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 입학
번암양조장을 할 때 외사촌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나보다 네 살 아래인데 그가 신학교에 입학했다. 방학 때는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동생은 내가 신학교에 갈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나의 인생 터닝 포인트였다.
일 년 간 집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광주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모태신앙이라 어릴 때부터 동기부여는 되었지만 실천을 하지 못하였다. 전동성당에서 고등학교 학생회 활동을 할 때 멋있고, 잘 생긴 신부님들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내가 일반 대학에 진학했다면 지금 신부가 되었겠는가. 생각해보면 이것도 하느님의 성소의 부르심이라고 믿고 싶다.
시험을 보고 일주일 후에 합격통지서를 받고 나니 나도 대학에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나를 추천해주신 분은 장계본당 벨기에 레오 신부님으로 한국 이름은 도광석 신부였다. 불행하게도 내가 신학교 3학년 때 환속했다. 그 뒤로는 만나 본 적이 없다.
학교생활의 어려움
신학교에 입학은 하였지만 당시 광주 대건신학대학은 외국인 예수회 신부님들이 운영했기 때문에 국어 선생님과 라틴어 선생님 두 분 외에는 모두가 미국 신부님들이었다. 물론 강의는 처음부터 영어로 하였다. 나는 영어가 부족한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강의 절반은 잠자는 시간이었고, 강의 내용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시험날짜가 발표되면 긴장 때문에 설사로 고생을 했다. 다른 학생들은 변비로 고생을 할 만큼 힘들었다. 다행히 우리의, 어려움을 알고 시험은 주관식보다는 사지선다형이었다. 영어 성적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배려였다.
성적미달 학과도 있었다. 라틴어 선생님은 한국 선생님이셨는데, 성적이 좋지 않은 나를 따로 불러 충고해주시면서 열심히 잘해보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지금도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같은 반 학생보다 3년이나 늦었고 공부도 뒤쳐져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나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신학교 생활 내내 시험스트레스로 설사를 안고 살았다. 이런 속에서도 시험이 끝나고 나면 마음이 동료들과 근처 막걸리 집에 가서 한잔 씩 기울이는 기쁨도 있었다. 사실은 학교 내에서는 금주였다. 동료 학생들 중에 술에 대한 사연도 많지만 상상에 맡겨본다.
공휴일에 다른 학생들은 무등산으로 소풍도 가고 극장 외출도 있었지만 나는 모자라는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성적은 항상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다.
3학년 때 한국신부들이 학교를 인수받아 한국어로 강의를 받고부터는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설사병은 없어졌지만 공부하는 데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한 때는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6년이라는 세월이 가고 졸업할 때는 맨 끝줄에 묻어서 졸업을 했다. 돌이켜보면 주님께서 이곳에서 인내의 힘을 길러주시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든다. 그 인내심으로 지금 나는 사목생활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변명해본다면 성적이 사목성적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우리 집 광주로 이사
내가 신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은 광주 월산동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아버지 바로 아래 숙부께서 광주 조흥은행 지점장으로 계시면서 장형을 화천기공사에 취직시켜 주었다.
장형은 늦깎이 직업을 갖게 되어 열심히 살았다. 얼마 지나서 금호타이어(당시 삼양타이어)로 직장을 옮겨 부모님을 모셨다. 집도 새로 장만하고 가정은 어렵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지병으로 어머니가 수고가 많으셨다.
나는 주말이면 가끔씩 집에 들러 가족들을 만나는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와 상의하여 월산동 주임신부님에게 아버지의 ,병자성사를 청했다. 아버지는 병자성사를 받고 약 한달 간 투병하다가 회갑을 몇 달 앞둔 1973년 5월 예수승천주일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3일장으로 월산동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천주교 묘지에 안장하였다. 이때 부제반 동료들의 수고가 많았다.
이 무렵 내 바로 밑에 아우도 금호타이어에 취직하였고 그 다음 해 결혼을 했다. 이렇게 광주는 우리 형제들이 경제적으로 새 삶의 둥지틑 튼 곳이며, 내가 6년간 신학교를 다니면서 사제의 꿈을 키운 곳이다. 광주는 나를 사제를 만들어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아찔한 이야기
추석이었다. 이날 하루는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은 집에 다녀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등산이나 시내 극장에 가는 것이 상례였다. 이날 나는 우리 반 나이든 친구들과 시내를 어슬렁거리다가 술집에 들렀다. 마음 놓고 한잔씩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모두가 과음으로 학교로 돌아갈 시간을 넘겼다. 학교 정문이 닫히고 만약 이 일이 들통나면 최소한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 처지였다. 정말 난감하였다. 사실은 내가 꼬드겨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내가 퇴학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평소 학교 탱자나무 울타리에 개구멍을 보아 둔 곳이 있었다. 야음을 틈타서 개구멍을 통해 낮은 포복으로 모두가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복병이 있었다. 현관문은 저녁 10시가 되면 닫힌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일층 방에 있는 불이 꺼진 창문에 자갈을 뿌려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구호요청을 했다. 다행히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그때 현관문 열어준 친구는 지금 사제 생활을 잘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