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반 활동과 해성(海星)클럽 (10회)
  제2장 아름다운 삶을 누리자

3학년이 되어서 나는 다른 공부는 소홀히 하고 문학과 철학공부에 열중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실존주의 등의 철학과 행동주의 문학공부에 열중하면서 <현대문학>, <사상계>, <문학예술> 등의 잡지를 항상 끼고 다녔다.

엘리어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예이츠, 프르스트의 시, 손창섭, 오상원, 이범선, 장용학, 선우휘, 김성한, 송병수, 황순원, 김동리, 한무숙, 손소희 등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하여 시건방이 들기 시작했다.

대구사범학교  신문 <대사춘추(大師春秋)>가 창간되어 편집국장이 되면서 신문에 ‘실존주의에 대하여’라는 논설을 발표했다. 대학생도 쓰기를 망설이는 실존주의를 고등학생이 논한다는 것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서론 부분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세기의 예술지상주의는 이미 사멸하고 말았다. 인간들은 이미 예술이라는 옹졸한 상아탑이라는 현실을 잊어버린 생활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의 예술작품을 쓴다는 사실은 사회 안에서 행동하는 것이며 어디까지나 사회에서 흥기하는 여러 사실에서만 모든 해답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보다도 불안한 위치에 처한 현대사회가 인간존재의 존재성을 시간성으로 파악하려고 한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까뮈가 그의 소설 ‘이방인’에서 인간의 존재성을 시간성에 놓여 진 것이라고 규정하여 실존적인 인간상을 제시한 것은 더욱 더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면 현 세대의 모든 인간들의 존재성을 규정한 실존이란 무엇이며, 실존주의란 무엇을 말함인가?
 
- ‘실존주의에 대하여’의 서문 -
 
이렇게 서론을 거창하게 제시하고, 본론에서 실존의 의의, 실존의 두 가지 개념, 실존주의 철학자 케에르 케골, 아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 자크 마리탱, 카뮈, 니체 등을 대상으로 실존주의 전반을 해설한 글은 그 당시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 글을 보았다면 얼마나 웃었을까 하는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러한 것들은 고등학교 시절의 견딜 수 없는 젊음의 불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학년 여름방학 때 문예반 학생들의 해변수련이 계획되었다. 참가 신청을 받고 보니 남학생은 한 사람도 없고 여학생 11명이 신청했다. 3학년이 3명, 2학년이 2명, 1학년이 3명, 1학년 생의 친구인 경북여고 학생 3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지도교사도 여교사인 변덕진 선생이었다. 3학년 여학생에게 인솔을 부탁했으나, 도저히 곤란하다고 사양하고, 지도선생도 여학생으로는 여러 가지 주선으로 어려우니 힘들지만 문예반장이 인솔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기에 어쩔 수 없이 1:12의 성별 비율로 1박 2일의 연수를 포항에서 실시하게 되었다.

교통편, 여관, 식사, 간식 등의 주선, 놀이, 글짓기 시간 계획, 문예토의시간 계획 등 혼자서 계획하고 안내하는 정말 정신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함께 수련에 참가한 후배 여학생들에게 문예지도와 아울러 수영도 가르쳐주고 했는데, 우리 학교 1학년 학생들과 경북여고 1학년 학생 6명이 나를 오빠처럼 따라주었고, 그 중 4명은 내가 졸업할 때 당시로는 매우 값비싼 앨범을 선물해주었다. ‘송, 강, 전, 서’의 사인이 뒤에 붙어 있었다. 그들은 송경희, 강강희, 전정숙, 서무자 등이다. 그 중 한명은 몇 개월 후 오빠 동생의 관계를 맺었다.
 
▲ 어느날의 <해성(海星)>클럽

이 무렵 사회봉사와 농촌계몽의 정신으로 모인 <해성(海星)> 클럽이 발족되었다. 대구사범학교 박종달, 이영근, 장윤익, 최옥희, 김정자, 경북고등학교 정해걸, 남중구, 박원길, 계성고등학교 손중철, 영신고등학교 이석용, 서부고등학교 김종국, 경북여고 이양자, 김춘자, 대구여고 황수자, 남산여고 정숙희, 그밖에 신명여고, 제일여고 등 3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회원들 중 대부분은 학교의 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 기독교학생회장 등을 맡고 있었고, 지도 선생님은 경복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4학년생인 유시연 선생이었으며, 남대구경찰서 부근의 감리교회에 모여 회의와 의견교환을 했다. 성별을 초월하여 우정이 돈독했다.

<해성>회원들은 일 년에 두 차례 봉사활동을 했다. 해마다 성탄절 이브가 되면 회원 각자가 집에서 가지고 온 쌀을 부대에 담아 대구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로 알려진 해방촌을 돌았다. 그 동네에서 가장 못 사는 대문도 없는 20여 집 방문 앞에 쌀 포대를 몰래 갖다 두는 일을 3년 동안 계속했다. 어쩌면 산타클로스를 본 받은 봉사활동이었다.

우리 회원들 중 남중구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동아일보>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관훈클럽> 총무를 지내면서 한국 언론계의 대기자로 각광을 받았으며, 정해걸(丁海傑)은 의성군수를 세 번이나 역임하면서 군민들로부터 무투표로 지지를 받은 탁월한 행정가로 성장했다. 같은 경북고등학교 출신의 박원길은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의료봉사에 앞장선 회원이다.

대구사범의 박종달은 초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사업계에 투신하여 볼 베어링을 생산, 수출하는 큰 기업체의 사장이 되어 우리 경제계를 주름잡고 있으며, 이영근은 보사부 국장을 거친, 우리 복지사회를 위한 봉사에 앞장선 회원이었다. 다른 회원들과 국내와 해외에서 봉사하는 일을 기본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시기에 나는 경주출신 대구사범 유학생회 회장이 되면서 경주출신 학생들과도 두터운 우정을 쌓았다. 변종화와의 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정태명, 김영선, 김수자, 문수자, 김문강, 김국자, 그리고 후배들인 이장춘, 손흥익, 김동식, 이갑득 등과는 지금도 그때의 고향의식으로 교류하고 있다.

11월 중순 본과 3학년생들은 대구 시내 여러 학교에 분산되어 교생실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구 <종로초등학교>로 배치되었다. 박배익, 이상기와 함께 한반 교생이 되었는데, 교생 실습은 학생들과 호흡도 잘 맞고 담임선생도 성의 있게 지도해주어서 4주간의 교생실습을 재미있게 마쳤다.

교생실습을 마치는 이틀 전쯤 담임선생이 하실 말씀이 있다기에 만났더니, 담임하는 학생 중에 대구 현직 국회의원 손자가 있는데 장 선생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싶다고 전갈이 왔으니 의향이 어떤가를 물으셨다. 그 학생의 집은 우리 집 근처에 있어서 시간제로 하면 가능하다고 승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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