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풍운아 (18)

학계의 풍운아

오양호

<문학평론가, 인천대학교 교수>

내가 장윤익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늦가을이었다. <한국어문학회> 던가, 어떤 학술행사에 참가했다가 대구 중앙동 어느 음식점에서 뒤풀이를 함께했다. 장윤익, 권기호 교수, 나, 또 한 사람,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몇 사람이 문학에 대한 환담을 꽤 오래했다.

그날 장 교수는 여러 차례 자기가 재직하고 있는 인천대학을 자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 학교를 설립한 백씨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었다. 학교를 막무가내로 늘려나간 이야기, 대학교수를 뽑는 기준, 군대식으로 건물을 짓는 기상천외한 설계, 등등 그런 이야기 끝에 나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인천대학이 그렇게 탄생되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 대구, 여기는 대학교가 너무 많아. 인천 인구가 대구와 비슷한데, 인하대학 하나뿐이잖아. 인천대학은 앞으로 굉장히 커질거야. 오 교수, 생각 있어? 인천대학으로 올래?”

나는 이런 쉬운 제의에 웃기만 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서울 쪽으로 한번 가보고 싶은 게 꿈이잖아.’ 하는 생각이 삐죽이 머리를 쳐들고 나왔다.

내가 인천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내력이다. 1982년 3월, 갓 마흔의 나이로 식솔을 이끌고 서울로 입성했다. 집은 구반포로 마련하고, 백리길을 출근하기로 결정했다. 아파트 10미터 앞 큰 길로 통근차가 다닌다기에 출퇴근은 시간만 좀 걸리지 걱정이 없었다.

장윤익 총장과 나와의 이렇게 시작된 인간관계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년이 훨씬 넘는다. 그러니 그 사연을 다 쓴다면 한권의 책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중 장윤익이라는 인물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한두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할까 한다.

나는 1980년대 중반 교수생활을 안참 나이에 마감해야할 엄청난 사건에 직면했다. 학교 몰래 은밀히 학교를 옮기려하다가 가려는 학교에서는 발령도 나지 않았는데, 인천대학 시간표에서는 내 강의가 모두 빠져버리는 일이 터져,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천대학이 설립된 때는 1980년인데, 이 대학도 설립 이후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재단의 횡포를 비방하는 학생들의 항의전화, 교수의 연구활동이며 자격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잡음, 설립자가 원격조정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학교행정 등이 날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실 그 즈음 대부분의 사학재단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인천대학만이 학내 분규의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은 그 나름의 별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여기서 거론할 성질의 것이 아니니, 이야기의 줄기를 원위치 시킨다.

나는 직장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옮기고 싶었다. 인천대학이 시끄러운 대학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좀 더 큰 물에서 내 자신을 던져 넣고, 치열한 삶을 살면서 나의 전공을 심화, 확대시키고 싶은 심정이 사실 전자의 불만보다 더 강했다.

월간 <시문학>에서 ‘김동환론’으로 평론 추천을 완료했지만, 다시 <현대문학>에 ‘북만 체험의 시적 반응’으로 평단에 내 존재를 다시 알릴 기회를 가지면서 젊은날의 이루지 못한 문학에의 꿈을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중앙무대에서 한번 펼쳐보고 싶은 심정이 강렬히 내 심리 내부에서 꿈틀거렸다.

그래서 서울의 J대학 교수 채용에 이력서를 낸다. 최종 두 배수까지 올라갔다. 또 며칠을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인천대학 시간표에서 내 강의가 모두 빠져버렸다. 그런 시간 장윤익 교수가 나를 보자고 했다. 신림동 어두컴컴한 어느 음식점에서 만났다.

“오 교수, J대학 일 잘 되어 갑니까?”

“어떻게...”

“잘 해보시오. 그러나 어려울 걸.”

“...”

▲ 오양호 평론가 [출처 ; 오양호수필집 백일홍]

나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사문제는 일급비밀인데 어떻게 장 교수가 이 일을 자초지종 다 알고 있을까. 김동리 선생이 추천서를 써준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다 글렀구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대구의 효성여자대학(대구 가톨릭대)를 떠날 때 어느 선배 교수가 “너 거기(인천) 가면 낙동강 오리알 될 거다.”하던 말이 떠올랐다. 대구를 배반하고 떠나온 벌을 드디어 받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정신이 혼미해왔다. 그래서 한참동안 머리를 숙이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저 J대학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래요. 갈라케도 잘 안될낀데.”

“아닙니다. 장 교수님과 인천대학에 있겠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

장 교수의 한방으로 나는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왜 나와 상의 한마디 없이 그런 일을 했나. 내가 오 교수 잘 되도록 도와주지 방해할 사람이가.’ 라며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그 순간 장 교수의 눈에 떠올라 빛을 발하던 배신감에서 오는 분노를 나는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천대학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자기를 끌어준 고향 선배에게 한마디 암시도 없이 일을 다 해결해놓고, 이야기 하겠다는 내 계산이 배신의 행위가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인사 문제가 이렇게 되면 통상 일은 그르치게 된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런 장 교수 뒤에는 그를 아들처럼 믿는 설립자 백씨가 있고, 이 일도 분명히 그 양반이 리모트컨트롤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이 섰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 촌놈이 겁도 없이 권속을 거느리고 과천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반포로 들어와 잡은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 조폭 두목 같은 장 교수 앞에서 그 졸개처럼 나의 모든 것을 팽개쳐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인천대학에 재직하게 되었다. 장 교수가 도와준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양반에 의해서 두 번 살아남 셈이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25년 전의 나에게는 ‘서울, 인천’이 완전한 객지였고, 나는 그 객지로 근거 없이 날아든 깡 촌놈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지방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한 순종 촌놈이 서울이나 인천에서 대학교수가 된 것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이 희귀한 예가 모두 장윤익 교수의 힘이다. 장 교수는 그를 따르는 후배교수를 친형처럼, 큰형처럼 도와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장 교수를 사석에서는 ‘형님’이라 부른다.

언제나 소박하고 무슨 일이든지, 부탁하면 자신의 힘이 있는데 까지는 도와준다. 내 주위에 장 교수의 도움으로 대학교수가 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로부터 장 교수의 이런 면을 덕담으로 늘어놓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가 인천대학과 경주대학에서 두 차례나 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 교수의 이런 보스기질 때문일 것이다.

그와 인간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어느 결정적 순간 그와의 신의를 반드시 생각하게 하고,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그에게 있다. 이 ‘무엇’이 골목대장의 그것인지, 보스의 그것인지, 조폭두목의 그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무엇’은 그를 대장으로 만드는 어떤 힘이다. 남성적 세계를 지배하는 일종의 카리스마, 대학교수의 정서와는 다소 동떨어진 어떤 괴력이다. 이중성이 아니라 양가성이고 양면성이다.

장윤익 교수가 이런 재주만 있는가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장 교수는 불어와 일어가 상급수준에 와있다. 그런데 이런 어학실력을 모두 독학으로 이루어내었다. 불어는 대학교수이면서 학부학생들의 교양강좌를 들으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일어는 TV를 보면서 시작한 공부가 이제는 국제 학술발표장에0서 일어로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요새도 이 양반은 수첩에 한자를 적어 다니며 그것의 일이 발음이 어떤지를 공부하고 다닐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하다. 그러나 부지런한 것만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을 게다. 남을 휘어잡는 재주 못지 않게 공부를 휘어잡는 재주도 보통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4년 2월 <문인협회> 선거 때 나는 또 한 번 장 교수의 큰 도움을 받았다. 자신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나에게 평론분과 회장에 출마하도록 자리를 양보한 후 중앙대학의 이명재 교수, 임헌영 교수, 동덕여대의 조병무 교수 등과 나를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다.

경주에 거주하면서 아침저녁 상황을 묻고, 조언을 하고, 여기저기 부탁을 했다. 사실 나는 학생시절 급장선거를 해본 이후 선거란 처음이라 비리비리하고 있었는데, 장 교수가 참모역할을 함으로써 버릇없는 젊은 상대를 꺾을 수 있었다.

장 교수의 마당발, 넓은 인간관계가 다 해결해주었다. 또한 이 어른의 서민적 삶의 자세, 두 대학에서 총장을 지낸 이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생활태도가 사람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장 윤익 교수와 나 사이에 이런 만남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여년 동안 얽히고 설킨 일화가 숱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미룬다. 혹시 소설이나 수필은 소재가 될지 모르겠다.

저 세상이 실재한다면 나는 거기 가서도 이 어른과의 관계를 계속하고 싶다. 여전히 나를 형처럼 끌어줄 것이고, 기를 살려줄 것이고, 믿음직한 나의 후견인 노릇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시시한 이야깃거리로도 희희덕거릴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또 고급 술집에 갈 일도 없고, 고급 레스토랑을 찾을 일도 없고, 여자를 찾아 눈을 번뜩일 일도 없기 때문이다.

“장윤익 교수님, 장윤익 총장, 형!”

늘 거기 그렇게 건강하고 순박하게 오래오래 계십시오. 내가 대구 어느 음식점에서 형을 만난 게 내 운명을 돌려주었고, 내 가족의 삶을 바꿔주었습니다. 나는 그 날을 늘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집사람도 그러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