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전주 우전성당 부임 (30화)
  제6장 가톨릭신앙의 지역공동체에서

본당 현황

우전성당은 내부 건물 평수로는 전주에서 제일 큰 성당으로 전임 김순태(요셉) 신부님이 의욕적으로 건축한 성당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IMF(국제구제금융) 시기를 맞으면서 빚이 많이 있어서 인계인수를 받으면서 매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후임자는 걱정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부임 2주일째 주일날 전 신자들에게 본당 현황을 보고했고, 본당총회를 열어 대안을 주문했다. 

한편 사목회나 각 신심단체는 나름대로 노력하여 바자회를 열기로 했다. 수입이 될 만한 일은 모두 했다. 그리고 강론 때마다 ‘십시일반’ ‘열 사람이 밥 한술을 보태면 밥 한 그릇이 된다.’는 말과 ‘콩 한 조각 삼 형제 나눈다’는 우리 어머니 가르침을 소개함으로써 이곳에서 큰 효과를 보았다. 

당시 교구 성령대회는 매년 이곳에서 열렸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위층 성가대까지 합치면 천 명 이상은 수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웃 아파트 주차공간도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우전성당은 교구 큰 행사로 바쁘게 돌아갔다. 그만큼 할일이 많았던 시절이어서 행복했다.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면 잊을 수 없다. 

선교활동 현황

당시 우전성당은 주위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전주시내에서도 제일 활발하게 발전한 곳이었다. 성당도 이때에 완공되어 주위는 좀 어수선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성당은 새로 이사 온 신자들이 많았고, 주일마다 새 신자 소개로 성당은 활기가 넘쳤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두선교를 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대구 교구 이판석(요셉) 한국 천주교 가두 선교 지도신부님을 초청해서 본당 전 신자에게 가두선교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는 전단지를 예쁘게 만들어 아파트 입구와 승강기 안에도 보일만한 곳이면 모두 붙였다. 그리고 3인 1조가 되어 선교구호 어깨띠를 매고 소책자와 간단한 본당 소개서와 입회서를 만들어 거리에 나가 선교를 했다. 

첫날은 모두 쑥스러워했지만 나도 어깨띠를 하고 가두선교를 독려하기 위해 적극 동참했다. 이후에 모여 경과보고를 받으니 성과가 있었다. 특별한 것은 그동안 냉담자들이 이 모습에 감동을 받아 성당을 다시 찾았고, 새로 신입한 예비신자들이 일 년에 백 명이 넘었다. 깊은 곳에 그물을 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많은 고기가 올라왔다. 

이때에 6반으로 나누어 교리반이 있었는데, 교리교사로 수고해주신 유병환(요아킴) 교장 선생님, 이종상(아오스딩) 교장 선생님, 김낙완(바오로) 교장 선생님, 정성규(마르티노) 약사님, 보좌신부님, 수녀님 팀이 교리를 맡아 정말 수고가 많았다. 정말 수강생도 넘쳐났고 교사진도 일류급이었다. 그래서 성탄 전 12월 영세식에는 1년에 백 명 이상이 되었다. 

4년 동안 약 5백 명 정도가 하느님 자녀로 태어나는 기쁨과 축복이 있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의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축복이로다, 우전성당 만세입니다 .
 
▲ 전주 우전성당

전주 풍남제 음식코너

전주 풍남제 때 부스 한 곳을 얻어 1주일 동안 신자들이 음식을 해서 나르던 일이 생각난다. 여러 코너 중에서 우리 음식점이 손님이 제일 많았다. 푸짐하고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보좌신부는 설거지를, 수녀는 계산대에서, 나는 밖에서 손님맞이에 하루를 보냈다. 그때 수고해주신 봉사자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렇게 고단하게 일을 하면서 서로의 친교는 돈독해졌고 모두가 본당 일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신자들은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면서 본당 건축비 부채 해결에 힘을 보탰다. 나는 주일마다 수입을 공개했고, 부채 잔액이 줄어드는 것도 주보를 통해서 투명하게 공개했다. 풍남제 때 기대만큼의 수입은 없었지만 본당 친교는 기대이상이었다.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음식 맛도 일품이었다. 고마웠어요. 

본당 장례식장 운영

본당 안에 장례식장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이웃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와 어려움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차문제와 소음으로 시달렸음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웃에게 협조를 구하면서 운영은 계속되었다. 이곳에서도 상당한 수입을 얻어 본당 건축부채를 상환하는데 일조했다. 이때 봉사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웃 아파트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었는데도 협조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이러한 노력으로 3년 안에 8억 원이 넘는 부채를 해결했다. 본당은 그런대로 잘 운영되었다. 그 대신 교구비가 밀려 교구에는 양해를 구하니 기다려주었다. 주방에서 숙고해주신 어머님들과 장례예식을 준비하고 장지까지 함께 해주신 애령회 회원님들의 수고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주여, 그들의 수고에 하늘나라의 보상을 주소서, 아멘!

2000년 대희년 건축비 탕감

신자들 중에서 신축헌금 때문에 성당에 나오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마침 2000년 희년을 맞이하여 건축비 미납자는 탕감하겠다는 공지를 하고 미납자 문서를 폐기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달부터 미납금이 더 많이 들어오는 효과가 있었다. 아직도 한국 신자들의 신앙심에는 이상이 없다. 기쁨이 두 배로 돌아왔다. 감사를 드린다. 주님, 아름다운 이들의 마음에 천상의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그리고 표시나지 않게 수고해주신 본당 사무장 권현주(마리아), 강경님(글라라)님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 이 두 분은 초창기부터 본당 살림을 맡아주신 분으로 신자들에게 믿음과 신뢰가 있는 분들이다. 우전성당 보물이지요. 고마워요. 그리고 건축위원장을 맡으셨던 엄익도(시몬) 회장님의 수고에도 감사드린다. 
 
우전신협 대건신협에 통합

어려움도 있었다. 본당 신용협동조합이 경영악화로 신협 중앙회로부터 폐업신청을 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마침 IMF 때라 정말로 힘들었다. 나는 시내에 있는 큰 조합에 합병하는 것을 제안하였지만 재정난이 부실한 조합을 인수하겠다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사들에게 출자와 예탁을 부탁했고, 나도 전액을 이곳에 맡겼다. 

신자들에게도 5천만 원 원금보장을 홍보해서 재정을 정상화시켜놓고 전주 대건신협에 합병의사를 타진한바 이곳에 지점을 낼 계획이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겠다는 희망적인 답을 얻었다. 이런 전통을 거쳐 우전신용협동조합은 대건신용협동조합 우전지점으로 합병되었다. 

이때 도움주신 이사장과 임직원 그리고 조합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지금 대건신협 우전 지점은 성업 중이다. 계속적인 발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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