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관심병
신부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여성 신자들을 많이 만난다.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신부님, 저는 본당 신자는 아닌데요, 신부님께 면담을 청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 수가 있으십니까?”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영적 상담이라면 본당 신부님께서 자매님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본당 신부님과 면담하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하니까 “신부님, 그런 것이 아니고 본당 신부님께는 말씀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신부님께 전화를 드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러면 좋습니다. 전화 주시고 찾아오십시오.”하고 승낙을 했다.
이런 전화를 가끔씩 받기 때문에 조금은 예측할 수가 있었다.
하루가 지나 전화가 왔기에 찾아오라고 시간 약속을 해주었다. 약속된 시간에 한 중년 여성이 옷차림과 몸가짐에 신경을 쓰고 찾아왔다. 반갑게 맞아 주었고, 마음 놓고 말씀하시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잡아주었다.
그 여인은 입을 열지 않고 내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본당 신부님이 자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시니
속상해 죽겠다는 것...
그 여인이 대뜸 한다는 말이 “신부님은 듣던 대로 사람을 참 편안하게 대해주시고 귀한 시간까지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아부성 발언으로 나를 추켜세우더니 “신부님과의 면담은 비밀이 보장됩니까?” 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럼요, 본인이 원하시면 고해성사처럼 비밀을 지켜 드리겠습니다.”하고 약속도 해주었다. 나는 그 여인이 하도 뜸을 들이고 비밀보장까지 약속받기에 본당에 무슨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본당 신자가 상담을 오면 그 사람 신분에 대해서는 본인이 밝히기 전에는 일체 물어보지 않는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는데도, 그 여인은 입을 열지 않고 내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혹시 말하고 싶지 않으시면 그냥 가셔도 좋습니다.”하고 좀 다그쳤더니, 그때서야 말문을 열었다. “신부님, 저는 본당에서 레지오 활동도 하고 신심 단체의 장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안 사정이 있어서 레지오 활동도 중단하고 단체장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성당에 나가는 것도 재미가 없고 신자들 만나는 것도 피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새 성당에 나가면 본당 신부님이 자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시니 속상해 죽겠다는 것이었다. 저번 주일날 미사가 끝나고 인사를 드렸는데도, 보는 척 마는 척해버렸고, 미사 강론 때도 자기를 나무라는 말만 하는 것 같아 속상해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자주 듣는 것으로, 누구나 한 번씩 하는 여자들의 투정으로 받아 넘겨야 했다. 나는 그 정도 불평은 서론 정도로 생각하고 무슨 다른 말씀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었다. 참 싱거운 한판이었다.
그 여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본당 신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신앙까지 버릴 것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내용쯤은 하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충고해주었다.
신부는 공적인 사람으로 한 사람이나 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를 위해 함께 해야 할 공인이라고 설명을 해주고 나서, 자매님처럼 자기에게만 관심을 써달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자매님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협조를 구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은 또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신부님은 자기에게는 무관심하면서 왜 다른 사람에게는 잘해주느냐는 항변이었다.
이 여인은 내 말을 받아들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의견만 주장하려고 온 고집스런 사람이었다. 가만히 분석해보니 그 여인은 사랑이 결핍된 환자인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을 설득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 신자분의 본당 신부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제였고, 대인 관계도 좋으신 분으로 알고 있다. 또한 신자 사랑이 그만한 신부님도 안 계신데,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난감했다.
나는 그 여인을 돌려보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같은 사람은 우리 신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을까? 저 여인과 같이 다른 본당에 가서 내 흉을 보았을텐데.......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한다. 나도 그 여자들 입에 어지간히 오르락내리락 패대기쳐졌을 판인데. 정말 고민이었다.
주님 위해 몸바쳤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만, 기왕이면 좋은 사제로 남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신자들이여! 사제는 만인의 애인이 아닙니다.
자기만 챙겨달라는 어린아이 같은 사랑은 서로가 불편합니다,
사제가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길을 양보해주십시오.
사랑은 관심이라 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관심이 지나쳐 다른 본당 찾아다니면서 본당 신부를 흉보는 관심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