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금암성당에 온지 5년이 지났다. 그리고 은퇴할 나이도 되었다. 교구청에 은퇴신청서를 내고 주교님 면담으로 은퇴가 허락되었다. 막상 허락을 받고 보니 상주할 집도 알아봐야지 여러 가지가 복잡했다.
그러나 머리에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내가 이곳에 있을 때 사랑했던 신자들에게 무슨 선물이라도 하나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 모아두었던 글을 정리하여 <구름 위에 별을 빛나고>라는 졸저를 출간하여 은퇴선물로 드렸다.
책 머리글에 이 책은 사랑의 영수증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진심이다. 떠나면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글은 남아 있으니 영수증인 것이지요. 영수증 잘 보관하고 생각나면 기억해주셔요.
한편 이 자리를 통해서 고마움을 드리고자 한다. 은퇴생활에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도록 살림을 챙겨주고 사례금도 두둑히 주셨다. 은퇴 후에도 많은 시자들이 찾아와 주었다. 안부전화도 해주고 건강도 챙겨주시는 분도 계셨다. 고마워요. 기도로 보답하겠습니다.
은퇴 강론
분에 넘친 사랑, 참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저는 사제생활 40년의 사목생활을 마치고 은퇴하려고 합니다.
회고해보건대, 칠삭둥이 같은 죄인을 당신의 도구로서 써주심에 대하여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느님 앞에는 죄인이요, 인간 앞에는 허물많은 죄인에게 사제생활동안 너무나 과분한 축복을 주시고, 이제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사목생활을 통해서 만난 교회장상과 선배동료 사제 그리고 저를 기억해주신 모든 신자들께 이 자리를 통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제의 은퇴란 사제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요청이 있을 때 언제나 성무집행을 할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퇴란 사제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사제생활의 연속인 것이지요. 사실은 사제가 신자들 곁을 떠난다는 것은 혹자는 쓸쓸하고도 두렵다고들하지만 또한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유가 있어서노년을 즐긴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사제가 십자곁을 떠남은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고 홀로선 둥지가 아닐런지요. 그래서 저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홀로서기를 하는 용기를 가져봅니다.
그동안 금암성당에 있으면서 건강 때문에 은혜로운 강론도 못했고, 본당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채 자리만 지키는 부족한 사제였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신자들께서는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 참아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참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떠날 때는 말없이 조용히 떠나보내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했습니다. 이제 그때갸 되어 떠나려 합니다.
주님! 저의 은퇴생활을 사랑과 자비로 보살펴주소서, 아멘.
참회합니다.
1) 사제로서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눈물과 아픔에 동참하지 못하고 제 자신만 챙기는 이기적인 삶을 참회합니다.
2) 제가 강론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외쳤지만 언행일치의 삶을 살지 못했음을 참회합니다.
3) 제 자신의 부덕으로 상처받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서 참회합니다.
마지막으로 졸저 한 권을 놓고 갑니다.
금암성당 신자 여러분과 저를 기역해주신 모든 분들께 주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서석구(사도 요한) 신부
2012년 6월에 은퇴허락을 받고 기거할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고 나도 이곳저곳 발품을 팔았다.
체질상 아파트는 거부감이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싫어 도심을 벗어난 전원주택을 선호했다. 집을 지어 나가기는 시간이 촉박했고, 기존 지어진 집을 찾다보니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원화심 60-12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은 2012년 7월에 매입하고 명의는 교구청으로 했다.
급히 서두르다보니 집을 꼼꼼히 챙길 여유가 없었다. 남이 살다가 1년간 비워둔 전원주택이었다. 대지의 건물이 커서 좀 부담되었지만 선택하고 나니 마음은 가벼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옆에 텃밭과 공유지가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크기였다.
일단 선택한 것이니 빈터에다 차고를 짓고 정원을 꾸며보았다. 내부는 벽지만 새로 하고 이사를 했다. 이사 오기 전 본당 신자들이 와서 청소도 해주고 사무장도 오가며 수고가 많았다. 대충 정리하고 2015년 1월 25일 이사를 했다.
은퇴 후 첫 경험
처음 단독살림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이 서툴고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본당에서는 본당 자체에서 다 해결되고 아파트는 관리 사무소에서 해주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단독 관리해야 하니 자신도 없고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에 갈등이 심했다. 건강도 시원치 않고 신경이 예민하다보니 병이 생길 정도였다.
이런 어려움을 내가 선택한 것인데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심적 고통이 말할 수 없었다. 시내에 나가보면 이사할까 생각도 들고 이렇게 갈팡질팡하다가 1년이 흘렀다.
주방언니의 약속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주방언니가 외딴 곳이라 교통이 불편하다며 떠나버렸다. 이사 오기 전 집 구경도 시켜주고 함께 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사고를 냈다. 생각해보니 신중하지 못한 내 잘못이 컸다. 나만 좋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이 일로 마음고생을 하고 지내다 지인의 소개로 사람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편히 살아보려고 은퇴를 했는데 노후에 고생길로 드는 것 같아 심정이 복잡하다.
요사이는 생각을 바꿨다. 40년간 사제 생활은 본당의 도움 속에서 살았다. 단독으로 산다는 것도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 1년을 버텨보기로 결심했다. 은퇴생활은 낭만적인 행복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그것은 거리가 먼 생각이었다.
내가 은퇴하기 전 은퇴자들의 고충을 들었을 때 철없는 늙은이의 푸념이라고 생각했는데, 당하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인 것이나 외로움이나 이런 것은 아니었다. 생활의 변화와 건강문제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사제로서 주님의 도우심을 믿고 은퇴생활의 행복을 찾아볼 것이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 분 뜻대로 살아보기로 다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