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잊을 수 없는 친구, 장윤...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친구, 장윤익

김원중

<전 포항공대 교수>

나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까닭으로 성장과정, 또는 학창시절에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중학교 2학년이 되자 6.25전쟁이 터졌다.

고향인 안동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서 대구로 부득불 나오게 되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고향에 두고 나 홀로 탈출한 것이다. 나는 대구로 나와 대구시청 앞에서 구멍가게를 시작하였다. 조금 살게 되니까 다시 학업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인동에 있었던 오성중학교를 거쳐서 수성교 건너 오성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1955년 3월이었다. 물론 야간부 학생이었다. 그때 장윤익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윤익이는 경주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대구사범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대구 시내에서 수성교 건너가 오성고등학교 가는 길목에 윤익이의 집이 있었다. 윤익이는 어미니와 누님과 함께 살았는데, 나는 학교에 가고 오는 길에 자주 들렀다. 아니 거의 매일 갔었을 것이다.

나의 직장은 대구시 대안동에 있는 아무개정당이었고, 집은 대봉동 이천교 근처였다. 나의 고등학교 3년은 주경야독이었다.

대봉동 집에서 아침에 나와 대안동에 있는 직장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수성동에 있는 야간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까 윤익이의 집은 나의 휴식처였고, 나의 배고픔을 해결해주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윤익이의 어머니와 누나는 매일 들락거리는 나를 싫어하는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다. 아니 며칠만 안 보여도 아들에게 “왜 요새 원중이는 안 오노?” 하셨다고 한다. 나를 아들이나 마찬가지로 대해주셨던 것이다.

나는 배짱 좋게 윤익이의 집을 우리집 드나들 듯 다녔다. 이것은 다 윤익이의 친구 좋아하고 베풀기 좋아하는 성품 덕택이었다.

▲ 김원중 전 포항공대 교수 [출처 ; 포스텍]

나는 그때 윤익이의 가족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은혜를 평생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은혜를 갚지도 못하고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살았을 뿐이다. 윤익이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내게는 알리지도 않아 애석하게도 문상도 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윤익이는 사범학교를 나와 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대학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었다. 윤익이 누님은 나에게 동생을 만나더라도 대학 진학을 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의 면학열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와 나는 비록 야간대학이었지만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우리는 주경야독의 모범생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공부뿐만 아니라 학생회 활동도 열성적으로 참가하여 학예부장의 직책까지 맡아 사회성을 평가받기도 하였다. 윤익이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항상 들끓었고, 무엇보다도 의리를 중시하는 학생회 간부였다.

그는 진정 용기 있는 친구였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1960년 4.19 때 학생들의 데모 대열에 동참하였다. 현직교사가 데모대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러한 그의 용기와 신념이 그의 일생을 만들었다고 본다.

그가 교수도 하기 어려운 우리의 처지에서 대학의 최고 경영자(총장)까지 무난히 해낸 것도 대학시절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들은 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본인의 노력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윤익이는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그는 머리만 믿고 안일하게 살지 않았다. 부단히 노력하고 꾸준히 목표를 정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사시절에도 그는 항상 손에서 외국어 서적을 놓지 않았다. 뒷날 프랑스로 유학가는 것을 보아도 그는 한번 마음먹은 것을 기어이 실천에 옮기는 행동인이었다.

그러한 그도 이제 세월에 떠밀려 정년퇴임을 앞두게 되었다. 교수고, 총장이고 하는 자리를 떠나 비로소 선생으로 돌아와 정년을 맞게 된 것이다.

그 어렵고 힘든 한 시대를 함께 건너왔다. 전쟁 직후 대구에서 처음 만나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칡넝쿨> 문학 동인 모임하던 50년 전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때의,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 아름다운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정년퇴임이 없는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