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그늘에 앉아서 (33)
  제13장 지인들이 본 장윤익4

능소화 그늘에 앉아서
손종일
<소설가, 경주대학교 졸업생>

낮에 잠시 여의도에서 이번에 발간 될 내 소설의 책자를 맡은 출판사 사장을 만났다. 십여년 만의 무더위라는 열기 속에서 만난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의외로 해맑아보였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동안 뭐 했어요?”
그가 물었으나 나는 적당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동안 뭘 했던가? 그건 그가 내게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에게 던져보아도 훌륭한 질문일 것 같았다. 

나는 어딘가 고장이 나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내 몸의 고장이 아니라 내 정신의 고장.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내게 던진 질문에 답답해하다가 급기야 건강하지 못한 언어를 내지르며 고함이라도 내 지르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이 넓디넓은 서울 바닥에서 기대고 비빌만한 언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불치의 병균을 옮기는 곰팡이균이 내 몸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선생님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자그마한 책자라도 만들까 싶어서......”
참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어보는 손진은 선생님의 전화기 속 음성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결국 종로5가에서 내려 뭉기적거리며 지하에서 기어 나왔다. 더웠고 짜증스러웠으나 천천히 충무로를 거쳐 한옥마을까지 걸었다. 걷는 동안 나는 내내 퇴임을 앞둔 선생님을 생각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그 많은 선생님의 지식을 후배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당함, 졸업하고 자주 가보진 못했으나 늘 거기에 가면 계실 것으로만 여겼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부당함.

그 부당함 속에서 나는 다시 내가 기대고 비빌 언덕 하나가 민드럼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동안 뭐 했어요?”
출판사 사장의 물음이 교모하게 내 부당함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물음은 곧 내안으로 들어와 파장이 되어 버렸고, 나는 급기야 능소화가 새빨갛게 떨어지는 한옥마을 돌계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버렸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그가 그렇게 물어왔을 때 내 대답이 뭐 했나 기억해냈다. 

“그냥.......”

그랬다. 그것이 내 대답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쁘지도,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않은 그저 적당하게 ‘그냥...’이라는 말로 충분할 만큼의 시간들만 견뎌냈을 뿐이었다. 거기서부터 나는 일단 정년퇴임을 앞둔 선생님께 죄송스러웠다. 그곳에서 벗어난 후,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라도 자주 드렸어야했다는 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 손종일 작가 [출처;현문미디어]    
‘그냥...’이라는 말로 충분할 만큼의 단편적인 삶을 살아온 내게는 그런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선생님의 퇴임을 앞두고 만들어질 거라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슨 얘기를 써야 하나’라는 것에 대해 골똘함보다 정년퇴임이라는 말이 마음 속을 관통하는 허전하고도 아릿한 느낌의 정체에 대해 나는 혼란스러워했다. 

미치도록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내 이성이 비로소 깨어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문학에의 목마름정도였을까? 그래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일까?

열 살도 더 나이차이가 나는 학부생들 틈에 끼여 학교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그 시기, 그 시기의 나는 내 약시(弱視)의 문학을 통탄해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강한 자신감도 역시 없었다. 그저 막연히 내 몸이 문학을 받아들이고만 있던 시절이었다, 정말 막연히. 

그 막연함 속에서 학부를 맞이했으니 학업에 대한 내 의욕도 그저 막연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막연함은 선생님과의 첫 강의 시간에 완벽하게 허물어져 내렸다. 

내게 있어서 또 다른 세계, 내가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불명확한 세계에 대한 확실함이 거기에 있었다. 급기야 나는 진진해지기 시작했다. 막연함, 내 몸속에 빼곡하게 들어차있던 막연함들이 비로소 거기서 꿈틀대기 시작했고, 나는 선생님의 강의시간 내내 신기해하는 한편 놀라워하느라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그때의 그 느낌들을 나는 종종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내가 마치 이상한 동물이라도 된 듯 쳐다보곤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 말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느낌, 내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던 선생님의 폭넓은 강의내용들은 내게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처음 접하게 되는 오락게임처럼 흥미롭고 신기했었다.

이 글의 청탁을 받았을 때, 선뜻 글을 써내려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정체, 선생님의 정년퇴임이라는 말이 마음 속을 관통하는 허전하고도 아릿한 느낌의 정체에 대해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그 누구도 나처럼 강의실 한구석에 앉아 선생님의 강의에 신기해하며, 선생님으로부터 해박한 지식을 전해 받을 학부생들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는 허전함. 그 허전함에서 오는 부당함의 생각들이 나로 하여금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종로 5가에 내리게 하고 충무로를 거쳐 한옥마을까지 걷게 했다는 것도 비로소 알아차렸다.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며 한옥마을 돌계단에 쪼그리고 있는데, 능소화꽃 하나가 내 발 아래로 툭,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 후로도 오래 능소화가 툭툭 떨어져 내리던 돌계단에 앉아 선생님 생각을 했다. 

강의실로 들어서시던 선생님의 여유로운 느낌.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샛길로 빠져나감이 없이 줄곧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서 가던 수업방식. 물론 그때는 잘 따라가지 못해 샛길로 좀 빠져주었으면 했는데, 나중에서야 나는 그게 오히려 고마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서 누보로망을 배울 때,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따서 돌아온 젊은 여강사는 그만큼 열정적이었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내가 한때, 조금만 샛길로 빠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건성으로 들었던 학부 때의 선생님의 강의에서 나는 이미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꿰차고 있었다. 그랬으니 여강사의 강의가 심드렁할 수밖에.

역사의 심판은 현재의 우리가 내리는 게 아니라 미래의 후손들이 내리는 거라고 했던가.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때면 그저 신기해하며 심취하거나, 혹은 살상 졸음이 밀려 올 때는 샛길로 빠져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서야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지식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문학에 대해서 배우던 대학원 학기에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해박한 지식으로 발표를 했고, 레포트를 제출했으며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그 학기에 나는 다른 원생들보다 뛰어난 점수를 받았고, 처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장학금도 받았다. 

나는 그때 자연스레 선생님을 떠올렸고 내가 샛길로 좀 빠져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들었던 선생님의 강의가 참 소중했다는 생각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시 내 발께로 능소화  꽃 하나가 툭, 떨어져 내렸다. 

능소화 꽃잎은 만개했을 때 진다. 다른 꽃들처럼 시들어가며 떨어져 내리거나 지지 않고 만개했을 때 비로소 스스로를 거둔다. 떨어져 내린 꽃잎을 보니 아직은 지기에는 너무 턱없이 곱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부당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더 오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단언하건대, 나는 내 문학에 대한 이론의 반은 선생님으로부터 얻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 반이 어쩌면 반을 넘어서 전부라고 해도 옳을지도 모르겠다. 막연하던 그때, 이것도 저것도 아니던 그 때, 내 문학의 지표를 세워준 분도 선생님이셨다. 아직은 턱도 없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문학에의 지식은 따지고 보면 온전히 선생님의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고마운 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나는 죄스러웠고, 원고청탁을 받아 놓고도 선뜻 아무것도 써내려갈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냥 무조건 죄스러웠다. 

“그동안 뭐 했어요?”
출판사 사장의 해맑은 물음이 뇌리를 스쳤다. 정말, 나는 그동안 뭘했던 것일까? 

능소화 꽃 잎 하나가 내 마음속으로 붉게 들어왔다. 나는 그 꽃이 결코 내 안에서 죄스럽고 감사한 마음을 지닌 채지지 않고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아울러 고장 난 내 정신까지 채유해줄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열정적이고, 정 깊은 사람을 만났네 (32)
  장윤익 교수와 청진동 (34)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