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와 나의 첫 평론집 (33회)
  제5장 문단(文壇)주변의 이야기들

1978년의 나의 비평 활동은 <한국문학>이 특집으로 시도한 <신춘문예 전략연구>의 소설 부문 원고청탁을 받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문학> 1월호에 <실험의식과 자기 스타일의 추구>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 활동과 신춘문예 지망자들이 어떤 자세와 준비로 신춘문예에 응모해야 하는가의 방향을 제시했다. 글의 논지는 신춘문예 당선을 위해서는 ‘실험의식과 자기스타일’이 중요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신춘문예에 대한 논의가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월간 <심상>지와 <한국문학>지에 월평을 쓰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과 <한국평론가협회> 회원이 되었다. 
 
권일송(權逸松) 시인과 흑산도

이렇게 중앙문단 예술인들과 교류를 넓혀야 할 시기에 평소 나와 친하게 지내던 당시 <전남매일신문>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문필활동을 하고 있었던 권일송(權逸松) 시인이 광화문 근처에 음식점 <흑산도>를 개점했다.
 
<흑산도>는 시인, 화가, 음악가, 연극인들의 아지트가 되어 시인 박성룡, 이규호, 신세훈, 정공채, 이수화, 최은하, 이광복, 평론가 조병무, 신동한, 윤병로, 장백일, 이정기, 장윤익, 화가 장윤우, 정린, 희곡작가 하유상, 이근삼 등 많은 예술인들과 상당수의 언론계, 경제계 인사들이 출입했다.

<흑산도> 음식점은 ‘흑산 홍어회’와 남도 특유의 김치 맛이 별미여서 특히 광주와 목포출신의 인사들이 들끓었다. 
 
권일송 시인은 시에 대한 안목이 매우 높은 시인으로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불면(不眠)의 흉장(胸章)’이 당선되고,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강변이야기’가 가작으로 입선된 실력파 시인이었다. 데뷔한 이래 무게 있는 작품발표와 활발한 문단활동으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시인으로 주목받았으나, 일찍 타계하여 허무와 아쉬움을 남긴 문단인이었다. 

권일송 시인의 부인은 전남여고 메이퀸으로 선발된 미인으로 매우 친절하고 스스럼이 없는 인품으로 문인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흑산도>의 경영은 부인이 한 셈이며, 김치 담그는 솜씨에 일가견이 있었다. 

어느 날 <시문학사>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몇 사람의 문인들이 권일송 시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환담하는 틈을 이용하여 나는 음식점 가까이에 있는 과일가게에 가서 바나나와 배를 한바구니 샀다. 

과일바구니를 들고 와서 권 시인에게 건네면서 “이것은 권 선생님이 드시지 말고 사모님께 갖다드리라”라고 말하니, 권 시인이 “뭐라고, 이 사람 큰 일 나겠네. 우리 마누라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 보겠네.”하며 좌중들과 함께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는 지금도 하늘 먼 곳에서 시의 향기를 뿌리며 에코의 여운으로 남아 있을 시인이다. 
 
▲ 권일송(權逸松) 시인 [출처 ; 블로그 순창문학]

바로 이해 9월 13일 김동리 선생은 태창문화사가 주최한 문학강연에서 한국문학의 방향, 특히 소설문학의 방향설정을 언급하면서 일부 리얼리즘 비평 그룹의 작업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쪽으로 기울어진다고 비판하고, 한국적 문학사상의 특집과 배경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의 사상성이라 할 때 독자나 평론가가 작자 자신들도 정치성, 사회성만을 통념화 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며, 이것이 일반적인 세계문학의 경우와는 다른 한국문학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1978. 9.13.

이에 대하여 구중서, 임헌영, 염무웅 등은 ‘현실 고발 및 인간 편에 선 진실의 증언’으로 그들의 리얼리즘 문학관을 피력하면서 김동리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견해는 논리가 비약된 일종의 패배주의의 입장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문학의 현실고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여기에 대하여 평론가 백철 씨가 중도적 입장에서 리얼리즘의 개념문제를 <조선일보>에 썼고, 내가 <중앙일보>에 ‘휴머니즘의 리얼리즘’이라는 글로 양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한국문학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논쟁을 결산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해 <시문학> 5월호에 ‘역사주의 비평의 허와 실’이라는 평론을 발표했다. ‘현실고발과 영원성’ ‘리얼리즘과 민족문학관’,. ‘시민문학론과 진실의 문제’ 등을 논의하여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었다. 
 
첫 평론집

이 작품은 1980년 2월 <문학예술사>가 출판한 나의 첫 문학평론집 <문학이론의 현장>에도 실렸다. 나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평론집에 실려진 비평원론, 작가의 세계, 현장의 문학 등은 삶의 현장과 미학적 가치의 조화를 추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라는 것으로 평론집의 성격을 집약했다. 

<문학이론의 현장>이 출판될 당시 나는 백승철, 강우식, 이탄, 김준식 등과 함께 시인 이우석 사장이 경영하는 <문학예술사>의 편집위원으로 있었는데, 이때 주간은 김종해 시인이었고, 문덕수 시인의 조카인 문무연이 <시문학> 편집장을 역임한 후 이 출판사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평론집이 나온 후 나는 첫 평론집이라 출판기념회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으나 이우석 사장이 출판기념회를 2월 내로 하자고 서두르기에 문단 사정을 모르는 나는 따라 가기만 했다. 

출판문화회관을 장소로 정한 출판기념회는 <문학예술사>가 음식을 준비하고, 신세훈 시인이 음료수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줄리아화장품 홍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이규호 시인이 후원하여 성황을 이룬 출판기념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백승철, 문무연과의 출판관계 인연이 계속되었다. 

백승철은 한국 여성잡지 대부로 <여원> 편집장, <주부생활> 주간과 편집장, <여성중앙> 주간, <우먼센스>, <리빙센스>의 창간, 부사장을 거쳐 <일요신문> 사장을 역임한 한국 여성지와 언론계에 크게 이바지 한 평론가이다. 

문무연 사장은 <인문당출판사>를 설립하여 무게 있는 학술서적과 예술서적을 출판하여 문학의 질을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나의 평론집 <북방문학과 한국문학>, <열린 문학과 닫힌 문학>, <지방화 시대의 문학> 등을 출판하여 음으로 양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출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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