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 철야기도회 강론_2 (15화)
  제3장 청년기와 신학대학 시절

사랑하는 동료 신학생 여러분!

우리는 신학생이기 전에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그리고 이 당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예비성직자들입니다. 앞으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고 평화로운 사회가 왔을 때 우리들의 복음 선포도 활기차게 전개될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 학교 역사시간에 천주교 신자로서 자존심이 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일제치하에서 3.1독립선언서에 다른 종교들은 적극 협력했는데, 천주교신자들의 협조는 없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왔습니다. 그 당시 천주교성직자들에게 외국 신부들의 영향력이 컸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당시 천주교회의 사회 참여는 소극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역사는 기댜려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역사 앞에 또 다시 부끄러움을 남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우리 천주교가 왜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일을 자신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사건을 두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역사교과서에서는 의사로 추모하고,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그를 신자의 용기 있는 양심으로 기록하였고, 역사에서는 애국자로 추앙하고 있는데,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제 개인적으로는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정확한 입장을 정리해주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사회참여를 하는 데에 혼란을 가져오며, 사회의 뒤편에서 구경꾼으로, 혹은 방관자로서의 지탄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교회라면 민중은 등을 돌릴 뿐만 아니라 돌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걸핏하면 순교자들의 후예라고 자랑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훌륭한 순교자들의 후예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그 정신을 받들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얼마나 했습니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런 일은 별로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의 기존 성직자들에게 부담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국천주교회는 호교론을 위해, 또한 개인 구원을 위해서는 목숨도 내놓은 치명 순교도 있었으나 이웃과 사회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은 없어 보입니다. 교회가 집안단속만 했지 이웃에게는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정한 교회는 하느님을 성김과 동시에 이웃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으로써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교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주는 교회, 결박된 자에게 해방을 주는 교회, 소경에게는 광명을, 억압받는 자에게는 자유를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칠만한 교회, 평화와 진리를 증거하고  이를 위해 박해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 신학교 교정에서 4학년 때

친애하는 동료 신학생 여러분!

우리는 앞으로 한국교회의 기둥이 될 미래의 사제들입니다. 우리는 비겁하지 맙시다. 불의를 보고도 무관심하지 맙시다. 무감각하지 맙시다. 무기력하지도, 무책임하지도 맙시다.
 
비겁하게 이 사회가 이지경이 되었는데도, 내가 주인이 되어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나 아닌 다른 누가 해주기만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젊은 신학도로서의 양심을 버린 비겁한 행동입니다. 젊은이는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젊은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특권이요, 자랑입니다.

사랑하는 동료 신학생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이 땅의 주인들입니다. 고통도 기쁨도 모두 우리의 몫입니다.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 밝은 희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희망을 버리면 이 나라는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신학도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하고, 일할 때 일해야 합니다. 또한 행동할 때 행동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젊은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서에서도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고 2, 17)

사랑하는 동료 신학생 여러분!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이 정도로 우리의 취지를 말씀드렸으니, 이제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행동은 부제반에서 신중히 생각하여 행동지침을 내릴 것입니다. 우리의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조직적인 사회입니다. 조직적인 악의 세력은 우리 개인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이것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선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의 공동체를 확인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방법이 나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좋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학도이기 때문에 행동도 복음적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참기 어려운 일이라도 폭력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행동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봅시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성원과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기도회를 주관해주신 우리 부제반 동료들, 그리고 학생회 여러분과 각 반의 대의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오늘 밤 이 기도회는 일회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 마음의 준비라고 생각하고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에는 여러분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부제반의 지시에 적극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행복하여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은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복음 5장 9~10)
아멘!    
 
-19731117일 밤 부제 서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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