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
다행히 이웃은 좋은 분을 만났다. 나보다 연세가 많으신 내외분이 농사일을 감당하기 힘드실 텐데 이사 올 때부터 도와주고 텃밭 가꾸는 데도 일손을 보태주신다. 개신교회 다니는 분으로 근면하신 분이다. 자제분도 가끔씩 전화로 건강을 물어물어 챙겨주신다. 이제는 친숙해져 음식까지 나누는 가까운 이웃사촌이 생겨 든든하다.
또 바로 뒷집은 천주교 신자로 부부교사다. 오고 갈 때 만나면 친절하게 인사할 정도로 좋은 이웃이 되었다. 위안이 된다.
올봄에는 뒷산에 올라 산나물을 캐고 매일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에서 마음의 치유도 받았다. 혼자 깊숙한 숲속에서 고향 생각을 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와 산나물을 캐러 다녔던 생각을 하면서 봄은 빨리 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삼복더위다. 빨리 여름이 갔으면 좋겠다. 가을이면 파란 하늘과 앞산에 단풍을 즐기며 자연을 즐겨볼 생각이다.
자서전 쓰기
나는 은퇴하고 나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다시 쓰는 인생노트’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6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자서전을 쓰는 교육이었다.
요사이 심정도 착잡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자서전을 써보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내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시작했으니 언젠가는 결과가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눈도 흐려지고 오자 투성이지만 손가락이 아직은 움직여주니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볼 작정이다. 2013년 여름은 워드를 하면서 더위를 잊고 살았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지만 시작했으니 반은 한 것이다. 남은 반은 쉬어가면서 완성해볼 작정이다. 서 신부, 힘내라!
요셉동산 주일미사
이곳에 온 후로 매일 미사는 집에서 하고 주일미사는 내가 몇 년 전에 원목으로 있었던 요셉동산 양로원으로 간다. 내가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깝기도 하고 자동차로 20분 정도면 된다.
이곳에 가면 몇 년 전 같이 살던 노인들도 만나고 강덕행 신부와 지정환 신부님과 원목신부와 합동미사를 드린다. 이곳은 내가 2년 동안 원목신부로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 주일날은 점심까지 먹고 온다.
언젠가 홀로서기가 힘들면 나도 요셉동산 양로원에 신세를 질지도 모른다. 이곳 생활은 단순하다. 건강을 위해 산보도 하고 주님 제자로 좋은 마침이 될 수 있도록 기도생활도 소홀하지 않고 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미리 써둔 유언장
나는 조상님 덕분에 모태신앙인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때가 되어 영세 받고 견진을 받아 하느님의 제자가 되었지요. 이것이 첫 번째 성소입니다.
두 번째 성소는 사제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지요. 지금은 사제생활 40년을 마치고 은퇴사제로 살고 있지만 주님의 축복이지요.
마지막 성소, 바로 선종하는 일입니다. 우리 속담에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선종의 복이라 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모든 삶이 주님의 부르심의 길이었습니다. 이제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모두가 주님의 축복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주님, 마지막 선종의 은총을 주소서!
저는 죽는 날 슬픈 날이 아니라 기쁜 날이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이 하늘나라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는 날 장례 미사 때 근조가 아닌 축 선종이란 글이 적힌 작은 화환을 받고 싶어요.
그리고 영정 사진은 웃는 얼굴이면 좋겠습니다. 시간나면 준비해놓겠습니다. 어두운 성가보다는 밝은 성가가 좋겠어요. 부활성가로.......
하느님 앞에는 죄인이요, 인간 앞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제가 아버지를 뵈오러 가옵니다.
두렵고 설레는 길이지만 아버지 찾아가는 길로 인도해주소서.
그리고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 성직생활에서 만났던 사제단,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은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드리고 싶습니다.
고별사가 길면 실례이지요. 왜냐하면 삶이 짧은데 말이 많으면 그것도 실례지요.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하늘아래 이루어지는 일에는 모두 다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모두가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어요.
존엄한 죽음을 위한 유언서
제가 사고나 또는 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거나 또는 이로 인하여 죽음에 임박한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과, 제가 몸담고 있는 전주교구 그리고 저의 치료를 맡고 있는 의료진에게 다음과 같은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저의 병이 의료진의 진단에 의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죽음을 연장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일체 거부합니다. 즉 뇌사니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거절합니다.
2) 고통 중에 있을 때 고통을 덜어주는 약물치료는 가능합니다.
3) 죽은 후에는 장기기증 희망자 등록신청대로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4) 사후에는 화장해주시고 장례는 교구 절차에 따라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은 제가 몸담고 있는 전주교구청에서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저의 요청에 의해 진행된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은 제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협조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14년 10월 20일 화심집에서 서석구 신부
자산 유언서
유언서란 살아 있을 때 자기의 생각이나 재산 유업 그리고 남기고 싶은 내용을 글로써 기록한 문서이다. 사제는 관례상 피정 때 일 년에 한 번씩 유언장을 쓴다. 왜냐하면 교회의 공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사후에 그 관리를 분명히 해두기 위해서이다.
유언장은 교구비밀 보관함에 보관되며 사후에 절차에 의해 연람된다. 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쓴다. 해마다 생각이나 재산목록이 달리질 수 있이 때문이다. 최신에 기록된 것이 유효하다.
유언서는 살아 있을 때는 공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언서는 사후에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교구유지재단 명의로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