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되지러
이태희
<인천대학교 초빙교수, 국문과 82학번>
장윤익 선생님을 제가 처음 뵙게 된 것은 인천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던 1982년입니다.
그 무렵의 첫인상을 말씀드리자면 부리부리한 눈매와 호탕한 웃음, 그러면서도 자상하고 인자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로서는 선생님께 여느 학생과 다름없는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온순한 학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혹여 선생님께 누를 끼치는 외람된 일은 아닐는지........
선생님과의 친분을 쌓게 된 것은 아마 제가 <인천대학보사>기자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당신 선생님께서는 학보사 주간을 맡고 계셨는데, 학보 조판을 하러가던 수원의 <경인일보사>에 오셔서 기자들을 격려해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딱히 어떤 말씀을 들은 생각은 나지 않지만, 항상 무슨 이야기 끝에는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그러면 되지러?” 하고 상대편의 동의를 구하시는 말씀이 인상에 남았지요. 가끔 동기 기자들과 이 말씀을 흉내 내며 웃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매사에 적극적이시고 긍정적이시며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시던 선생님의 ‘특허’라 할 수 있는 한마디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그 외에 학부 시절 선생님과의 일들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선생님께서 문학평론 활동을 하시던 터라 몇몇 모임에 따라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그러다가 제가 학부를 졸업하고 모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첫입학생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1989년 봄인데, 이 무렵부터는 선생님을 자주 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지도교수 배정신청을 할 때였습니다. 저는 <현대시>를 전공하고자 했는데, 당시 모교엔 <현대시>를 전공하신 두 분의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시인이신 유승우 선생님과 평론가이신 장윤익 선생님이셨지요. 두 분 다 <현대시>를 전공하셨는데, 어느 분을 지도 교수로 모셔야 할까, 솔직히 그때의 심정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학부시절부터 <시창작>지도를 해주신, 유승우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생각을 <현대소설> 전공이신 오양호 선생님께서 바꿔주셨지요. 당시 오양호 선생님께서도 왕성한 평론활동을 하고 계신 덕인지는 모르지만, 오 선생님께서는 “창작 활동을 하시는 유 교수님께 ‘시’를 배우고 있으니, 평론활동을 하시는 장 교수님께 ‘시론’을 배우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리하여 저는 선생님의 인천대 대학원 첫 지도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석사논문을 쓸 무렵 지도교수이신 선생님으로부터 이렇다 할 논문지도를 사실 제대로 받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모교의 부총장으로, 총장으로 재임하시느라 바쁘셨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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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희 인천대학교 초빙교수 [출처 ;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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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선생님으로부터 비로소 ‘공부방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선생님께서 <북방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저서를 준비할 무렵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저는 약간의 자료정리를 도와드린 일이 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는 연구서를 집필하는데 필요한 자료의 해석과 평가에 대해 알려주셨으며, 특히 ‘노트활용의 비법’까지 전해주셨지요.
그 비법이란 능숙한 학자들에게는 대단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겨우 공부의 길에 접어든 저로서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는데, 간단히 이른다면 자료에 대한 ‘꼼꼼한 노트 만들기’라 할수 있지요. 이 비법은 나중에 10년 쯤 뒤에 제가 박사논문을 쓸 때도 적절하게 활용되었지요. 덧붙여, 선생님의 꼼꼼함과 자상함을 떠올릴 수 있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동문들의 모임에서 어느 후배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 후배가 선생님의 강의 시간에 어떤 질문을 하였는데, 선생님께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시고 ‘나중에 알려주겠노라’고 하셨답니다. 아마 그 수업이 그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었던 모양입니다. 방학이 지나 다시 개강하였을 때, 그 후배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질문에 대해 선생님께서 ‘답이 늦었다’며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진정한 교육자다운 따뜻함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는 후배의 전언이 있었지요. 저도 언젠가 선생님의 강의노트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중학생들의 꼼꼼한 단어장처럼 빼곡히 들어찬 글자들의 향기가 우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강의노트를 생각하면서, 수업에 임하는 저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습니다.
그 후 선생님께서는 고향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시면서, 사실 선생님과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서 알게 모르게 마음 속의 그리움도 생겨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멀리 있어봐야 고마움과 그리움을 알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선생님께서 자리를 옯기셨기에 인천대 첫 대학원 지도학생이면서 마지막 지도학생이 된 저로서는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요. 선생님께서 회갑기념출판기념회를 열 때에나 겨우 찾아뵙는 정도였으니, 무심하다 못해 인사도 예의도 모르는 철없는 제자라 해야 마땅하지요.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멀리 계셔도, 가끔씩 제자의 안부를 물으시고, 제 진로를 걱정하여 주셨지요. 선생님의 그러한 염려와 격려 덕분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지금은 비록 계약직이지만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서 선생님께 늘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처럼 선생님과의 일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어느새 선생님께서 정년을 맞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면서도, 선생님 생각에 잔잔한 물결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조만간 선생님을 찾아뵙고 맑은 술 한잔 올릴 것을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칠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