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슴에 소탈하신 인격자 (26)
  제12장 지인들이 본 장윤익3

따뜻한 가슴에 소탈하신 인격자

임경수
<성결대학교 교수>

막상 글을 쓰려니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나는 받기만 했고, 장 박사님을 위해서 해드린 것이 없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원고청탁이 왔으니 저토록 나를 마음에 두고 계셨는가 싶어서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마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하기야 그 분이 뭘 대접한다고 좋아하실 분이신가, 그저 마음으로 통하면 되는 것이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장 박사님과의 인연이 15년 정도 되니 짧은 세월만은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분의 삶의 궤적이 범인(凡人)과는 달라 대학총장을 두 번씩이나 하고, 지금도 학계에서 큰 족적을 남기고 계신 분이라 한참이나 후배인 나의 글이 그 분의 인생을 폄훼시키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겪고 느낀 것을 솔직히 엮어본다. 

먼저 장 박사님은 참으로 가슴이 따뜻하신 분이다. 1989년도 말에 대학개편의 누락과 함께 한때 소용돌이쳤던 우리 학교의 상황 속에서 나를 음해하는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장 박사님도 내 얼굴은 모르고 있었으나 재단이사로서 내 이름을 이미 알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당시 나와 몇몇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투서가 학교 당국에 들어가고, 특히 나에 대해서는 신분상의 문제까지 논의되었던 모양이었다. 

그 무렵 장 박사님께서 학교 경영의 합리화와 대학승격을 위한 대안을 학교 당국에 피력하였고, 이런 과정 속에서 당시 위기에 처한 나의 사정을 변론하여 그 위기 상황을 잘 넘긴 일이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나의 신분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장 박사님으로부터 크게 도움을 입게 된 것이다. 

이런 만남 때문에 나는 장 박사님을 생각하면 어떤 일에서나 합리적이고 가슴이 따뜻한 분으로 기억한다. 또한 장 박사님은 아주 소탈하고 고매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다. 잦은 만남이나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나, 이따금씩 만나면 매우 소탈하고 인간적이시다. 

학기 중에는 우리 학교에 강의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번은 오시지만, 박사님이나 나나 바빠 서로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이다. 그러다가 학기말이 되면 겨우 별러서 식사라도 한번 할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가는 곳이 늘 <한촌설렁탕>집이다. 늘 그렇지만 맛있는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하려고 분위기가 좋은 음식점으로 가자고 하면 한사코 사양하시고, 언제나 안양 명학역 옆에 있는 <한촌설렁탕>집으로 방향을 정하고 앞장서서 가신다. 
 
▲ 임경수 전 성결대 교수 [출처 ; 성결대학교]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내 연구실에 들를 때가 있는데, 그때도 그저 녹차 한잔이면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에 있듯 먹고 입고 사는 문제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다. 그저 만남을 좋아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기는 인간미가 풍부한 분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 박사님을 아주 소탈하고 인격이 훌륭한 선배교수로 존경한다. 

또한 장 박사님은 합리적이면서도 욕심이 없는 뛰어난 지도자이시다.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와 아주 가까운 경주대학교에 재직하는 동학교수 한 분을 학술세미나에서 만나게 되어 장 박사님의 안부와 요즘 어떻게 지내시고 있는가를 물었다. 

장 박사님이 경주대학교에 부임하실 때만해도 그 학교가 상당히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는 것을 신문에서 여러 번 본적이 있기 때문에 내 딴에는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그 교수의 답은 의외로 명쾌하고 간단하였다. 

“학교의 분위기가 아주 좋아졌어요. 학교 당국과 교수, 학생들 사이에 다소 문제가 있었으나, 장 총장님이 오셔서 학사행정을 합리적으로 처리하여 구성원 모두가 잘 따르고 있습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 교수는 말을 덧붙였다. 

“밤늦게까지 교수실에 남아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들을 총장이 격려하고, 이들 교수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서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부탁하고 협조를 구하여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대학 경영을 남의 말보다는 직접 확인하고 경험하여 추진하는 행정을 폈던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입학정원이 대폭 증원되어 대학발전의 토대를 튼튼하게 한 것이다. 장 박사님은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분명히 아시는 분이다. 총장을 연임하지 않고 유능한 후배에게 물려준 것은 ‘고인 물은 썩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순리’라는 당신의 철학 때문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지위가 높아지면 욕심도 생길 법한데 이런 유혹을 스스로 단절하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지도자이시다. 인생에서 ‘때’라는 것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흔히 아침, 점심, 저녁 등의 의미도 있고, 특정 시간을 나타내어 몇 시 몇 분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평범하게 시간의 의미로 인식하는 이 ‘때’라는 것을 시간이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으로 정의 내렸던 인식의 전환이 내게 있었다. 

물리학적 시간을 사회과학적 관계로 해석하는 것! 그것은 장 박사님을 만났기에 가능하였다. 만약 그때(1989년) 장 박사님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짓된 권위와 위선이 판을 치고 가짜 박사가 판을 치던 그 시절에 장 박사님 같은 분이 계셨다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몰랐다. 

“양심에 정직할 것, 위선과 불의에 저항할 것, 정직하되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동일하게 정직할 것, 저항하되 목을 곧추세워 항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자가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교화할 것,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여 나를 미화하지 말 것”

이런 교훈들은 80년대 말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스스로 터득하면서 조금씩 다듬어왔던 것들이고, 이 과정에서 장 박사님의 나무그늘은 늘 크게 내 속에 자리하여 왔었다.

이제 정년이시라니 지금까지도 늘 그러셨지만 앞날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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