수십 가지 피검사와 엑스레이, CT, MRI, 초음파검사가 쏟아진다. 

이후 검사결과가 나오면 의사들은 환자가 느끼는 불편이나 느낌을 상대로 한다기 보다는 그 검사수치나 진단 사진을 상대로 결정적인 이상이 없으면, 병이 없다고 선언한다. 환자는 처음 의사를 찾았을 때와 똑같이 아프거나 불편한 증상을 느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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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인 사람전체를 고쳐주지 않고 질병과 수치만 중시한다면 환자 마음속에 흡족한 마음이 들리 만무하고 의사에게 신뢰감이 생길 리 없다. 위안을 받았다면 다만 ‘암과 같은 큰 병은 없는가보다’라는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정도일 것이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논하기 전에 병의 정밀한 진단을 보면 지금이 이전보다 정확하게 내려진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환자에게 짧은 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는 현재의 의료전달체계, 수가체계 하에서 의사 개개인이 진료실 풍경을 옛날처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겠으나, 이전의 의사와 환자 간에 이루어졌던 친밀한 인간관계에다 현재의 발전된 진단과 진료방법이 첨가될 수 있다면 얼마나 이상적이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희망에 그칠 뿐, 현재의 제반 여건 하에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환자와 의사 간의 건조한 인간관계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의료사고 송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알아야 한다. 평소 대화가 많고 환자 진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열정을 다 바치는 의사에게는 아무리 메마른 현대사회라고 할지라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의사를 지칭하며 박사님, 교수님, 과장님, 하는 식의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호칭보다는 그 옛날의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얼마나 더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지, 양쪽을 다 경험해본 사람이면 충분히 공감이 갈 것이다. 

의사란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상식이 풍부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바탕 위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나지 않은 원만한 성격에 아픈사람, 약한 사람의 얘기를 따뜻하게 받아줄 수 있어야 하고, 풍부한 상식으로 그 사람을 둘러싼 기타환경과 조건들을 이해해야 하며, 그 다음에 전문지식이 들어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의학교육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된다. 의사의 전 단계인 의예과 교육에서부터 전인교육에 좀더 중점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의예과 단계에서 의학의 기초가 되는 과학지식을 주입하기에 급급한 현재의 교육방식이 바람직한지는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옛날 해방직후 경성대학 예과(京城大學 豫科)에 재학 중일 때의 이야기다. 학기말 시험답안지를 앞에 둔 어느 학생이 공부를 안해 답안지에 쓸 내용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자, 평소 애송하던 유명시인의 사랑에 관한 시를 대신 써놓은 적이 있다. 이 답안지를 받아본 담당교수는 이 학생에게 합격점수를 주었다. 

이게 바로 큰 교육이 아니겠는가. 지엽적인 과학지식도 중요하지만, 낭만과 원만한 인성을 갖추게 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지도 모른다. 학과 공부야 평생 두고 할 공부지만, 인격을 가늠하는 품성은 이 시기에 잘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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