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큰 여자 공포증
사람에겐 누구나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열등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1986년 교포사목을 4년간 하면서 그곳에서 여러 가지 경험과 재미있는 사건들을 많이 겪었다. 처음 가서는 미국성당을 시간제로 빌려 사용해야 했고, 생활도 미국신부와 사제관에서 함께 했다. 본당 신부와 영국계 보좌신부, 폴란드계 보좌신부였고, 동양계는 나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니까 4명이 공동생활을 함 셈이었다.
제일 불편한 것은 식사였다. 아침은 자유롭게 개인이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은 파출부 아주머니갸 해주었으나 내 식성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식사는 무료였다. 하지만 미국사회에 공짜는 없다.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대신 주일미사 때 영성체와 고해성사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씩 순번제로 사제관 일직을 서야했다. 나는 화요일 아침 9시~밤 10시까지 사제관에서 전화를 받아야 했고, 어떤 때는 병자성사와 고해성사까지도 해주며, 때로는 신앙상담까지 해주어야 했다.
키 크고 덩치 큰 여자들이 포옹할 때는 내 얼굴이
그녀의 가슴에 파묻혀 버리기 일쑤여서 곤혹스러워...
언젠가부터 인사를 할 때는 두 손을 합장하고 스님처럼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으로 대처...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줄테니 그 대신 자기에게는 한국말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렇게 지내다보니 친한 친구가 생기고, 식사초대를 받기도 하고, 한국 음식점에 가서 한국음식을 대접하기도 하였다. 나는 하루를 기쁘게 봉사했고, 그곳 미국 신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만나는 여자들 중에는 키 크고 덩치 큰 여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는 이들 앞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조금만 친해지면 악수는 보통이고 서로 포옹을 하기 마련이다.
가끔 그곳이 나에게는 곤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왜냐하면 키 크고 덩치 큰 여자들이 포옹할 때는 내 얼굴이 그녀의 가슴에 파묻혀 버리기 때문이었다. 정열적인 여자는 힘껏 안아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겨울에는 그래도 괜찮지만 한 여름에는 그 사람들 특유의 냄새가 기절할 정도로 지독했다.
그 다음부터는 키 크고 가슴 큰 여자들만 보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기발한 인사법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할 때는 두 손을 합장하고 스님처럼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설명을 해준다. 피부접촉을 안하는 것이 동양사람들에게는 가장 예의를 다 하는 인사법이라고 말이다.
그 뒤부터 미국인 본당 신자들은 나만 보면 두 손을 합장하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인사법으로 일단은 신체접촉을 피하게 되었다. 사람은 제 살길을 찾는 만물의 영장이다. 필요를 느끼면 필요한 만큼 발전해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교의 인사법이 우리 성당에서뿐만 아니라 애틀랜타에 있는 한국 불교 승려들에게까지도 소문이 났다. 어느 날 여승(女僧)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나와 식사를 한번 하고 싶으니 시간 좀 내달라는 내용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 여승이, 왜 신부님은 성당에서도 승려처럼 합장 인사를 하느냐고 그 사연을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비록 천주교신부이지만 나도 동양사람이기 때문에 동양의 인사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그럴싸한 변명을 하고 말았다.
내 속을 알리 없는 그 여승은 내 말에 감탄하며, 지금까지 미국사회에서 나와 같이 철저한 동양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며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사실은 그게 아닌데, 남의 속도 모르고.......
내용을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한 내 열등의식의 자구책이었는데 말이다.
내가 여기에 이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나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열등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열등의식이 어떤 때는 장점으로 사용할 때가 있다. 자기를 인정할 때만 말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 때문에 가슴 큰 여자만 보면 좀 두려운 생각이 든다.
신ㅂ무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요.
나는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