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사건 (20화)
  제4장 본당 신부로서 사제(司祭)의 길

수녀에게 사과드립니다

나 사제생활 초년기
의욕만 앞서고 경험이 없을 때
하루가 짧다고 앞만 보고 달렸지
나 이런 모습에 반해
나의 사목에 힘을 실어준
동갑내기 수녀가 있었지요

갸날픈 몸매 눈이 큰 겁 많은 수녀
강론 땐 고개 끄덕이며 용기를 주었고
내가 어려울 땐 앞장서서 잔풍도 막아주었지

성당과 사제관엔 꽃향기가 가득했고
때로는 사목생활 어려움도 위로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나 철없던 시절
한 여인을 편애하고 있었던 것

해서 수녀는 나에게 사랑의 충고를 했지만
나는 모자란 소견에 자존심이 상했고
질투한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결국
큰 소리로 화를 냈고 상처를 주었지
아! 이를 어떡하나
세월 지나 생각해보니 부끄러울 뿐

동갑내기 수녀님
지금 내 마음 헤아려 주실 수 있을 런지요
사과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1992년 5월

_ 시집 ‘하루를 살아도’ 중에서

자살 예방사건

어느 늦가을 밤이었다. 10시가 넘어 사제관 외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고 문을 열어보니 술 취한 30대 쯤 보이는 여자 한 사람이 신부님께 할 말이 있다면서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나는 엉겁결에 사연도 물어볼 사이도 없이 그녀를 응접실로 맞아들이고 말았다.

그녀는 대뜸 하는 말이 어느 회사 비서실에 근무하는데 신부님께 할 말이 있어 찾아왔다는 것이다. 손에는 술병과 안주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당황하여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 함열신협 창립총회 인사말

사연을 들어본 즉 어려운 가정에 태어나 회사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가정을 돕다보니 결혼 적령기를 넘긴 노처녀가 되고 말았단다. 그런데 어쩌다가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혼인약속까지 했단다. 그때부터 그녀는 삶의 희망이 생겼고 그 사람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것이 행복했다고 한다. 그는 군인장교인데 얼마 전 훈련 도중에 사고로 죽었단다.

그녀는 충격으로 삶의 희망을 잃고, 직장도 나가기 싫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술로 괴로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고 이런 나날의 고민 속에 세상을 살기보다는 죽음을 택하기로 했단다.
 
이런 생각을 정돈하고 마지막으로 자기의 사연을 누군가에게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신부를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긴장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져온 술을 한잔씩 하면서 말을 풀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오늘 밤 삶의 대답을 얻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고 술주정을 했다. 이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12시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 우리 어머니는 주무시기 전에 내 방의 불을 확인하고 주무시는데 내 방에서 밤늦게 여자 목소리가 들렸을 때 얼마나 마음 졸이셨을까?

바로 인터폰으로 사연을 물어오셨다. 간단하게설명을 드렸을 때 나를 믿고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으셨다. 이렇게 밤을 꼬박 새면서도 나는 술이 취했다. 나는 취중에도 그녀에게 죽지 말고 살아보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나는 그녀와 하룻밤 술친구가 되어주고 자살 의지를 바꾸어놓았다. 새벽 4시 통금시간이 풀려 그녀를 돌려보냈다. 너무 특이한 경험이라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흘러 30년이 넘었는데 전주 우전성당에 있을 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바로 그 여인의 목소리였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사연인즉 서점에 들렀다가 내 시집을 보았다면서 소식을 전했다. 반가웠다. 나와 동년배인데 지금쯤 건강하게 잘 사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살아주어서 고맙습니다.

1982년 고창성당으로 부임

교구에 따라 다르지만 천주교 신부는 4년 만에 인사이동을 한다. 당시 고창성당은 교구 보조를 받는 경제자립이 어려운 성당이었다. 하지만 성당은 아담하고 가족적인 시골분위기가 느껴졌다. 사제관 바로 옆에는 유치원이 있어서 아침에는 꼬맹이들이 손을 잡고 성당 마당에 들어서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아래채에는 식당으로 어머니가 텃밭을 가꾸셨다. 신자들도 열심이었고, 공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주일날 그곳에 가서 미사를 봉헌했다.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동혜원이라는 공소가 있었는데 수녀님들이 상주해서 환자들을 잘 도와주고 있었다. 여기에도 한 달에 한번씩 미사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양돈을 했는데, 여름에는 냄새가 대단했다. 
 
신부는 오고가는 것이 마음대로가 아니다. 장상의 뜻에 따라야 한다. 인간적으로 이곳에 왔을 때는 좀 섭섭했던 생각이 난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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