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타주 시비(是非) (16회)
  제3장 교편생활과 문단

신암초등학교에 온지 3년이 되던 해(1964년)는 나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해였다. 대학 총학생회의 학예부장을 맡았기 때문에 하루 한번은 결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학예부 산하에 문예반, 연극반, 합창단, 산악반 등 여러 반이 있고, 어느 부서보다도 예산이 많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도장을 맡길 수 없었다.

때문에 오전반이면 오후에, 오후반 이면 오전에 몰래 빠져나가서 대학 학생회 내 자리에서 결제를 하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이것을 학교 당국에서 모를 리 없었다. 자연히 나는 윗분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고, 근무성적이 나쁘게 보고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의 강의 참석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심정을 나는 <사보타주 시비>라는 수필로 피력한 적이 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재단(財團)의 진행과정을 시비라 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시비곡직’이나 ‘시시비비’라 할 수 있는데, 하여튼 잘잘못이 원인과 결과를 노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표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있듯이 시(是)는 반드시 옳고 비(非)는 반드시 그르다는 이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보타주(sabotage) 라는 명사 역시 태업(怠業)이라는 의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사보타주는 샐러리맨이라는 직장의 질서와 야간 학생이라는 이중생활의 충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태업의 동기가 시작되는 어느 날이었다. 이은상 교수의 <한국사상사> 강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아직 직원종례라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토요일이지만 4시가 넘어서야 종례가 있고, 종례를 마쳐야 자유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은상 교수의 강의는 3시부터 시작되고, 그날의 강의 제목은 <혁명론>이었다. 매우 관심이 가는 강의였기 때문에 강의 시간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가고파>의 노래를 듣는 것만큼 이 교수의 강의는 사상의 심연을 발굴해내는 놀라운 충동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느덧 나의 머릿속에는 사보타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일 당할 일은 내일 일이 아니겠는가?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 오늘 일은 오늘로 끝내자’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렇게 해서 몇 차례나 종례에 불참했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이러한 사보타주는 몇 차례나 계속되었다.

이은상 교수의 시간만이 아니고, 다른 나의 개인적인 일에도 적용되었다. 그렇다고 공부와 관계된 이외의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무사할 리가 없는 일이었다. 학교 책임자에게는 수긍이 가면서도 반발이 가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몇 차례 있은 어느 날 핏발선 교장선생의 눈이 조용한 아침을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오히려 가라 앉아 평정을 찾고 있었다.
 
▲ 1963년 신암초등학교 교사(校舍)와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의 언성이 높아갈수록 오히려 태연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잡념에 빠져들고 있었다.
 
부조리하게 살아가는 인생의 여건들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침묵을 위한 나의 질문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부조리한 사랑의 공식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생택취페리는 무엇 때문에 북극 상공으로 사보타주를 했을까요?”

“당신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를 읽었습니까? 니체는 무엇 때문에 도시를 피해 산으로 갔다가 다시 도시로 되돌아온 것일까요?”

“카뮈의 <이방인(異邦人)>이 노벨상을 타게 된 이유를 아십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오후에 여인과 동침하고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때문에 살인하게 되었다는 대답의 까닭을 아십니까?”

“모든 존귀와 영화를 내던지고 고행을 택함으로 달관한 석가모니의 법열(法悅)을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고기잡이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화시킨 예수님의 일은 질서의 파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소크라테스의 독배(毒杯)는 생명의 사보타주로 보고 계십니까?”

“인생은 몸부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몸부림, 그리고 무엇인가 조금씩 역사를 진보시키는 몸부림, 좀 더 많은 역사의 진보를 할 수 있다면 현재를 사보타주하는 곡예사의 재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낙엽의 소리를 담은 늦가을의 햇살이 창문을 넘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눈언저리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2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 책상 부딪히는 소리, 책을 읽는 소리들로 법석이는 소음들이 가라앉자 교장실은 새벽의 순간 같은 조용함이 흐르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졌다.

“그래, 장 선생. 내가 너무 한 것 같소. 내일부터  좀더 열심히 근무해주세요. 시간이 필요할 때는 말씀해주시고요.”

“네.”

나의 입가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교장실엔 안온한 휴머니즘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아직 해답할 수 없는 시비였다. 그것은 바로 이긴 것도 진 것도 없는 시비의 결과였다.

내 생명이 존재하는 한 얼마의 사보타주가 계속 될는지 실존의 거리를 측량할 수 없듯이 나의 시비도 측량할 수 없는 거리의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다.
- 1964년 ‘청구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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