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대학교 발전의 초석을 쌓으셨도다 (28)
  제12장 지인들이 본 장윤익3

경주대학교 발전의 초석을 쌓으셨도다

김영환
<경주대학교 기획처장, 경찰 법학부 교수>

1994년 흐린 캠퍼스의 봄은 학생소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개교 당시의 한국관광대학교를 경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자 1992년에 발생한 학생소요가 한해의 잠복기를 거쳐 터져 나온 것이다. 학생들은 교명환원을 요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하며, 연일 과격한 집회를 개최하였다. 

그해 학생처장으로서 학교에서 숙식을 하면서 사태를 수습하고자 동분서주하였으나, 진정되지 않았고, 학생들이 학교에 방화를 기도하는 심각한 사태로까지 발전하였다.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이를 어쩌나?’ 하고 고민고민 하던 어느 날 장 총장님께서 찾아오셨다. 

그리고 전임 대학교에서 겪으셨던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해주셨다. 나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그때 제시해주신 방안을 활용하여 학생소요를 잘 해결하게 되었다. 장윤익 총장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 감사의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게 되었고, 다음해 2월 경주대학교 제3대 총장으로 취임하셨다. 결국 장 총장님을 모시고 학생처장을 계속하게 되었으며, 장 총장님의 지혜로운 대책으로 교명문제와 관련된 학생소요의 불씨도 꺼지게 되었다. 

1995년부터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정부가 ‘교육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한 상아탑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교육부는 학부제, 복수전공, 최소 전공인 정학점제도, 교수업적평가 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보수적인 대학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학교육 개혁실적을 평가하여 그 성적이 우수한 대학에게 당근으로서 재정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대학들은 기획처에서 특별연구팀을 구성하여 많은 조사, 연구를 거쳐 새로운 제도를 확립하고 시행하기 시작하였으나, 당시 우리 대학은 부족한 교육환경과 장기간의 소요로 인하여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이러한 시도를 생각하지 못할 형편이었다. 특히 기획실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누군가가 시도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였다. 

장 총장님께서는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셨는지 모르지만 1995년 9월 나에게 교무처장 일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완강하게 고사하였으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셨기에 장 총장님과 같은 배를 타게 되었고, 결국 교무처장으로서 교육개혁과 대학특성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몇몇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우리 대학교도 변화를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결과 1997년 3월 <교육개혁추진 실적 및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1997년 5월 교육부에 ‘교육개혁우수대학 재정지원 신청 예비계획서’와 ‘지방대학 특성화사업 재정지원 신청 예비계획서’를 제출하였는데, 교육부 심사에서 모두 통과되어 본 계획서를 제출할 기회를 얻었다. 
 
▲ 경주대학교 본관 / 오늘날의 경주대학교 발전에는 장윤익 총장의 헌신이 있었다

결국 4년제 대학교 거의 모두가 이 예비계획서를 제출하였고, 그 중에서 60개 대학을 예지로 선정한 것이므로 당시 학교사정으로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 뒤 소위 지방대학특성화사업 재정지원대학으로 선정되었고, 5년 동안 국고 28억을 지원받아 시설, 기자재확보, 교육 및 연구여건 개선 등 특성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경주대학교가 오늘날과 같은 ‘문화관광 특성화대학’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그때의 보고서가 바탕이 되어 2000년 이후 3년간 교육부로부터 교육개혁우수대학으로 선정되었다. 

장 총장님은 이런 계획의 수립과 추진을 총괄 지휘하셨으며 연구, 기획을 담당하신 교수님들이나 추진부서를 따뜻하게 결려해주시고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해 주셨다. 장 총장님께서 경주대학교 명칭에 ‘우수’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추가시켜 주신 것이다. 

이 사업들의 성공으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 있던 대학 구성원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보면 이 사업들의 무형적인 가치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장  총장님께서 총장으로 계신 4년 동안, 대학이 이렇게 질적으로 충실해진 것만은 아니다. 어린애의 키가 해마다 몰라보게 커지듯이 학교의 규모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1995년부터 해마다 약 200명씩을 증원하여 현재의 입학정원을 가지도록 하셨으며(1995학년도 입학정원 500명에서 1999학년도 입학정원이 1,570명이 됨), 일반대학원과 행정경영대학원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사회교육원과 외국어교육원과 같은 부속기관 및 각종 부설연구소가 신설되어 대학교육, 연구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로써 경주대학교가 ‘초미니대학’에서 ‘소규모대학’이지만 그래도 외부에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대학으로 승격된 것이다. 

장 총장님은 달변이시고 대단한 인화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총장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격의 없이 나누는 대화 속에는 인생과 문학과 대학이 있었으며, 삶의 경륜과 지혜가 배어있다. 

장 총장님의 이러한 면들이 경주대학교가 질적으로 충실해지고 양적으로 확대되는데 있어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관 중인 <1995 DIARY>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대학에서 총장님을 믿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쌓아온 학식과 경륜을 바탕으로 대학발전에 이바지하라는 전체 구성원의 기대와 부탁을 한몸에 걸머진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마 장 총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메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 총장님은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셨고, 또한 그러한 부탁을 완수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경주대학교 발전의 초석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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