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를 밟으며 간다 (17회)
  제3장 교편생활과 문단

대학의 학생생활과 겹치는 대구 신암초등학교에서의 나의 시작활동은 계속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의 대다수가 보고 있는 잡지는 <새교실>이었다. 이 잡지에 교사들의 문단등단 제도가 있어서 두 번 추천되면 시인과 작가로 인정받았다.

나는 그 잡지에 사촌동생 이름인 장미정으로 투고했다. ‘어휘를 밟으며 간다’라는 시였는데, 격찬하는 심사평과 함께 <새교실> 문단 1회 추천으로 실렸다.

어휘를 밟으며 간다
                            장미정

석가탄생일 불꽃놀이 하듯
빨간 등을 켜들고

단 하나 놓인 어휘를
하나씩 밟고 간다

한 층을 올라서면
예쁜 치마폭에 쌓여진
푸른 꿈이 펄럭이고

누군가 캄캄한 동굴을
밟히는
원광 어린 형상을 다듬고 있다

저마다 오직 하나를 위하여
떠밀고 온
오늘

퇴색한 어휘에
밤은 내려도

내일로 밟히는
커단 등을 켜들고

고독한 시간으로
우리는 한 층씩
이미지를 쌓아가는 것이다

- 대구 신암국민학교 교사  

이 시가 발표되자 전국 여러 학교 남녀교사들로부터 축하 편지와 서로 사귀어보자는 편지가 여러 통 왔다.

남자교사들의 편지는 다 묵살하고 가장 정성스럽고 문장이 좋은 여교사의 편지에 답장했다. 그 여 선생은 안동 어느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였다. 여러 차례 편지가 오갔고, 나는 여 선생의 입장에서 편지를 썼다. 그 여 선생도 여자동료와 문우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내용의 편지를 썼다. 나는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계속 여성 행세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교사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교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한 남자 선생이 받고 있었다. 그 선생이 두어 차례 “장미정 선생이요, 우리 학교에 그런 사람 없는 데요.”하고 두 번 반복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전화를 받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제가 장미정인데요.” 라고하자 저쪽에서 “장난 치지 말고 장미정 선생을 바꿔주세요.”라고 말했다.
 
▲ 새교실 1963년 11월호 [출처 ; 한밭교육박물관]

그쪽 입장에서 보면 장미정 선생은 틀림없이 여자인데 남자가 장미정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편지 중에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하면서 편지 내용을 몇 가지 예를 들자 그 여 선생은 “아이고, 이럴 수가......”하면서 전화를 놓아버렸다. 그 이후 나는 편지로 정중히 사과하고 우리들의 문학과 시에 대한 의견교류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같은 해 <새교실> 문단에 ‘바다, 2’로 추천을 완료했다.

다음 해에 나는 4학년을 담임하게 되었고, 50여세가 된 나이 든 여 선생님과 같은 교실을 오전 오후반으로 함께 사용했다. 10월경 여선생님 반에는 대구 간호학교에서 교생실습을 온 여대생 한 명이 배치되었다. 남성으로부터 호감을 살만한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는 여성이었다.

1965년 여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청구대학을 같이 졸업한 동기생 모임인 <청구회> 회원들이 권유화 선생이 살고 있는 밀양 영남루 근처의 강변에서 야유회를 갖게 되었다.

부인을 동반하거나 부인이 없는 사람은 약혼자라도 한 쌍이 되어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큰 걱정을 했다 .회원 8명 중 5명은 결혼을 했고, 권유화는 약혼을 하여 곧 결혼을 할 단계에 있고, 서정호는 애인 유 선생이 있어서 별 문제가 없는데 나만이 문제였다.

나는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교실을 같이 사용하는 여선생에게 말씀 드리니, 교생과 상의한 후 두 사람의 문제니까 장 이야기 해보라고 해서 교생선생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하루만 애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문진희 교생이 쾌히 승낙하여 하루를 즐겁게 지냈다. 그 후 두세 번 학교에서 만나기는 했으나 교생실습이 끝난 후 간호장교로 입대하여 중령으로 까지 올랐다는 소식만 들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적격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5~6학년은 잘 다룰 수 있는데, 1~2학년 가르치기는 정말 힘들었다. 초등학교 선생은 1~2학년을 잘 가르치는 선생이 진짜 선생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것이다.

‘동심에 들어 갈수 있어야 초등학교 선생으로 적격이다’는 생각에서 나는 중등학교로 갈 준비를 했다.

중등학교 교사 순위고사를 보고 시험에 응시하여 2등으로 합격하였는데, 15등까지 2월 말에 발령될 것이라고 명단 밑에 기록되어 있었다.

순위고사를 친 다음 나는 아무래도 대학원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떠나면 국어를 전담해야 하고, 좋은 국어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원 공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원 시험을 치기로 작정하고 김춘수 교수가 계시는 경북대학교 대학원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경북대학교 대학원 입학시험에 응시한 16명 중에서 경북대 사대 1명, 경북대 문리대 1명, 나 세 사람이 합격되었다.
 
나 이외의 응시생 전원이 중국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했는데, 나만이 프랑스어룰 선택했다고 전공 주임 이재수 교수께서 매우 기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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