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과는 가까이
친한 친구가 많았던 것도 아닌 걸 보면 사교적인 성격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학교 다닐 때 하숙집 옆에 있는 탁구장이나 극장에는 자주 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친구들과는 지금도 남문 근처에 제과점이나 음악감상실을 자주 찾았다.
고등학교 때는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이나 특별활동은 없었다. 2학년 때 학교 서클에 참여했다가 교무실에 불려간 적은 한번 있었지만 대체로 조용한 학생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듯이 나도 전주에 연극단이나 쇼단이 오면 극장을 자주 찾았다. 친구 없이 혼자 다녔다. 학생금지영화도 제목이 마음에 들면 빠지지 않고 관람하는 좀 엉뚱한 학생이었다.
주일 날 집에 가는 날 외에는 전동성당에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학생회 활동도 하며 치명자산을 오르내리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신부님이 검정 수단을 입고 성당 마당을 거닐며 묵주알을 굴리던 모습이 무척이나 멋있게 보였다.
미사 때 입은 제의와 전동성당 제대의 모습은 천상처럼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였다. 나도 저런 곳에 설수 있을까? 신부가 되면 그렇게 되겠지 하면서 성직자의 꿈을 어렴풋이나마 동경했다. 물론 어려서 기초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꿈이 성장하면서 현실로 가까이 다가온 듯 했다.
이런 마음 때문인지 학생회도 빠지지 않고 잘 다녔다. 학생회에 열심이다 보니 여학생들과도 만나는 기회가 많아졌다. 좋아하는 여학생도 생겼다. 그러나 수줍어서 말도 한번 건네지도 못했지만 신부가 되고 나서도 그 추억을 잊지 못해 내가 출간한 시집에 그때를 회상하며 쓴 글이 있어 소개해본다.
그 집 앞
옛날이라 말할까?
추억하나 고백하지
나 학창 시절
끌리는 한 소녀 앞에
말을 할까
편지를 보낼까
등굣길 먼발치에서
망설임에 애만 탔지
한옥 집 그 집앞
몇 번이고 서성대다
말 한번 못 붙이고
발길을 돌렸지
그 시절 다시 오면
대문이나 두들겨 볼텐데
그 사람 지금
내 마음 전하면
무어라 대답할까
가을비가 내리면
그 집앞이 보인다
_ 시집 ‘세월이 지나간 자리’ 중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었다.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사교적이지도 못한 좀 외로웠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신장의 열등감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대신 종교생활에는 충실했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학원에도 들락거려보고 인생고민도 했다.
3학년 후기에는 학교에 결석을 자주했다. 수학여행도 가지 않고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좀 혼란스런 시기였다고나 할까. 이때가 때 늦은 나의 사춘기였던 것 같다. 무미건조한 기간이었다. 가정형편 상 대학진학의 길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옆에서 진로를 안내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열등의식과 자존심으로 마음이 상했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특별한 꿈도 없었다. 무기력했던 학창시절 작아져 보이는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세월만 보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학진학 시기를 놓쳐버리고 방황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에 작은 할머니와 양조장 상속 문제로 집안에 급격한 변화가 왔다.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데, 나도 부모님도 신경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본래 심약한 분이라 양조장 상속문제로 병을 얻어 입원까지 하는 어두운 분위기였다. 나도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그렇게 되고부터는 사업관계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오랫동안 깊은 상처 속에 악몽까지 꾸는 아픔이 있었다.
철들고 이때부터 세상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된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상대방은 말할 수 없지만 사업관계로 아버지를 아프게 한 사람이다. 지금은 모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나는 지금도 건강이 안 좋으면 꿈속에 그때의 상황들이 떠올라 잠을 설칠 때가 있다. 깊은 상처는 깊은 만큼 치유시간도 오래 걸리나 보다. 지금은 세월에 맡기고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의지가 있었다면 진학할 수도 있었는데 사업관계로 집안 눈치만 보다가 시기를 놓쳤다. 당시 우리 동네 친구들 중에는 대학에 진학한 친구가 없었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자극도 없이 기회가 되면 취직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나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어울리다가 보니 2년이라는 세월을 집에서 지내고 말았다.
같은 동료들과 4H운동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데만 마음을 빼앗겼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생활에 중심을 잃고 술집 출입도 잦았고,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도 있었다.
겨울엔 이웃집 닭서리 하다가 혼쭐난 적도 있지만 아주 지능적인 방법만 동원했다. 친구 집만 골라서 닭서리를 하고 먹을 때에는 그 친구를 불러 같이 즐겼다. 이쯤 되면 그날 닭서리는 성공한 것이다. 그때 함께 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대면 사회적으로 이름을 알 만한 사람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