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현황
이곳 성당은 복자성당 일부와 우전성당 일부에서 분가한 신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성당은 교구에서 매입한 땅에 조립식으로 세우고 사제관은 사제관 아래 빌라에 있었다. 신부가 되고 처음으로 사제관이 아닌 빌라에서 살다보니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조립식 성당은 1년 전에 지어서 초대 신부로 김준호(십자가 바오로) 신부가 6개월 있다가 교구청으로 들어가고 내가 이곳에 왔다. 신자들은 김 신부님과 얼굴만 익히고 떠난 것이다.
신자들 분위기는 가족적이어서 좋았다. 신자가 적다보니 몇 명만 빠져도 성당이 텅 빈 것 같았다. 이때 성당 부지를 정리하느라 경계 측량을 해서 동네 길을 막는데 마을 사람들과 다툼이 있었지만 축대를 쌓고 성당 터 경계옹벽을 쌓고 나서는 큰 무리는 없었다.
주교님이 사목 방문차 들러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다.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주님 도우심으로 이곳 생활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신자들과의 대화, 가정방문 미사, 강론 때 귀를 기울여준 착한 신자들은 친교가 잘 되고 나눔이 눈에 보였다. 이것이 작은 교회의 장점이었다.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신부님들과의 골프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당시 서학동에 살던 서석기 신부님과 자주 함께 다녔다.
이곳에 있을 때 헤어졌던 어머님을 다시 모시고 살았다. 몸이 좀 불편하셨지만 함께 해주심만도 감사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신자들과의 친교는 잊을 수 없다. 이렇게 3년을 지내고 안식년을 얻어 미국으로 떠날 때 어머님은 장형이 모시게 되어 나와는 두 번째 이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머님은 건강하셔서 큰 걱정은 없었다.
초대 사목회장이었던 박영근(공사가)님과 2대 한병갑(바오로) 교장선생님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모두가 보고 싶다. 건강을 빕니다.
정 때문에
신부생활을 하다보면 10곳 이상의 본당을 옯겨 다닌다. 대개 머무는 기간은 4년 정도다 이 정도의 기간이면 인간적인 정이 들게 마련이다. 특히 말동무가 없는 할머니들에게 신부는 대단한 존재다.
성당에 오고 갈 때 손 한번 잡아주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그래서 성당에 부임해가면 가장 먼저 정을 주는 분은 할머니들이시다. 내가 미국 교포사목을 마치고 부임하기 5개월 전에 김준호 신부님이 조립식 성당을 짓고 교구 인사발령으로 떠나게 되었다 신자들과 정이 들어 재미있게 지내려고 하는데 떠나게 되었으니 섭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처음 부임하던 날 성당 현관에서 한복을 깨끗이 차려입은 할머니 한분을 만났다. “할머니 성당에 오십니까!”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댁이 새로 오신 신부요?” 하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하였더니 솜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실망하는 눈치로 “나 이제 정 안 줄 거여.” 하시면서 눈길 한번 안주시고 성당으로 들어가셨다.
전임신부와 헤어짐이 얼마나 아쉬웠으면 저리 서운했을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전임 신부보다 외모가 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면전에서 소박맞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 주일날 강론은 신경을 써서 준비했다. 시작말로 “내가 할머니한테 소박을 맞았지만, 나도 알고 보면 가슴이 뜨거운 남자랍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긴장된 첫 만남을 풀어나갔다.
신자들의 긴장을 풀고 박수까지 받는 첫 강론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정을 안주겠다고 박대하던 할머니가 찾아오셨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신부님, 저번에 서운하셨소? 그 놈의 정이 무엇인지!” 하시면서 “나 떠난 신부 정 떼고, 서 신부한테 반해 버렸어!” 하며 손을 잡아주셨다.
그렇다. 오고가는 신부들에게 정을 주고받고 살아온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 그 뒤 할머니는 내가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사제관 식당에 보신탕을 단골로 내주셨다.
세월이 흘러 본당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고별강론을 마치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한쪽 모퉁이에 할머니가 홀로 서 계셨다. “할머니 안녕히 계셔요.” 하였더니 “그 놈의 정이 무엇인지.”라고 하면서 눈물을 훔치셨다.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몇 년 전에 선종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할머니! 나도 할머니를 많이 좋아했습니다.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손을 잡으면
한 손을 잡으면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요
두 손을 잡으면 허물이 없어지고요
포옹을 하면 용서가 있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한마디에
마음이 열려지고요
수고해했어요 한마디에
마음이 가벼워지고요
감사합니다 한마디에
마음이 채워집니다
사랑합니다 한마디에
세상은 하나가 된답니다
우리 모두가
그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