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나는 대구 달성 서씨 전첨공파(大邱 達成 典籤公派)이다. 고조부는 서백순, 증조부 서상근으로 고증조부께서는 경기도 이천에서 사시다가 흥선대원군 병인박해 때 전라북도 지금의 진안군 장재동으로 피난 오셨다. 몇 년 후 고증조부께서는 전북 진안군 선인동으로 주거를 옯기셨다.
증조부께서는 서병석(徐炳錫, 요한), 서병록(徐炳祿, 야고보)를 얻으셨다. 나의 조부이신 서병석은 지금의 전북 장수군 수분리에 터를 잡으셨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상당한 전답과 임야를 소유한 부농이셨다. 둘째 조부인 서병록은 서울로 유학을 가셨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지금의 동성고등학교로 당시 장면 박사가 교장이셨다. 졸업 후 번암면장으로 공무원생활을 하셨고, 앙조장을 운영하셨다.
조부 서병석(요한)은 이성녀(마리아)와 결혼하여 5남 4녀를 낳으셨다. 장남이었던 아버지 서정우는 1938년 전북 장수군 덕산리의 부 이종인님과 모 이봉문 님의 2녀 이안나와 결혼하여 4남 1녀를 낳으셨다. 나는 3남으로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1066번지에서 출생했다.
결혼 후 부모님은 전북 남원으로 분가하셨다. 남원성당 김영구(베드로) 신부님의 부르심으로 성당 내 소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교리교사와 성가대원으로 활동하셨다. 남원에서 약 5년간 근무하다가 1943년 전북 장수군 번암면 사무소에서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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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천주교회 남성 성가밴드(1940. 12.30.) / 맨 왼쪽이 부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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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동짓달 출생
지금까지 태어날 때 태몽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보통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특별한 태몽을 꾸기보다 건강한 아이로 태어남이 축복이었다.
동짓달에 태어났다
나는 굴뚝 속만큼이나 깊은
북풍한설 칼바람 몰아칠 때
동짓달에 세상에 왔답니다
초가집 고드름 주렁주렁 열리고
부엌아궁이 불을 지피며 태어났지요
그래서 나는 겨울 아랫목이 좋아요
겨울만큼 차가운 머리로
아랫목만큼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녹이며 살고 깊습니다
냇바람 맞으며
얼음 썰매타고
겨울이 즐거웠습니다
동짓달 생일잔치는
동지 팥죽 한 그릇으로 만족합니다
동짓달 친구들아 겨울감기 들지 말고
건강하게 아랫목처럼 따뜻하게 살아보자
_ 묵상집 ‘귀본향’에서
단기 4184년 3월 7일 조부 서병석 사망으로 우리 가족은 다시 수분리에 이주해서 할머니 삼촌 고모와 함께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이때에 삼촌 두 분은 서울로 유학을 갔으나 나이 어린 삼촌과 고모들을 거두느라 어머니께서는 9남매의 맏며느리로서 제일 힘든 삶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렇게 몇 년 함께 살다가 할머니의 뜻에 따라 같은 마을로 분가하셨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동네일을 보다가 그만두고 다시 번암면사무소에 근무하셨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였는데, 치질로 고생하자 번암소재지에서 하숙을 하고 공휴일에만 집에 오셨다.
아버지가 사랑채에 세운 서당
우리 형제가 살던 1950년대의 수분리에는 초등학교가 없었다. 약 12km떨어진 장수읍내에 학교가 있었다. 내 위의 형들과 삼촌 고모들은 학교에 다녔지만 나는 취학 나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사랑채에 서당을 세우고 학교에 가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해 한자공부를 배우게 했다. 나이 든 형들은 글씨 공부를 하고 우리는 천자문을 배웠다. 당시는 책 한권을 마치면 책거리를 한다며 조촐하게 잔치를 했다. 나 역시 내 나이 또래 중 제일 먼저 천자문을 습득하여 책거리를 했다. 그 덕분으로 지금까지 한문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천주교 신자들의 피난촌 수분(水分)리
수분리는 물이 두 길로 갈라져 흐른다는 뜻이다. 동네 안쪽에서 흐르는 물은 장수 쪽으로 흘러 금강으로, 동네 밖으로 흐르는 물은 번암 남원을 거쳐 섬진강으로 흐른다. 지금은 뜬봉샘이라는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당시는 천주교 신자들의 피난촌으로 약 50가구 정도가 살았다. 초창기 성당에 신부님이 상주한 때는 하루에 세 번 종소리가 울렸다. 아침 5시, 낮 12시, 그리고 저녁 6시, 하루에 세 번 종이 울린다고 해서 삼종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는 시계가 없었기 때문에 성당의 종소리가 유일하게 하루의 시간을 일러주는 도구였다.
천주교 신자들을 이 종소리를 듣고 기도를 바친다. 나는 어머니가 밭일을 하시다가 종소리가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하던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밀레의 <만종>그림은 나의 애장품이다. 나의 저서 복음 묵상집 <밀알 한 알이 썩지 않으면>의 표지도 만종 그림이다. 나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도 좋아한다. 밀레의 그림은 대부분 농촌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정감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