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익 교수와 청진동 (34)
  제13장 지인들이 본 장윤익4

장윤익 교수와 청진동
정민호
<시인, 경북문인협회장>

<시문학 30주년 기념식 및 시문학회 시화집(詩畵集) 발간출판기념회>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다. 문덕수 선생이 30여년을 키워 온 월간 시 전문 지 <시문학(詩文學)>의 30주년 기념식을 위하여 경향각지에서 많은 문인들이 모였다. 

경주에서는 장윤익 교수와 이희목 선생이 함께 나와 동행했었다.

기념식을 막 끝내고 일어서려는데, 누군가 “오늘 한잔 합시다” 한다. 나도 모처럼 서울 와서 맥주 한잔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합시다.” 하고 세종문화회관 회랑을 이희목 선생과 같이 걸어 나오니 장 교수가 뒤따라 나오고, 그 옆에는 평론가 이명재 교수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세종로 지하 통로를 지나 이희목 선생이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나와 장윤익, 이명재는 교보문고를 지나 청진동 골목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바로 피맛골 골목으로 한참 걷다가 카페 <시인통신>에 들어섰다. 

우리는 먼저 <시인통신>에서 맥주 몇 병을 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아는 사람이 모여서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정민호, 장윤익, 이희목, 이명재, 김순복, 김운향 시인이 한 자리에 앉은 것이다. 

우리는 술잔을 놓고 포즈를 취했다. <시인통신> 사장 한 여사가 카메라를 잡고 셔터를 눌렀다. 제법 많은 술병이 날라져 오고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나의 시선집(詩選集) 무크지  <시와 수필> 4호를 가방에서 꺼내서 기증본으로 증정했다. 그 자리에서 술은 평론가 이명재 교수가 샀다. 이명재 교수는 중앙대학교에 있었다. 그는 그때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이었다. 

한잔씩 어느 정도 술이 되니 좌석 분위기를 돋우며 문단 이야기를 하던 장윤익 교수가 다른 곳으로 이끈다. 

장윤익 교수는 일찍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자의식과 난해의 한계성>이란 평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때 그는 한국문협 이사였다. 

그는 인천대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했고, 경주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해 와서 있다가 그때는 교수로 있었다. 장윤익 교수를 제외한 다섯 명이 한잔씩 술을 들고 나니 누군가가 안내하는 청진동 생맥주 집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모두 맥주집으로 몰려간 우리는 한꺼번에 생맥주 통을 갖다놓고 다섯 명이 붙어서 마시기 시작했다. 나중에 술이 취하여 서로가 술을 사겠다고 하는 바람에 누가 얼마의 술을 샀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마셨는데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맞추며 앉았던 장윤익 교수가 노래방으로 가자고 제언했다. 
 
▲ 정민호 시인 [출처 동리 목월문학관]

우리는 노래방으로 몰려가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나니 이제 좀 술이 깨는 것 같았다. 여류시인이요, <좋은문학>지를 만들고 있는 김순복 시인은 첫 인상이 부드러웠고, 또 여류시인 김운향은 현대시협 속리산 세미나에서도 만났으니 그때는 구면이 되었다. 그는 그후 중국여행을 마치고 예쁜 시집 한권을 보내왔다. 우리는 그날 누구에겐가 책을 여러 권 기증받아 가방에 넣어온 기억이 난다. 

우리는 그날 여러 차례 맥주집에 다니면서 서울 청진동 골목을 이잡듯 누볐다. 술이 제일 센 사람은 우리 경주사람만이 아니었다. 장윤익 교수는 자리를 꼿꼿이 지키면서 지루하게 우리들의 분위기에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무진장 술을 마셨다. 그날은 주로 맥주 이외의 다른 술은 마시지 않았다. 

밤이 늦어서 우리는 헤어졌다. 서울 사람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나중에 남은 사람은 장윤익 교수와 필자와 이희목 선생, 그뿐이었다. 우리는 청진동에 있는 서울호텔을 찾아들었다. 방 한 칸을 얻어 세 사람이 이리저리 누워서 밤을 새우고 아침 늦게 일어났다. 

나는 속이 쓰리고 아파서 도저히 더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찬 바람을 쐬니 머리가 좀 거뜬해진다. 

장윤익 교수가 약방으로 가서 우리를 위해 음료 몇 병을 사들고 나와서 나와 이희목 선생께 권했다. 길거리에 서서 한 병씩 마시고 청진동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해장국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침부터 해장을 한다. 서울의 명물인 이 해장국집에 들어오니 오랜만에 분위기가 그런대로 어울리는 것 같아 우리는 해장국을 청했다. 

해장국을 받아 놓고 맥주 한 병을 시켜 해장을 했다. 해장술은 나와 이희목 선생 두 사람이 나눠마셨다. 대다수 서울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고 해장술로도 소조를 마시는데 나는 처음부터 맥주로 시작하여 맥주로 끝내는 셈이다. 장윤익 교수는 어젯밤 서울 문인들과 우리들의 술자리를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봉사하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그가 사람을 대하는 넓은 아량이 그의 문학 만큼 폭넓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해장국 집에서 나와 그 앞에 있는 <도토루 커피집>으로 들어갔다. 약간 얼얼한 기분으로 커피 한잔씩을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 교수는 서울 자녀들이 있는 집으로 갔다가 교회에 나간다고 하기에 이희목 선생과 나는 고속버스 터미널에 와서 경주행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장 교수의 학문과 문학과 아량이 보통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그의 인격과 학문을 보아 그는 경주대학교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든든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의 건강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내가 혹 전화를 하거나 어떻게 만나게 되면 그는 항상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 건강과 힘찬 능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경주시내 여러 곳에서 우연히 만나거나 혹은 만나자고 약속을 해서 만나게 되면, 그는 중요한 사업을 위해 만나는 사람, 혹은 하고 있는 문학단체나 학교 일에 활동하는 등 항상 바쁘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즈음은 <동리, 목월문학관> 건립을 위해 무척 애쓰고 있다. 그런 여러 가지 바쁜 일을 추진하고 경주대학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 어느덧 정년을 맞아 최임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장윤익 교수에게 문학과 신앙과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앞세워 더욱 학문에 정진해나가시길 바라며 건강과 건필을 함께 하시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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