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운동, 그리고 산탄테르 피아니스트_1 (58화)
  제8장 진료실 밖에서

일 잘하는 비결은 충분히 쉬는 것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휴가를 좋아해요?”

일상의 반복된 격무와 장기간 지속되는 대수술의 피로를 감당하려면, 그만한 에너지원을 보충해줄 휴가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었다. 휴가는 말하자면 삶의 리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의 휴가는 반드시 챙겼다. 

선진국일수록, 예컨대 독일, 프랑스 사람들은 적어도 휴가는 한 달 이상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렵사람들은 돈이 모자라면 자기가 타고 다니던 중고차를 팔아서라도 휴가를 넉넉하게 즐긴다. 휴가에 관한 나의 사고방식은 당연히 유럽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휴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휴가라고 하면 대개 3박4일 정도이고 비슷한 기간에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휴가인가. 밀리는 도로를 오가는 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휴가는 길게 잡아 어디 가서 한군데에 짐을 풀어놓고 최소한 일주일 이상 혹은 열흘은 지내야 긴장이 풀리고 진짜 휴식이 되는 것이다. 

사실 휴가를 떠날 때는 그간에 쌓인 피로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떠나게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새롭게 재충전된 마음으로 돌아오려면 휴가 기간은 넉넉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자 삶의 철학이다. 

휴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적 위치까지 버리고 그저 한 인간으로서 놀고 즐기면서 긴장된 심신을 풀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어왔다. 

한번 하와이 겨울 여행을 돌이켜본다. 하와이행 밤 비행기를 타자마자, 넥타이를 풀어 가방 속에 집어넣는다. 의사 민병철은 넥타이와 함께 가방 속에 들어가고, 그때부터 그야말로 인간이 되어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침에 하와이 공항에 내리면 골프장으로 직행, 골프를 치고 그런 다음 호텔로 돌아온다. 상쾌하게 샤워를 한뒤 저녁식사에 몇 잔의 반주를 곁들이고는 푹 잔다. 자고 일어난 다음 날은 펄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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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놀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도착까지 30분 남았음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흘러나오면 그때 넥타이를 꺼내어 다시 매고 나의 신분을 되찾는다. 신경의 스위치를 껐다가 켜는 기분으로....... 그러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멋지게 살자’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마치 자율신경안정제를 먹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면서 차분해진다. 

여름엔 서늘한 곳을 찾아다녔다. 국내에서 용평을 자주 갔는데, 아마 30년 전부터 즐겨 다녔던 것 같다. 

신영병원 시절에는 내가 휴가를 간 동안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가버린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물었다. 

“그런데도 휴가를 꼭 가야겠어?”

병원은 휴가철인 7월과 1월에는 언제나 적자였다. 이것이 마음에 걸리던 중에 나는 생각을 전환했다. 7월이니 1월이니 하는 월 단위를 마음에 두지 않고, 여간 매출개념으로 생각하면 결코 적자가 아니지 않은가. 휴가예찬을 위한 억지 이론인 줄은 알지만 여하튼 나는 쉴 때는 쉬었다. 

휴가를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 중에 괴팍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경우를 나는 보지 못했다.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면 심신이 모두 건강해지기 때문에 나는 특히 의사들에게 휴가를 적극 권한다. 그래야 환자를 치료하거나 수술할 때 지치지 않고 항상 즐거운 얼굴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매년 유럽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막내딸 혜성이를 영국에 유학 보낸 뒤부터였다. 미국에 갔다가도, 혹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했다가도 반드시 귀국하는 길에 짬을 내 런던을 거친다. 딸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인데, 이역만리에서 음악공부를 하는 대견한 딸아이에게 아비의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딸아이가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은 신영병원을 개원했을 즈음이었다. 돈암동 집이 멀어서 병원근처에서 살 때였는데, 딸아이가 집에 있는 피아노를 장난삼아 치게 되면서 이를 눈여겨 본 아내가 여고 동창생인 이화영 씨에게 딸아이의 레슨을 부탁했다. 

얼마 안 가서 윤기선(현 LA거주) 선생이 귀국하면서 딸아이는 그 분의 제자가 되었다. 딸 아이는 국내 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우승을 했다. 윤 선생은 딸아이가 예원여고 1학년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이종숙 선생, 신수정 선생이 조언에 따라 딸아이를 일치감치 유학을 보내기로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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