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고 시절과 결혼 (18회)
  제3장 교편생활과 문단

나는 대학원 다니기에 편리한 대구에 가까운 공립중등학교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구대학 교무처에서 부속학교인 청구고등학교에 나를 추천했다. 그래서 2월 25일 무렵 나는 여러 곳에 발령이 났다. 초등학교는 문경군으로 좌천 발령되었고, 공립 중등학교는 강구중학교에, 그리고 사립학교는 청구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이 났다.

문경 동로초등학교는 현지에 가서 사표를 제출했고, 강구중학교도 발령취소 신청을 내어 공립학교와의 인연은 이때부터 끝나게 되었다.

청구고등학교에서는 첫 해에 중학교 2학년 담임이 되었다. 그때 학반의 대표되는 학생은 김현과 최동석이었다. 당시 국어선생님들은 대부분이 동문들이었고 몇 분은 영남고등학교와 경주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신 실력 있는 교사들이었다. 중2를 담임하면서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정해져 있는 대학원 강의에는 열심히 참석했다.

다음 해에 나는 완강히 사양했지만 고3을 담임하게 되었다. 그 학교로서는 제2회 졸업생이 되는 고3의 두 반 중 1반을 맡아 학년 주임이 되었다. 사실 고3은 고등학교 1-2학년을 몇 년 가르친 후 맡아야 하는데 교감과 부교장이 다투는 학교의 복잡한 사정이 나를 고3 적임으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학원은 1년을 휴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고3 수업준비를 하던 중에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 오후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배구시합을 한 후 선생님들은 학생들로부터 대접을 풍성하게 받으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일찍 출근하여 학반 교실에 들어가니, 1학년 학생이 한 사람 교실 앞쪽에서 울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어제 학교에서 내려오면서 무심결에 돌을 찼는데, 아마 자기는 잘 모르고 있었지만 선배님에게 약간 스친 것 같아 선배님이 불러서 겁이 나 그냥 가버렸더니 오늘 교실에서 불러 야구 방망이로 맞고 있습니다.” 하고 울먹이며 대답했다. 출석번호 1번부터 차례대로 나가는 중에 십 몇 번째에 나에게 발견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무슨 짓이냐? 아이들을 죽일 작정이냐”고 소리치면서 주동자가 누구냐고 했더니 부반장과 돌에 스친 학생이 “저들이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3학년 두 사람과 1학년을 상담실로 데리고 갔다. 상담실에는 상담교사와 한 학생을 치료하러 온 김동식 선생이 있었다.

나는 1학년 학생부터 먼저 훈계하여 보내고, 두 사람에게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은 상급생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 무지하게 때릴 수 있느냐고 질책을 하니, 돌에 스친 학생이 “이렇게 된 데에는 후배 학생들을 잘 지도하지 못한 학교당국과 선생님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치료를 하고 있던 김동식 선생이 “뭐 학교와 선생님들이 책임이 있어! 건방진 놈 다 봤네.” 하시면서 “너 아버지 뭐해!”라고 말하는 중에 학생과 김동식 선생 사이에 시비가 벌어졌다.
 
▲ 현재의 청구고등학교 전경

결국 상담 선생도 개입이 되어서 사건이 커지게 되었다. 교사들의 분위기는 두 학생들이 공부 좀 한다고 시건방져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데 담임 선생님이 그냥 두면 앞으로 고생을 많이 하실텐데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두 학생들과 가까운 일부 교사들은 용서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던 중에 주동 학생의 어머니가 교장선생을 방문하여 거칠게 항의를 하여 교장선생이 흥분하게 되어 두 학생을 제적 처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때에 좀 더 장시간 깊이 생각하여 처리했더라면 하는 후회의 심정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 중 부반장 되는 학생은 사태가 이렇게 될 줄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 자기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데, 어머니가 이 일을 알면 큰일 날뿐 아니라 지금 3학년이라 전학 갈 곳도 없어 난감한 일”이라고 나에게 호소를 했다.

나는 그날부터 대성고등학교와 영남고등학교의 교장과 교감을 만났다. 대성고등학교에서는 전학을 받아주겠다고 하기에 그 학생에게 말했더니 “그 학교는 불량 학생들이 많아 잘못하면 맞아 죽습니다. 거기엔 안 가겠습니다.”라고 하기에 영남고등학교에 간청해서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영남고등학교는 청구고등학교보다는 조금 나은 학교로 평가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학생은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청구고등학교 3학년을 담임할 무렵 결혼을 했다. 대학시절의 <12인회>친구인 박승이 좋은 규수가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누나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주인집 딸인데, 집안도 좋고 언니는 한국은행에 다니고 형부도 의사라면서 생각이 어떠냐고 묻기에 한번 보기는 하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며칠 후 친구의 누나가 지금의 아내인 이은정(李垠政)과 언니 부부를 대구의 <맥심다방>으로 데리고 나왔다. 만나보니 매우 순수하고 덕성스러우며 판단력도 뛰어나고 해서 몇 차례 더 만난 후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상대편은 전권을 맡은 언니와 형부가 서둘러서 혼사가 쉽게 이루어졌다.

외과의사인 형부 박춘학은 문학에 취미가 있어서 대구 <달구벌> 문학동인회의 회원으로 시작(詩作)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중 자신과 취미가 같다는 사실이 나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결혼식에는 청구고등학교 제자들과 교사, <12인회>, <해성클럽>, <청구회>의 친구들과 경주중학교 동기생들 외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주었다. 그리고 축가는 중학교 동기생인 박수환이 부르겠다고 해서 실력을 반신반의하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아름다운 꿈(beautyful Dream)’을 너무 잘 불러서 그때부터 나는 박수환의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박수환은 노래뿐만 아니라 대화술과 춤에도 한국 일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친구이며, 친구들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는 좋은 품성을 가진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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