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사람 잡네
사제 초창기 어느 시골 성당에 있을 때 유치원 선생 문제로 자모들과 마음 상한 일이 있었다.
봄 학기가 시작되면 유치원 원아들을 모집한다. 그리고 선생님도 새로 채용한다. 아침 9시가 되면 병아리처럼 노란 가방을 메고 성당 마당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하루가 절로 즐거워진다.
어린이는 그 자체가 천사요, 귀여운 꽃이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라고 목청을 높여대며 부르는 노래와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소리도 견딜만 했다.
그런데 때론 여기에 어른들이 개입해서 분위기를 망가뜨려 놓는 적이 있다. 새학기가 되어 학교에 부탁해 교수 추천을 받아 채용한 선생님이 다행히 외모도 출중하고 아이들도 잘 가르쳤고, 그런대로 학부모들과도 무난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끝나고 당연히 출근한 줄로 알았던 선생님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는 것이었다. 알아보았으나 집에서도 시원한 대답이 없었다. 유치원은 개원을 했는데, 선생님이 없으니 난감한 일이었다. 다시 학교에 연락을 하여 추천을 받아 새로운 선생님이 왔다. 그전 선생님보다 외모는 좀 딸리는 편이었으나, 성격이 무난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자모회 대표가 나에게 선생을 바꿔달라고 했다
지난번 선생님보다 인물이 딸려서 안 되겠다는 것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초라한 할머니...
그리고 며칠 후에 자모회가 있었는데, 자모회 대표가 나에게 선생을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지난번 선생님보다 인물이 딸려서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거절해버렸다. 유치원이 공부하러 오는 곳이지, 선생님 얼굴 보러 오는 곳이냐고 타일러보았지만 몇몇이 합심해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나는 교육상 더 이상은 들어줄 수가 없어서 그들의 건의를 단호하게 거절하기로 하였다. 그랬더니 들려오는 말이, 신부는 여자 보는 수준이 형편없다느니, 여기 아니면 유치원이 없느냐고 하면서 결국은 그 자녀를 유리 유치원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다. 그 뒤 유치원은 정상적으로 잘 유지되었고, 나도 그 일로 더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어느 본당에 있을 때, 결혼 주례를 하기위해 혼인문서를 작성하던 중 호적등본을 살펴보다가 그 전 시골 본당 유치원에 다녔던, 학생이 이번 혼례의 신부감인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신부님을 뵙게 되어 반갑다고 인사까지 하게 되는 예의바른 규수로 성장해 있었다. 혼인면담을 다 끝내고 부모님들 접견이 있었는데, 신부 측 어머님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한참 자녀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보니 신부 측 어머니가 유치원 자모로 있을 때 선생님의 외모가 딸린다고 자기 딸을 우리 유치원에서 다른 유치원으로 옮겼던 바로 그 어머니였다.
나는 대화 중에 정확한 기억을 되살릴 수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지난 일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지금 여기서 전에 있었던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생각하다가 경사스런 일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모르는 척 지나가기로 했다. 그 어머니는 50대 후반의 중년을 넘어선 할머니였다. 외모를 그렇게 따지던 그녀였지만 그 날은 그렇게 초라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혼례를 올려주고 신부 측 어머니에게 따님을 잘 키워 오늘의 기쁨을 보시게 됨을 축하한다고 정중하게 인사도 드렸다.
나는 지금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그 어머니가 나를 정말로 몰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알고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해버린 것이었을까? 알았다면 이럴 때 사과라도 한마디 하면 얼마나 멋진 중년의 매력이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여자들의 마음은 나도 모르겠다.
요새 유행하고 있는 TV_CF 광고에서 “그것은 며느리도 몰라.”라는 그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다행히 딸은 예쁘고 예의바르게 성장한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외모 따위나 따지는 그런 여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모전여전’이라 했는데, 그 어머니와 그 딸이 안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위를 고르느라 마음고생께나 했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 결국 인생은 내 뜻대로 만은 안 되는 것을 인정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혹시 이 글을 보실 기회가 있으면 전화 한번 주십시오. 지나간 일을 따지기보다는 서로 젋었을 때의 자존심이 잠깐 상했다는 이야기라도 하면서 차 한 잔 나눕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