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인 만남과 소중한 삶
엄창섭
<시인, 관동대학교 교수, 대학원장>
치열한 우리네 삶에 있어 특정한 사람과의 만남은 운명일수 있다.
이 땅의 문필가로서 눈부신 업적을 날이며 혼신을 바쳐 교육행정가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오면서 이제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앞에서 정년퇴임을 앞에 놓고 살아온 날을 조심스럽게 뒤돌아보는 장윤익 박사는 격랑의 세기에 몸담은 실체이기도 하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적 충만을 위하여 사유(思惟)의 시간대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현상에서 나름대로 조용히 30년 남짓 교분을 맺어온 장윤익 박사님을 떠올리며 천년의 신비 속에 대관령을 휘감아 도는 촉촉한 물안개와 같은 그만의 고매한 인품과 지고한 학덕이 새삼 솔향내 속에서 묻어난다.
흔히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 묻은 냄새가 난가”는 지적처럼, 오랜 날 장윤익 박사와 소중한 인간관계를 맺어온 이들에게는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올곧은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온 강직한 그 분의 선비적인 성격을 한번쯤은 떠올릴 것이다.
나의 기억으로 197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으로 당선되어 예리한 판단과 사물의 심부(心府)를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우리네 평단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 분은 1970년 대 후반에 시인으로 활동하는 나 자신이 지면을 통해 이름 석 자를 알고 있었지만, 1980년 1학기에 재직 중인 관동대학의 국어교육과에서 <현대문학의 이론과 실제>를 지도하는 학과의 교수로서 조금은 끈끈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개인시집인 <바다와 해>(시문학, 1980)의 시 해설도 흔쾌히 맡아 써주었고, 지금 생각하면 심도 있는 연구논문이라기 보다 부끄러움이 다소 앞서는 <만해(萬海)의 님의 침묵>에 관해서도 중앙일보에 좋게 평을 하여준 기억에 남는다.
우리네 삶에 있어 한 순간 분노가 치솟아 오를 때 좋은 시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평정되는 것을 체험할 수도 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사람의 관계에서 지나쳐보면 좋은 기억이 남는 대상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점을 내 자신이 술회하는 것은 장윤익 박사는 이처럼 주위사람들에게 경계허물기라는 항상 격이 없는 어울림은 물론,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서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쏟는, 참으로 지극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지금도 문단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박세현(상지영서대 교수), 강세완(혜성여고 교사), 박용재(스포츠조선 문화부장), 염산국(금란여중 교사) 박명희 시인 등이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1984년 명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천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은설(銀雪)이 묻어 있는 칭송의 내곡 캠퍼스에서 꿈과 낭만, 그리고 문학과 인생을 깊은 밤, 흔들리는 바람 앞에서 진솔하게 나누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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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창섭 (시인) [출처 ; 문학정원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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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시퍼런 동해의 파도처럼 나의 제자들에게는 흘려버린 그 날의 장윤익 박사님에 대한 느꺼운 정감들이 내면 깊이 기억 흔적이나 푸른 생명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당시의 생각으로는 언제나 조금은 웃음이 묻어 있는 탁성(濁聲)의 어조로 학생들 앞에서 애써 권위나 근엄함은 훌훌 털어버린 몸짓이었다. 학자의 면모를 과시하기에 앞서 뛰어난 화술과 때로는 화끈한 40대 종년의 경상도 사나이의 성격 그대로를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며 든든한 맏형과 같은 거리감 없는 친근함으로 제자들 앞에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같은 장윤익 박사의 활달한 성품과 학문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김선풍, 박희숙, 조낙현을 비롯한 동료교수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고, 당시의 청송의 왕자를 자처하는 관동대학 국어교육과의 학과 분위기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사제 간, 동료 간에 따뜻한 정감과 신뢰, 존경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장윤익 박사가 인생의 한때나마 대학의 교수로 몸담았던 청송의 캠퍼스를 떠난 뒷날에도, 학회와 전국 대학신문 주간세미나, 문학 세미나를 통해 나와의 직, 간접의 만남이 있었지만, 비교적 직면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사리판단에 뛰어난 천부적 재능과 저력은 마침내 대학 행정을 책임진 총장(인천대, 경주대)으로서의 역할까지 잘 감당해내는 족적(足跡)을 남기게 하였는데, 바로 그것은 역사인식과 문학에 대한 안목의 확장에서 비롯되는 시적 상상력의 결과로 해석되어진다.
이 같은 장윤익 박사의 다양한 행적들을 내 자신이 지금에 와서 회고해보면 어디까지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는 비정한 후기 산업사회에서 우리가 화제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란 화두(話頭)에 대한 예언자적인 방안 모색에서 비롯한 해석이랄까, 어쨌든 폭넓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지속적으로 펼쳐 보인 그만의 차별화된 생활 배경에는 유년시절부터 영혼깊이 자리해 있는 기독교의 신앙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덧 내 자신도 이순(耳順)을 앞에 두고 있지만, 장윤익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삶의 소중한 경계와 교시로 확인되는 것은 어디까지 정직과 의로움, 휴머니즘적인 순수한 기독인의 지고한 사랑이 아닐까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화합을 이끌어낸 비법(秘法)은 화해와 용서라는 틀 속에서 품격 있는 인격을 형성하고 있어 충만한 은총을 장식하는 인자(因子)가 되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바라기는 장윤익 박사가 정년퇴임으로 비록 대학강단을 떠난다하여도 이 땅의 후학을 위해서, 또 한국의 문단을 위해서도 “창의적인 예술가는 이전 작품에 만족하지 않아 또 다사 새로운 작품을 창출하기 위해 전력한다”라는 러시아 혁명가의 예술가 쇼스타코비치의 지론처럼 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비판정신으로 남은 일정을 쏟고 촛불을 바치기 바란다.
학문이나 문학의 길에 지속적으로 도전,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주어진 생을 승리의 새날로 장식하여 줄 것을 소망하면서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