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의 기쁨으로 맺어진 교우 40년
문경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장 박사와 내가 친교를 맺은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그러니 우금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장 박사는 고등학교 교사 시절이었고,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장 박사의 인상은 학구열에 불타는 의지의 선비였다. 우리 둘은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뜻이 맞아 한국 제2의 교육문화도시이던 대구를 중심으로 각 방면 전공의 엘리트를 모아 <영남학회(嶺南學會)>를 만들어 활동했다. 우리는 고적 답사로 경주해저 문무왕릉과 기림사(祇林寺)를 다녀온 추억이 그립다.
고요한 산사의 밤에 무르익은 정담과 학문의 토론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잊었다. 그때 시골 가마솥에 장작을 떼어 지은 이밥과 대구포조림의 맛을 아마도 우리들 일생에서 가장 맛있는 추억일 것이다.
특별히 장만한 대구의 박걸리 배(梨)맛이라고나 해야 어울릴 것이다. 나는 그 후에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때의 밥맛, 그 조림 맛, 그 막걸리 맛보다 더 맛있는 별미를 먹어본 적이 없다. 이제는 흘러가버린 아련한 추억이지만 장 박사와 공유()한 젊은 날의 소중한 기억의 재산이리라.
그때 <영남학회> 회원 30여명은 그 후 학계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기라성 같은 학자로 대성했다.
한국문학, 영문학, 역사, 철학, 경제학, 정치학, 물리, 수학, 생물, 천문학, 의학, 화학, 약학, 토목공학 등 각 분야에 빛난 별들이었다.
그 영남학회를 만들고 이끌어온 사람은 장 박사와 나 두 사람이었다. 장 박사의 리더십은 발군(拔群)이었다. 그는 우리들의 리더였다.
평론가로서 이름을 날리던 장 박사는 프랑스어에 조예가 깊었으나, 19세기 세계를 주름잡던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와 함께 러시아어 공부로 저녁시간을 채웠다. 당시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책도 스승도 없던 때였고, 오해도 받기 쉬운 시절이었다. 우리 둘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미지의 지적 세계를 개척해가는 기쁨으로 학구에 열중했었다.
대학 진출면에서는 불우하던 우리는 소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장 박사는 인천대학교에 진출하여 총장까지 오르는 영광을 가졌다. 이를 보고 나는 ‘낭중지추(囊中之錐)’란 옛말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하고 끄덕였다. 주머니 안에 있는 송곳은 반드시 튀어나오고야 만다는 말은 진리인 것이다.
방 박사가 만년에 고향의 경주대학교에서 총장으로 봉직할 수 있었던 것은 더할 수 없는 행운이다. 이는 장 총장이 고매한 학덕과 인품의 소지자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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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현 경북대 명예교수 [출처 ; KBS TV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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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나이 고희를 넘고 장 총장도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인생은 정말 빠르기도 하다. 장 박사와 대구의 ‘흑돌’ 생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인생을 논하고 문학을 논하고 학문을 논하던 호기(豪氣)는 젋음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우리들이 대학에 진출하여 각자 자기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말자.’던 우리의 다짐은 이루어졌고, 우리의 우정도 연륜을 따라 두터워졌음에도 나는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 시절 장 박사는 고등학교 교사로 직장이 있었지만, 나는 직장이 없고 공부하던 몸이라 생맥주 값은 항상 장 박사의 신세를 졌다. 그 불우하던 날의 고마움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장 박사의 ‘학수구년(鶴壽久年)’을 축복하며 더욱 빛나는 업적을 남겨주기를 기원한다.
의연한 선비
문덕수
<전 국제 팬클럽 회장, 문예진흥원장, 시인>
장윤익 교수님이 정년을 맞았다니,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장윤익 교수님이 내 시집 <영원한 꽃밭>(신라출판사, 1976.)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표명한 것은 약 30년 전의 일이다.
꽤 긴 논문인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출판사에서 응분의 사례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도 생각된다. 왜 그때는 그런 일도 살펴보는 도덕적 섬세성이 내게는 없었는가.
에피고넨이 수두룩한 60년, 70년대의 한국시단에서 나로 하여금 자기철학(자기 시론)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한 그의 <내면세계의 현실적 변용>이라는 매우 암시성 높은 논문에서, 특히 나를 사로잡는 대목은 “선, 공간, 원 같은 기하학적 의미의 내면적 의미”라는 구절이다. 이 대목은 서사적(敍事的) 관점에서 나의 시의 특질을 지적한 선구적 언급으로 매우 돋보인다.
나의 초기 시(시집 <선, 공간>에 수록된 시)의 특질에 대하여 내면세계와 더불어 ‘기하학적 특질’이라는 한 보편성으로 자리매김 된 셈이 된다.
내가 한국 팬클럽 회장을 맡았을 때(1992.), 금품을 주고받는 창피스러운 선거부조리를 없애기 위하여 이른바 ‘선거공영제’를 도입한 정관을 마련했다.
일부 극소수의 트집잡기 시비도 있었으나, 장윤익 교수님은 내게 믿음과 힘을 실어주고 길잡이 어드바이스를 아끼지 않았다. 그때 두 가슴 사이에 왕래한,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공감의 흐름은 어둑시근한 것이 아니라 그 물살 주름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똑똑하고 단호한 것이었다.
맑고 깨끗하거나 바르고 품위 있는 사람을 ‘아사(雅士)’라고 한다. ‘처사(處士)’나 ‘거사(居士)’도 깨끗하긴 하나 은사로 숨는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장윤익 교수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아사 장윤익 선생’
이렇게 부르면 그를 받드는 진심의 표시가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