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인환 선배가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대통령 특보로 임명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민주당의 실세 김상현 의원이 경주에 내려와서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경주 일은 최 특보와 의논하면 잘 될 것이다.”라는 발언을 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또 아들의 결혼식에 한화갑, 권노갑, 박상규, 서영훈 의원 등 민주당 중진과 한나라당 의원, 도지사 등 많은 정치인들이 축하하러 온 것을 보고 기념관건립사업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나는 최 선배에게 그동안의 경위를 설명하고 민주당에서 정치적 역량이 있는 분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장 총장이 자기 희생을 하면서 경주의 발전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한다는데 내가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겠어요.”하면서 며칠을 기다려보라고 했다.
다음날 최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틀 후 10시 반 한화갑 의원 사무실에서 한 의원과 면담하도록 연락이 되었으니 보좌관에게 전화하면 안내할 것이다.”라는 신속한 전달이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곧 오해보 부회장과 신평 이사에게 그 말을 전달하면서 한화갑 의원을 우리 세 사람이 함께 만나자고 제의했다. 두 분이 쾌히 승낙하여 6월 29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한화갑 의원과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한화갑 의원은 인사가 끝난 후 “그 건은 최 특보로부터 듣고 기획예산처장관에게 부탁을 했으니 장관의 지침이 내려가서 예산편성에 용의치 않다고 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접촉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희망을 주는 말을 했다.
한화갑 의원을 면담한 후 우리들은 민주당 구동수 전문위원을 만났다. 구 위원은 신평 사무국장과 친한 사이라서 그런지 우리들을 매우 환대했다. 구동수 위원의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당대표와 문화, 관광, 언론, 교육을 담당하는 <당.정협의회>의 제3정조위원장 이미경 의원을 만나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라는 말에 우리들은 동의하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구동수 위원이 스케줄을 잡아주는 대로 김중권 민주당 대표를 만나서 기념관 건립의 당위성과 협조를 요청하니, 김 대표는 “김동리 선생님의 아들 김평우 변호사는 나의 고시동기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동리, 목월 선생의 기념관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협조할 뜻을 밝혔다.
김 대표와 면담이 끝난 구동수 위원은 우리들을 이미경 의원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미경 의원은 친절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재원(才媛)으로 보였다. 우리들은 <동리, 목월기념괌>건립에 대한 당위성과 가장 중심이 되는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20분 정도 듣기만 하던 이 의원이 말했다.
“저도 경주사람입니다.”
“이 의원이 경주사람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는게 어떻게 경주사람입니까?”
“저는 경주 양동 이씨(양동 이씨)이고, 경주 양동에서 태어나 양동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부산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경주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의원도 경주사람이니까 경주를 위해서 이번에 큰 일을 하나 하시지요.” 라고 나는 부탁하는 투로 말했다. 이 의원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이 의원과 우리들의 만남은 좋은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7월 4일 다시 국회 의원회관에 가서 구동수 전문위원을 만나 경과를 말하고 이미경 의원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미경 의원은 웃으면서 “자기도 문학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말했다. 구동수 위원은 호남사람이지만 우리 일의추진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7월 13일부터 문화관광부와 기획예산처에 보낼 청원서 작성을 계획하고 경주시민과 전국의 예술계, 문화계 인사들에게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청원서을 계획한 것은 기획예산처의 분위기로 보아 기념관 건립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로 초안된 청원서의 내용을 다음과 같다.
한국문학의 거봉으로 소설과 시의 전통성 확립에 양대산맥을 크게 이룬 동리, 목월의 문학사적 업적과 작품의 평가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줄 압니다.
동리의 작품 소재와 정서에서 민족정신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으며, 목월의 작품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민족전통의 서정적 핵이 응축되고 있습니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의 뿌리는 경주이며, 그들은 우리의 민족적 정서와 정체성의 대표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기념관은 전 국민적인 사업으로 경주에 건립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오래전부터 무르익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전국 각계 유지들과 문인들이 뜻을 뭉쳐, 기념관 건립사업을 맹렬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본 고장 경주시와 경상북도에서는 시, 도비 20억을 승인하여 국비 20억을 지원요청하였던바 문화관광부에서는 당위성ㄹ이 있는 거국적인 사업으로 인정하여 예산처로 20억 국비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본 사업의 건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청원하오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1. 동리, 목월 기념관은 한 작가의 문학적 업적만을 기리거나 기념하는 다른 문학관과는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하는 문화한국 전통계승의 거국적인 민족사업이므로 기필코 성사되어야 한다.
2. 동리, 목월기념관 건립은 역사적 고도의 유적과 현대의 정신문화와의 접맥을 형성하여 외화획득의 토대가 되는 세계적 관광지를 이룩하는 중요 사업이므로 이번 예산에 반드시 계상되어야 한다.
3. 동리, 목월 기념관 건립은 경주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 때에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종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면적인 우선사업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4. 지금까지 경주시와 시민들이 열망하던 경마장을 비롯한 여러 국책사업들이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주의 시민정서는 <동리, 목월기념관> 건립만은 꼭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주시민들을 비롯한 경북도민 한국 문인 및 전 국민들의 뜻을 보아 청원하오니 이 뜻이 반드시 관철되도록 강력이 요망합니다.
동리, 목월 기념사업회. 한국문인협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예총 경주지부. 경주문화원
<동리, 목월기념관건립사업회>는 지역의 국회의원, 전국구 김홍신 의원 등 전국구 국회의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경상북도 의원, 경주 시의원, 경주시민, 문화계, 예술계 인사 2,373명의 서명을 받아 <한국문인협회>, <구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예총경주지부>, <경주문화원>의 공동이름으로 2001년 8월 14일 문화관광부장관, 기획예산처장관, 새천년민주당 대표에게 제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