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익의 마음을 그려본다
최선겸
<전 인천대학교 교수>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우물을 홀로 찾아가서는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ㅇ리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비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지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지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시는 윤동주가 1939년 9월에 쓴 <자화상>이다.
자기 자신의 외모와 심성을 자연의 거울 우물에 비추어 보며(mirror image라 한다.)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논리로 자기 증오와 자기 연민, 자기혐오와 자애 사이에서 정신적 갈등을 빚은 끝에 자애를 노래한 아름답고 철학적인 시다.
나의 오랜 지우 장윤익 교수가 회고록을 쓴다며 나에게 비친 자신의 외모와 심성을 그린 글을 부탁해왔다. 쓰기 난감한 글이다. 칭찬만 할 수도 없고, 욕만 할 수도 없다. 더욱이 쓰는 사람 자신의 회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망설였지만 장윤익이란 칭찬만 해도 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날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하던 끝에 윤동주의 <자화상>을 머리에 떠올렸다. <자화상>을 바탕으로 장윤익의 사람됨을 그려보기로 마음을 먹자 자연스레 글이 쏟아져 나왔다.
장윤익 교수와 나의 첫 만남은 1981년 4월말 경 인천대학 본관 복도에서였다. 그는 학사계란 이상한 직책을 갖고 있는 인천대학 국문과 교수였고, 나는 영문과에 이력서를 제출해놓고 마음 졸이던 때였다.
나의 마음 조림에는 이유가 있었다. 모 대학 재직 중 부정부패 교수 추방운동을 벌인 학생들 뒤편에 섰다가 정치(?) 교수로 몰려 그만둔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학 상부기관에서 각 대학 인사에 개입, 다른 대학에 가는 것을 중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이나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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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대 본관 / 장윤익 교수와 첫 만남은 본관 복도에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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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인사위원회를 통과, 이 사람 써도 좋으냐고 상부기관에 허락 여부를 물었더니 놀랍게도(?) OK였다. 10개월이 약이었나 보였다. 곧 발령이 날줄 알고 기다렸다. 그런데 그게아니었다. 한 달이 거의 다 지났지만 오리무중이었다.
시간강사로 발령받아 인천대학 출강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도에서 장윤익 교수를 우연히 만나 소식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곧 발령이 날 것이라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만남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다보니 속으로 학사계란 직책이 어떤 직책인데 그런 말을 내게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 정반합(正反合)이 아니라 그 반대로 시각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취임한지 한 달 쯤 된 학장이 나를 부른다고 했다. ‘발령은 내기로 했으니 열심히 가르쳐 달라’는 당부의 말이었다.
나중에 누군가에 의해 전해들은 얘기지만 새로 발령을 받은 문학부장이 학장과 대학 동창임을 기회로 나 대신 그들의 대학 후배로 대체 발령을 내려고 일을 꾸미고 있다가 장윤익 교수를 비롯한 몇몇 인사위원들의, 거센 항의에 부딛혀 나를 할 수 없이 발령했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장윤익 교수가 인사위원이라는 것을 알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그제야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털어놓았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의 정반합으로 다시 요동을 쳤다.
우리 두 사람의 우정과 신뢰는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 무럭무럭 자랐다. 때로는 종로1가의 <낭만>, 때로는 <을조(乙朝, 저녁의 뜻)>에서 자주 만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인천대학이 단과대학에서 종합대학으로 되면서 총∙학장을 선거로 뽑는 세월이 왔다.
장윤익 교수는 인문대학 후보로 출마했다. 상대는 영문과의 노(老)교수였다. 3차 투표 끝에 한 표차로 장 교수가 당선되었다. 어려운 싸움이었다. 상대방이 자기표를 스스로 까먹은 덕에 겨우 당선되었다. 구성인원(34명)의 분표로 보아 1표차로 이긴 것도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할 줄 알고 있었기에 남을 사랑할 줄도 알아 나를 도와 내가 발령을 받게 했듯, 용서와 관용을 잘 모르는 설립자의 눈에 벗어나 곤경을 겪고 있던 몇몇 교수들을 직책을 걸고 적극 도와 그들을 사지(死地)에서 건져 내면서 사나이 냄새와 사람냄새를 물씬 풍겼다. 2년 후 그는 총장 후보의 물망에 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후광으로 인문대학장에 19대 10(30명 투표, 1표 무효)이란 더블스코어로 당선되었다.
예상하셨겠지만 2년 전 학장선거 때와는 달리; 총장선거에서는 그의 인기와 역광에 뚜렷이, 압도적인 표로 당당 선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그와 나는 우리 두 사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태로 그는 인천대학과 이별을 고하고, 경주대학 총장에 취임,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고, 나는 4년 가까이 학교를 떠나 있다가 복직을 하는 어려움을 겪고 2002년 2월 22일 정년퇴직,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장윤익 교수의 회고록에 기고한답시고 이 글을 쓰다 보니 나에 대한 회고가 오히려 더 많은 것 같다. 안쓰럽기 짝이 없다. 으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글이 이런 글이려니 하고 위안을 받으면서 윤동주의 시 <자화상>으로 바친다.
살면서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곧 장윤익 교수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영역(英譯)하여 장윤익 님께 기념품으로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