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손님
어느 시골본당에 있을 때이다. 그곳은 작은 읍소재지로서, 주일날 미사 참례수가 약 2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본당이었다. 또한 이곳은 무속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주민 수에 비해서도 전교가 잘 안 되는 지역이었다.
그리고 시내의 유지들이나 공무원들은 성당에 거의 다니지 않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한 것이 천주교 신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문을 배운 젊은이가 독신으로 산다는 데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신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이런 정보를 들은 나는 될 수 있으면 유지들과도 함께 어울리고, 사회 행사 때 초청을 받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주었다. 때에 따라서는 함께 운동도 하고 술 한 잔씩도 사양하지 않았다.
술이 떨어지자 내가 아껴두었던 양주까지 내놓았다
밤늦게 찾아갔을 때 신부님이 대화해주지 않았으면
오늘의 세례식이 없을 거라면서,그날 밤 신부님의
소탈하고 친절한 모습에 반해버렸다고...
이렇게 어울리다보니 나를 이해하는 주민들이 많아졌고, 신부도 우리 주민들과 함께 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신부님, 오늘 저녁 신부님하고 술 한 잔 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라는 약간의 취기가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시내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인데, 상당히 입담 좋고 그 사회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입심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즉시 그에게 술 한 잔 하자고 하면서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몇 분 후에 동료 몇을 데리고 술병을 들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술이 떨어지자 내가 아껴두었던 양주까지 내놓았다. 분위기가 참 좋았다. 술자리를 뜨면서 그 친구가 한마디 했다.
“신부님, 밤늦게까지 거절하기 않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신부님과 한번 사귀고 싶다면서 고마워했다. 사실 성당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였는데, 오늘 신부님을 뵙고 성당에 나올 마음이 생겼다면서 다음 주일부터 성당에 나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함께 왔던 같은 뜻을 두고 있던 동료들이었다. 정말 뜻밖의 큰 성과였다.
그들은 그 다음 주부터 교리를 배우고 6개월이 지나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그곳 성당에서 중추적인 사목회 임원직을 맡고 있다. 6개월간 교리를 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우리가 밤늦게 찾아갔을 때 신부님이 대화해주지 않았으면 오늘의 세례식이 없을 거라면서, 그날 밤 신부님의 소탈하고 친절한 모습에 반해버렸다고 말이다.
벌써 15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나에게도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다행한 것은 그들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인연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당사자는 약사였다.
그가 세례 받을 때는 내 세례명을 따서 ‘요한’이라 지어주었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약국을 개업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 그가 쓴 책을 한권 보내왔다. 그는 문학도이기도 하다. 나도 답례로 내가 쓴 책을 보내주었고, 전화도 몇 차례 했다. 그는 감정이 풍부하고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날 밤 특별히 만난 인연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얻는 인연을 맺어 주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런 인연이라면 매일 밤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싶다.
이 기회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 “인생 문제나 특히 종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은 주저하지 마시고, 가까운 교회나 성당을 찾아주십시오.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나의 사제생활도 올해로 27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숫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을 모두가 하나같이 다른 상황과 상태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어디에서 만나든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배웠다. 밤에 찾아 오듣 낮에 찾아오든, 술을 들고 오든 맨손으로 오든,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항상 기쁘게 맞아주실 것이다.
요한 형제님, 이 글의 소재인 당신과의 인연을 만들어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시는 모든 일 위에 하느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 글을 보시고 소식 한번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시 그리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