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자로 만들어준 교수님
이규원
<굿모닝서울 편집국장>
1. <인천대학교>사 주간 교수님으로 첫 만남
내가 19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방황의 시간을 접고 인천대학교에 들어간 해가 1981년이었다. 그 시절 나는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학교 교지(校誌)반에서 글쓰기와 활자매체에 푹 빠져 있었다.
사건현장을 누구보다도 앞장서 누빈다는 것, 내가 쓴 글을 총해 많은 사람이 정보를 접한다는 것,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 잡는다는 고발의식, 그리고 활자매체가 전해주는 무한한 창의성과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모든 것에 매료되어 있었다. 교지반 활동은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조용한 학생이 사물이나 사회를 보는 눈을 새롭게 뜨고 기자의 꿈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던 혼란한 시기였다. 정치지형이 극도로 불투명하고 사회와 대학교 경직된 시대적인 상황은 그동안 꿈꿔왔던 기자의 길을 더욱 부채질했다. 내가 대학을 간 것을 어찌 보면 학보사 기자생활을 하기위해서 들어갔다는 말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인생의 전환점에서 장윤익 교수님을 만난 것이다.
지금은 대학신문사들이 인기가 없어져 기자난에 허덕인다고 하는데 그때만 해도 학보사 시험은 대학입시만큼 매우 치열하여 경쟁률이 10:1은 되던 시절이었다.
시험도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을 거치는 공개 경쟁체제였다. 그런데 나는 그 관문을 뚫지 못했다. 1차 필기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다.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가 한꺼번에 날아간 순간이었다. 며칠을 고민을 하다가 학보사 시험에 합격한 같은 행정학과 친구를 통해 당시 주간이셨던 장윤익 교수님을 면담요청 하였다.
교수님을 만나 뵙고 저간의 과정과 학보사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한참 생각하시더니 “그래, 좋다. 한 달간 실습생이라고 생각하고 근무해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 인생의 첫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인천대학보사> 수습기자가 되기 위한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학보사 기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나는 매일 제일 먼저 나와 학보사 청소를 하고, 선배들 심부름하고, 기사 재정리하고, 궂은 일은 도맡아 하며 어떻게 보냈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한 달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무렵 교수님은 학교 앞 주점으로 나와 학생 편집장을 부르시더니 “한 달 동안 관찰해보니 열심히 하는 싹이 보인다.”며 그 자리에서 수습기자 직을 허락해주셨다. 이젠 사환에서 수습기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장윤익 교수님을 통해서 나는 기자의 길로 첫발자국을 했다. <인천대학보사>의 시절이야말로 내 기자인생 20년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2. 인쇄소 골목의 추억
<인천대학보사>가 지금은 주간으로 발행되지만 그때의 학보라는 것이 열악한 환경에서 만드는 것이어서 격월간을 발행되었다.
학보 제작도 원고를 서울 을지로 제작대행사에 문선과 정판과정을 거쳐 지형을 뜨고 납판을 만들어 인쇄기에 걸던 그야말로 ‘노가다’같은 공정을 거쳤다. 그렇지만 그 시절 쾌쾌한 인쇄소 냄새와 삐거덕거리는 계단, 인쇄 기름을 옷에 묻히며 작업하는 ‘납 활자 신문’을 우리는 사랑했다.
우리는 인쇄소에서 정판 작업을 마치면 을지로 골목길에서 주간 교수님과 막걸리를 마시며 신문 얘기며, 글쓰기 얘기로 ‘신문걸이’를 했다. 주점이 비좁고 낡았지만 얼큰한 안주와 막걸리에 어우러진 맛과 멋을 지금 학생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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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원 굿모닝서울 편집국장 [출처 ' 이규원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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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장윤익 교수님은 기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과 문학적인 소양을 막걸리 잔에 담아 술술 풀어주시곤 하였다. 그런 분위기를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 도 우리 학보사 동기들은 잊지 못한다. 마치 오래 묵은 술을 한병한병 꺼내마시듯이 말이다.
우리 주간 교수님이셨던 장윤익 교수님은 참으로 소탈한 분이셨다. 학보사 기자들이 여름, 겨울 방학을 이용해 워크숍을 갔는데, 지금은 콘도며 팬션으로 가지만, 그때는 민박에서 식사도 스스로 해결하곤 했다.
모든 게 서툴기만 한 우리들은 교수님 식사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는데, 장윤익 교수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꽤나 맛있게 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맛이 있을 리가 없는데, 아무런 내식을 안 하시고 즐거워하시던 교수님을 생각하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장윤익 교수님은 이렇게 소탈하시고 다정다감한 분이셨지만, 일 앞에서는 꽤나 엄격하셨다.
3. 기자로서 기본을 가르쳐준 인생 선생님
1981년 인천대학교는 후일에 중앙대학교 총장과 평통 부의장을 지내신 김민하 학장님이 부임하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학내 분위기를 반영하듯 1981년 창단하여 1982년 첫 선을 보인 축구부는 그야말로 인천대 새바람의 상징이었다.
나중에 국가대표로 성장한 이영진(프로축구 서울FC 코치), 구상범(인천대 축구팀 감독), 최윤겸(프로축그 대전시티즌 감독), 김시석(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코치), 방인웅 등 무명선수들을 발굴하여 ‘해보자!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학내외에 물결쳤다.
부산에서 열렸던 1982년 가을 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때 일이다. 학보사에서는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부산으로 결승전 취재를 갔다. 열심히 축구취재를 하고 우승 분위기에 빠져있던 우리는 부산에서 하룻밤을 더 묵고 이튿날 올라왔다. 그런데 학보사로 돌아와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윤익 주간교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취재하러 간 놈들이냐! 놀러간 놈들이냐. 기자들이 뭐하는 짓이냐, 그래가지고 무슨 기자를 하겠다는 것이냐. 당장 그만둬라!” 하시며 혼쭐을 내셨다. 그렇게 화가 많이 나신 교수님의 모습을 처음 겪는 것이라 더욱더 몸둘 바를 몰라했다.
알고 보니 학교에서 보도자료를 만들어 각 언론사에 뿌리고 긴급학보 제작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기자가 뉴스현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빨리 독자들에게 전달 하느냐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기자생활 내내 잊지 않고 생활해오고 있다.
교수님은 그후 학장, 부총장, 총장까지 역임하셨지만 아직도 우리 학보사 동문들에게는 우리 <인천대학보>의 기틀을 만드신 주간 교수님으로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소탈하시지만 일 앞에서는 엄격하신 교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다.
4. 그 후의 교수님과 나
1984년 잡지사 기자로 출발하여 <인천일보> 기자, <스포츠서울> 편집부장, <굿모닝서울> 편집국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2000년부터 2년간은 <한국편집기자협회> 회장으로 전국 신문기자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교수님은 내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 신문사를 방문하시어 지방대 출신으로 중앙지에서 기 죽지 않고 씩씩하게 생활하는 제자가 기특하다고 하시며 격려를 해주시곤 했다.
또 교수님이 가르치던 경주대학교의 제자를 우리 신문사로 보내 실습을 하게 하시고 지역신문 기자로 키워내시는 등 세월이 가도 식을 줄 모르는 제자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내가 지방대학을 나와 중앙일간지의 직책을 두루 경험하고 일간신문사의 편집국장으로 오르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인천대학보사> 시절에 닦은 기본기와 기자정신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교수님은 항상 나에게 도전정신을 일깨워주셨고, 항상 최선을 다 하는 기자로 조련해주신 것이다.
나는 오늘도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기자로서의 파이팅, 독자를 먼저 생각하는 가르침을 항상 새기며 교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고, 또 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