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항상 긴장된 생활이다
내가 처음 사제가 되어 보좌신부일 때의 일이다. 처음 보좌신부일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로웠으며, 한편으로는 긴장된 생활이었다.
그리고 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신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조바심 내며 살았었는데, 서품 받는 날부터 엄청난 신분상의 변화가 왔다. 비교해보면 사병에서 장군이 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감히 하늘과 땅 차이라고한 할까? 참으로 꿈도 많았고, 젊음을 불태우고도 모자라던 정열의 삶이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반가웠고, 젊은이들과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큰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희망을 갖고 사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음이란 이래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사제는 세상에 나가면 옷자락에 깃발을 달고 다니는 사람
행동 하나 말씨 하나에도 선의의 감시를 받는다고 보아야
지난 시절 나와 함께 했던 보좌신부님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열심히 살아주었고 지금도 그들은 성공적인 사목을 하고 있어
그러나 이러한 젊음의 날개도 사제는 접어두어야 할 때가 많다.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가장 구속이 많은, 창살 없는 감옥일 때가 있다. 사제는 세상에 나가면 옷자락에 깃발을 달고 다니는 사람과 같다. 언제 어디서나 신자들을 만나게 되고, 행동 하나 말씨 하나에도 선의의 감시를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세는 항상 긴장된 마음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어느 토요일 오후 중고등학생 특전 미사시간이었다. 사제관에 있는데 제의방 수녀님이 숨차게 달려왔다. 본당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는데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하자 학생들이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대답을 했지만 미사경본을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 하면서 미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면서 수녀님이 당황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급히 제의방으로 가서 장백의(長白衣)를 입고 신부님 곁에서 책장을 넘겨주어 겨우 미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때 얼마나 긴장되고 학생들에게 민망했는지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금 그들은 40대 후반의 사회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을 줄로 믿는다. 이 자리를 통해 그때의 일을 대신 사과드리며, 이 글을 읽고 기억이 나는 분은 소식 한번 주기 바랍니다.
나는 그 다음해에 본당 신부로 발령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독립적인 본당 사목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다행히도 본당으로 나간 지 2년 만에 보좌신부를 맞게 되었다.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내 사목에 날개를 달아주시는 것 같아 주님을 향한 찬미가 컸던 시절이었다.
지난 시절 나와 함께 했던 보좌신부님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왜냐하면 열심히 살아주었고, 지금도 그들은 성공적인 사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유신시대에는 정책적으로 지방 유지들과 신부들에게, 의식적으로 술자리를 자주 챙겨주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제들은 못 말리는 사람들로. 특전 대우를 받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유지들과 기관장들이 신부를 위해 저녁식사를 마련하겠다고 해서 보좌신부와 함께 식사대접을 받고 저녁 미사시간이 돌아온 적이 있었다. 마침 보좌신부의 미사차례였기 때문에 나는 내 방으로 들어오고, 보좌신부는 미사를 올리러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수녀님이 얼굴이 하얗게 되어 사제관으로 들어오더니, 보좌신부님이 미사경본을 넘기는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만 하면서 미사가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젊은 친구가 나와 함께 술을 마셨는데 아마도 실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성당 맨 앞자리에 가서 지켜보았다.
보좌신부는 나를 보는 순간 술이 깼는지 경본을 제대로 넘기고 있었다. 나는 신자석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보좌신부는 미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성당 문 앞에서 신자들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대신 전하고 양해를 구했다.
몇 년 전 보좌신부로 있을 때 본당 신부에게서 한방 당하고, 이곳에 와서는 보좌신부에게서 이 꼴을 또 당하고 보니 그놈의 술이 원수 같았다. 신부님 중에는 술을 잘 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미사 전에는 삼가주셨으면 한다. 거룩한 제단에서 술 취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거룩해 보이지 않는다.
나도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말을 했다고 술 좋아하시는 신부님들을 욕하지 마시기 바란다. 지나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는 과거를 회상해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왕에 신부가 취하려면 ‘主’께 취해야지 ‘酒’에 취하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악마는 사람을 찾아다니는데 너무도 바쁠 때는 그 대리자로 술을 보낸다.’ 세상에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사제는 바로 서야 하느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