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東洲) 선생 퇴임송 (35)
  제13장 지인들이 본 장윤익4

동주(東洲) 선생 퇴임송
권윤식 
<수필가>

동주 장윤익 선생이 올 2004학년도 2학기를 끝으로 오랜 세월 몸담아온 교육계를 떠난다고 한다. 

그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현직 교사로 근무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여 국문학을 전공한 학구파이며 졸업과 동시에 몇 군데 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역임하였다. 

이 기간 중인 197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자의식 문학과 난해의 한계성>이란 평론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이를 계기를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학과 학문에 대한 그의 왕성한 열정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대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랑스 유학의 장도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학문의 영역을 심화시키고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석,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 강단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도 승승장구, 교수와 학장, 총장의 지위를 누려온 것이었다. 

동주 선생이 이룩한 이 인간승리의 전형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끔 박종홍 선생을 연상하곤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수와 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동,서양을 망라한 철학분야에서의 해박한 지식과 고매한 정신으로 20세기 최대의 석학으로 추앙받고 있는 박종홍 선생께서도 초중고교 교사를 거쳐 대학교수로 수직 상승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이 두 분 사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20여년이나 선배인 박 선생에게는 중등교육 재직 중 맞이하게 된 태평양전쟁의 종결로 일본인 교수들이 우리 땅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해방공간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동주 선생과 나는 둘 다 이곳 경주가 고향이요, 출신중학이 같으면서도 다만 학년 차이가 좀 있어서 캠퍼스 구내에서 함께 어울릴 기회가 없었던 점을 나로서는 못내 아쉬워했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중반에 그가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초빙되어 오면서부터 비교적 자주 교환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평소 그의 동기생들이나 문우들로부터 들어온 바로는 한결같이 ‘그는 비범한 인물’이라는 평판이었는데 십여 년 동안 교유해오면서 나 또한 이를 절감하게 되었다. 

회의석상이나 환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문학, 예술, 교육 등 어느 분야에서건 문제의 아젠다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그의 폭넓은 지식뿐만 아니라 개별 사안마다 번뜩이는 명석한 판단이나 쾌도난마와 같은 결론의 도출을 접할 때마다 ‘세상에는 이처럼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도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 권윤식 수필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이웃 일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문인이요, 문명비평가가인 이어령 선생이 자신을 천재라고 칭송하는 주변사람들에게 웃으면서 ‘70세가 넘도록 살아있는 천재가 어디 있느냐’고 응수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 물론 자신의 나이를 빗대어 천재 단명이라는 속설을 원용한 겸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천재란 낱말에 대해서는 나 역시 ‘천재단명’이란 막연한 우리 속설에서 시사하는 통념보다는 ‘천재는 주의력의 집중’이라고 하는 서양인들의 정의가 훨씬 더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어떤 문학에 투신하여 전력투구하거나 골똘히 탐구하여 성공적인 성과를 얻어낸 사람이라면 그의 지능지수나 나이와는 관계없이 천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우리는 수많은 천재들이 별처럼 명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덕더덕 백 겹이나 기운 누더기를 걸치고도 세상의 희노애락을 거문고 가락에 실은 백결 선생이나, 벼슬살이를 팽개치고 전원으로 동ㄹ아가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혔다가 내 소박한 본성을 지키기 위해 전원으로 돌아왔노라.”고 읊으며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도연명이야말로 진정한 천재가 아닐까?

또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수많은 교향곡과 기악곡 등을 작곡한 모차르트나 3곡의 오케스트라에다 <마왕>, <들장미> 등 140편의 주옥같은 가곡을 지은 슈베르트도 각각 35세와 31세를 일기로 요절한 괴재들이었다. 

또 <제3교향곡(영웅)>을 거치면서 마침내 저 불후의 명곡인 <제9교향곡(환희)>를 창조해낸 베토벤을 우리는 악성(樂聖)이라 하며, 바이마르공화국의 정무담당 대신 등 막중한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수많은 시와 소설 등을 썼으며, 23세에 시작하여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82세에서야 완성을 본 명작인 희곡 <파우스트>의 작가 괴테를 시성(詩聖)이라 하지만 악성이나 시성이라는 용어 역시 천재의 명칭에 다름 아니지 않겠는가?

우리 고장 경주에도 천재형의 인재들이 드물지 않다. 

다만 이들이 토박이가 아닌 경우에는 비록 탁월한 재능과 풍부한 경륜의 소유자라고 할지라도 이를 발휘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이 지역 특유의 정서가 문제이기는 하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일부 식자들이나 여론주도층들이 타관출신이거나 이곳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객지생활 끝에 귀향한 인사들에게는 좀처럼 마음의 빗장을 풀지 않는 고루하고 굴절된 애향심이 바로 그것이다. 

예컨대 고청 선생께서 재정 일제시대를 얘기하면서 신라의 초기 왕들을 샤먼에 비유했다가 그 후손들에게 봉변을 당한 경우라든가 백상승 시장이 10년의 유세 끝에 겨우 자신이 얼마나 고향을 사랑하고 있으며 또 뛰어난 CEO인가를 시민들로부터 인정받은 사례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동주 선생의 퇴임을 송별사가 아닌 송축사로 환영하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 공직의 얽매임에서 풀려났으니 이젠 고향이란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동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동리, 목월기념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그는 반토박이에서 본토박이로 변신했을 테니, 이 일의 마무리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또 <경주문인협회>, <경주문화원> 등 그가 소속해 있는 여러 단체에서도 와일드카드 역할을 멋지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문화계의 새 스타, 새 천재로서의 제2의 인생을 영위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장윤익 교수와 청진동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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