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는 학창시설
정대석
<전 청구대학 총학생회장, 대구시청 건설국장>
이순(耳順)의 나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더욱더 실감한다. 지금까지 40여년의 긴 세월동안 애환을 함께 나누어온 장윤익 교수가 정년이 되어 현직에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우리들도 인생의 황혼기에 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교육현장에서 학자로서, 그리고 대학의 최고 경영자인 총장으로서 교육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우리 주변 친구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문학평론가로서 문단과 학계에도 많은 공적은 남긴 장 교수의 고매한 인품과 학덕에 대하여는 전공분야가 같고 가까이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나 지인들에게 들어보기로 하고, 나는 대학시절 총학생회 간부로서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한 토막 이야기를 회상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1960년대 초 대학 3학년 학기말쯤이었다. 나는 주간공학부 학생이고 장 교수는 당시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야간부 국문과에 적을 두고 있었다. 우리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청구대학(영남대 전신) 총학생회 구성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당시 총학생회 회장 선거는 노장파와 소장파가 치열하게 대결하여 노장파에 속한 내가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총학생회 간부진을 선거활동의 공적이나 친면을 배제한 객관적인 인사로 구성하려고 하다보니, 적임자를 찾기 어려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내가 참여한 <청초회>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맏형격인 선배 김광길 학형이 장 교수를 학예부장으로 추천했다.
그때 내 선거운동에 앞장선 노장파는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이거나 직장을 다니는 노총각들이 대부분이었고, 반대 후보를 미는 소장파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진학한 정상코스의 학생들이었다. 노장파와 소장파는 최소한 3년 이상의 나이차가 있었다.
나는 장 교수를 추천한 김광길 학형과 체육부장으로 내정한 김구종 형과 함께 장윤익 형의 집을 방문했다.
장 교수를 추천한 김광길 형도, 그날 장 교수를 처음 만나는 것 같았다. 나는 장형에게 학예부장을 맡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랬더니 장윤익 형은 “나는 주간에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기 때문에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자신이 없으니 주간학생으로 선임하는 것이 순 리가 아니겠느냐”라고 하면서 완곡하게 사양했다. 그래서 나는 체육부장으로 내정한 김구종 학형을 논리와 방패로 삼아 다시 한 번 설득을 했다.
“이번에 체육부장으로 내정한 김구종 씨도 지금 현직 경찰관으로서 경찰기동대에 근무하고 있는데, 장형도 같은 케이스니까 확실한 학생을 차장으로 선임하면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김광길 형도 거들고 해서 끝내는 승낙을 받아내어 학생회 활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어쩌면 제갈량의 ‘삼고초려’와 같은 부탁이었다.
당시 대학의 학생활동은 5.16 군사혁명 후 거국적으로 펼쳐진 재건국민운동과 맞물려 여름방학 때에는 농촌일손돕기 봉사활동을 하고 겨울방학 때에는 산골 오지 마을을 찾아 문맹자 퇴치운동을 열심히 할 때였다. 물론, 우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학생들을 격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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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청구대학 터(청구대학은 대구대학과 통합되어 현재의 영남대학교로 개편되었다) 정대석과 장윤익은 청구대학 총학생회에서 처음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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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장 교수가 학예부를 맡으면서 재학생들에게 각자의 적성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학예부 산하에 합창반, 연극반, 문예반, 산악반 등 분야별 동아리를 많이 만들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학예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해 1964년도 청구대학 개교 16주년 기념축제 때에는 학예부문 행사를 풍선하게 하였음은 물론 합창반과 연극반은 그 여세를 몰아 학교PR을 위해 도내 중소도시 순회공연회를 갖기로 하여 학교의 동창회 및 재학생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이렇게 장 교수는 낮에는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대학에서 학생신분으로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옆을 돌아볼 시간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간부로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이 대학축제를 좀 더 재미있게 한다는 허영심에 사로잡혀 외도를 하는 일에 동참했다가 부끄러운 꼴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사회는 서구문화가 들어오는 개방의 시대 분위기라서 사교춤이 유행하고 자유부인이 횡행하는 시기였다. 젊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주위의 권유에 유혹되어 친구들 다섯 명이 단체로 사교춤을 배우러 비밀댄스 교습소에 간적이 있다. 요즘은 공인된 무도학원이 있어서 공공연하게 교습을 받을 수 있지만, 그때는 사회적으로 단속대상이어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를 범죄시 하여 경범죄 처벌대상이었다.
주책없는 노장과 학생들이 겁도 없이 비밀교습소를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이 좁은 골목 안쪽 조그마한 한옥의 단간 월세방이었다. 거기에는 비품이라고는 휴대용 전축 한대가 전부였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춤을 가르친 경험이 많다는 30대 전후로 보이는 노총각 선생이 댄스 교습을 하고 있었다.
교습에 대한 안내 설명을 들었는데, 교습비는 매월 선불이고, 완성기간은 3개월 정도 소요되나 바른 기간 내에 마스터 시켜 줄 것이며, 다만 경찰의 단속대상이므로 동향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로 교습소를 옮겨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불안한감은 있었으나 그래도 호기심에 교습비를 지불하고 춤을 배우기로 했는데, 시작한지 며칠도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선생이 행방불명되었다. 사ㅂ장을 수소문 한 끝에 며칠 후 겨우 행방을 찾았는데, 변두리 지역 한적한 곳에 한옥 주택 뒷방에 교습소를 옮겨놓고 있었다.
변두리 지역이라 여기는 안전성이 있다고 믿었으나 이곳 역시 며칠이 되자 않아 또 다른 곳으로 옮기는 처지가 되자, 불안해서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워 춤과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일행 5명 중 장 교수를 포함한 3명은 일개월분 교습비만 선불하고, 교습은 5일도 못하고, 교습소를 찾아다니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누구를 원망도 하지 못하고 돈만 날린 부끄러운 시간이었으나, 그때 포기하지 않은 두 사람은 끈기있게 추적하여 계속 춤을 배워서 지금은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그 이후 친구들의 모임에서 간혹 회관 등에 들리면 장 교수와 나는 의례히 소지품과 자리나 지켜주는 경비원 신세가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존재이다. 더욱이 젋었을 때의 실패는 인생 항로에서 중대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당시의 총학생회 간부로 만난 친구들은 사회에 진출한 뒤 모두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친목과 신의도 두터웠다.
그리하여 졸업 시에 당시 학생과장의 직책을 맡았던 인수현 선생님을 비롯해서 학생회 전 간부와 법학, 경제, 상과, 건축, 토목 등의 학회장들이 참여하는 <6.4구락부>가 발족되어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친교를 맺어오고 있다. 매년 6월 6일 호국영령들을 기리면서 정기모임을 하고 있다.
장 교수, 앞으로도 계속 그 풍부한 지식과 경륜을 우리들의 후배들에게 학예부장 때 하던 그 정신과 열성으로 아낌없이 전수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정년퇴임을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