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 (3화)

사업가가 된 아버지

할아버지는 형제가 둘이었다. 친 할아버지 서병석은 수분리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둘째 할아버지 서병록은 일찍이 서울 동성상업고등학교에 유학을 하셨고, 졸업 후 고향에 내려와 공무원으로 번암면장을 하다가 양조장 사업을 하시게 되었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사회는 극도로 혼란했고, 특히 지방 치안은 말이 아니었다. 당시 공비들은 마을 유지들이나 공무원들의 신변을 위협하였다. 양조장을 하시던 작은 할아버지도 몇 번의 위험이 있었다고 들었다. 둘째 할아버지는 불행히도 후손을 두지 못하였고, 건강도 좋지 않으셨다. 그래서 양조장을 큰집의 장손인 우리 아버지에게 맡기고 치안이 안전한 남원읍 동촌리로 이사를 가셨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공무원에서 사업가로 변신하셨다. 아버지는 사업가 기질이 아니고 전형적인 공무원 타입이셨다. 이런 성격 탓에 아버지 혼자 사업을 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장수군 장계면에 계신 처남인 어머니 바로 아래 남동생 이상용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내근을 하셨고, 외삼촌은 활동적이어서 주로 외근을 하셨다. 사업은 잘 운영되었다.

우리는 면사무소 근처 초가집에서 대궐 같은 기와집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번암면 노단리에는 기와집이 두 채밖에 없었다. 위편에 사는 장 씨를 장부자라고 불렀다. 토지와 임야를 제일 많이 소유했기 때문이다. 아래편에는 양조장인 우리 집이 있어 사람들은 위 기와집, 아래 기와집이라고 불렀다.

본채에서는 우리가 살았고, 옆채에서는 외삼촌이 살았다. 초등학교 다닐 때쯤 주조장으로 이사를 와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성장했다. 이렇게 약 15년간 사업은 성장했으나 불행하게도 서병록 작은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시자 작은 할머니와 양조장 상속권 문제로 고민하다가 아버지는 이곳에서 손을 떼시고 말았다.

우리는 이때에 학교에 다녔고, 지방에서는 부잣집 소리를 들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늦은 초등학교 입학

번암면 소재지로 이사한 후 나는 1년이나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때에는 학교가 멀어 나뿐만 아니라 제 나이 입학생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동창들 대부분이 취학 나이가 1~2년 늦는 것은 보통이었다,. 우리 반은 남녀공학 한 반이었는데 상급반으로 올라가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평균 나이가 많았다.

▲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외사촌 누나와 냇가에서

우리 학교에도 사범학교를 졸업하신 여자 선생님이 한분 오셨다. 단발머리 여 선생님은 6학년인 우리반 남학생과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았다. 여 선생님은 면에서 유일한 여자 공무원이었다. 화장한 얼굴에 약간 주근깨는 있었지만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 굽 높은 신발을 신었다. 말하자면 인기 짱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최경애 선생님, 지금도 이름을 잊지 않고 있다.

오줌싸개 사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3칸 겹집이었다. 우리 식구가 사용하고도 뒤쪽에 부엌달린 방 한 칸이 비어 있었다. 그 방을 자취방으로 내 놓아 천사 같은 여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선생님과 함께 등교하면서 학생들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선생님 방을 드나들며 잔심부름을 하면서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느 날 내 자존심이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잠자리에서 이부자리에 오줌을 싼 것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꼬. 나는 궁여지책으로 어머니가 아침 짓는 부엌에서 조심스럽게 옷을 말리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눈치를 챘다.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내 머리에 키(챙이)를 뒤집어 씌우고 손에 바가지 하나를 들려주시더니 선생님한테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고 하셨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소금을 얻으러 갔다.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부지깽이로 챙이를 두들기시며 “어젯밤 오줌 쌌구나.” 하시면서 나를 놀리셨다.

선생님은 내가 오줌을 싼 것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선생님이 알게 되어 창피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자존심이 무너지자 어머니도 여 선생님도 미웠다. 더 불안한 것은 선생님이 학교에 가서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소문내면 나는 오줌싸개 왕따를 당할까봐 종일 초조와 긴장 속에 지내야 했다. 다행히 그날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은 내 생애 첫 번째 자존심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그 후로는 그런 일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고생하고 있는 과민성 방광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여학생표 공략

5학년이 되면서부터 외모와 옷차림에 관심이 갔다. 한 반에 남자 45명, 여자 10명 정도였다. 나와 같은 반에 새로 이사 온 외사촌 누이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위로 우리는 같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학교도 같이 다니며 아주 친하게 지냈다.

누이는 사교성이 있어서 우리반 여학생들을 확실히 잡고 있었다. 나도 우리 반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자랑 같지만 나는 5~6학년 2년 동안 연속으로 반장을 했다.

우리 반에는 교장선생님 아들과 지서장(면 단위 지구대장) 아들이 있었다.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는 집안 환경이 여의치 않아 결석을 자주 했기 때문에 신뢰가 없었다.

학기 초 반장선거 때가 되면 4명이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분위기를 보면 교장선생님 아들은 담임선생님의 후원이 있었고, 지서장 아들은 어머니가 학교에 들락거리는 치맛바람이 있었다. 나는 경제적인 뒷받침과 외사촌 누이가 쥐고 있는 여학생들의 몰표가 있었다.

말하자면 여학생표의 몰표로 2년 연속 반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여학생들에게 흑기사 노릇을 하며 여자애들 고무줄놀이에 방해하는 놈들에게는 한방 씩 날려주었다. 몇 년 전 동창회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여자 동창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여자 동창들아, 나보고 싶으면 동창회에 많이 나와 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