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유학 (7화)

남원중학교 진학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를 떠나 타향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좀 두려웠지만 새로운 세상을 접해보는 호기심에 적응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번암에서 24km 떨어진 남원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왜 남원중학교를 선택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원에는 인문학교로 남원중고등학교가 있었고, 용성중고등학교는 농업계 학교였다. 부모님께서 상급학교를 염두에 두어 그리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1학년은 2반이었는데, 나는 1반에 배정되었다. 입학하고 처음 만난 얼굴들이라 교유관계가 서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 초등학교와 다를 뿐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 한 분이 모든 과목을 가르쳤는데, 중학교는 과목마다 선생님이 다르기 때문에 선생님들을 익히는데 약간은 혼란이 왔다.

나는 담임선생님에게 신임을 얻어 학급반장을 하였다.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초등학교 경력을 인정받아 그리된 것 같다. 중학교 때도 3년 개근상을 받은 것만은 자랑하고 싶다.

다음 해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담임선생님이 바뀌고 나보다 공부도 잘한 친구에게 반장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3학년으로 올라가서는 다시 반장을 맡았다. 이때에 선생님 신임만 믿고 학우들에게 못되게 굴은 적도 있었다. 철없던 시절 객기였다. 반 학생 일부가 무리를 지어 나에게 노골적으로 반항하는 시위가 있었다.

두려웠던 생각도 떠오르면서 못되게 굴었던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왕따’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몇 년 전 동창회에서는 그 친구와 이전 일을 기억하지 않고 가장 친한 친구로 건배를 했다. 세월이 지나 모두 잊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그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친구여, 미안하다. 그리고 반갑게 맞아준 너의 우정이 고맙다.

친구 도시락사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다. 반 친구 중에서 도시락에 치즈를 싸오는 부잣집 친구가 있었다. 식욕이 왕성할 때라 3시간 마칠 즈음 몰래 절반 쯤 떼어내 훔쳐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친구는 그래도 아무 말 없이 그냥 넘어가 주곤 했다. 나도 그 범인 중의 하나다.

대부분 도시락 반찬은 멸치조림이었고, 치즈는 아무나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계란말이를 싸온 친구의 도시락도 손을 댄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성깔이 고약해서 담임선생님께 고해 바쳐서 곤욕을 치렀다.

▲ 좌측부터 진재석, 노광국, 서석구

삼총사 서클 별무리

3학년 때 가장 친한 3총사가 많았다. 나와 진재석, 노광국이다. 나는 노광국이네 집에서 몇 달간 하숙을 했고, 진재석은 옆집에서 자취를 했다. 3학년 때 진재석은 학생회장을, 나는 대대장을 하였으니까 우리는 학교의 간부를 독차지했으니 그야말로 실세였다.

졸업식 때 진재석은 전체 수석을 하여 교육감상을, 노광국은 학교장상을, 나는 동문회장상을 받았다. 3총사가 상을 독차지하였다. 졸업식을 마치고 기념으로 시내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 한 가지 소개하고 싶은 일이 있다. 3학년 중에서 공부께나 하고 괜찮아 보이는 친구 12명을 모아 별무리라는 서클을 만들었다. 학교에서는 대단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패거리로 놀거나 학교에 폐를 끼치는 그런 조직은 아니었다. 대부분 모범생들이었다.

시간이 나면 학교 옆에 대복사라는 절에 자주 갔다. 광한루원은 우리들의 아지트로 자주 모이는 추억의 장소였다. 나는 짬짬이 금지되었던 극장도 출입했다. 탈선이 아니라 영화 팬이었다.

지금까지 서로의 주소록을 가지고 안부를 물으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대소사 때 만나기도 한다. 가끔씩 친구들의 근황을 알려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다. 고맙다. 이렇게 중학교 시절도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나니 더욱 그렇다.

수학여행

이 글을 쓰면서 졸업사진을 찾아보았다. 수학여행 때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이라 함께 찍은 친구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구경한 장소는 기억할 수 있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왕릉, 박물관 등이 기억되지만 초등학교 때처럼 우물안 개구리의 추억은 별로 없다.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을 기억하며 사진첩을 닫았다.

며칠 전 중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부전화였다. 앨범 사진첩을 안경 너머로 들여다보니 지금 내 모습은 너무 변해 있었다. 아 옛날이여!

하숙생활과 성당이야기

중학교 입학하고 잠깐 동안은 농고에 다니는 동갑 사촌과 고모님 댁에서 하숙을 했지만 대부분은 다른 집에서 하숙을 했다. 초등학교 때 제일 좋아했던 친구 배연효는 용성중학교에 다녔는데, 잠시 지금의 쌍교동 성당 앞에서 함께 하숙하였다. 남원 시내에서 학교까지는 약 2킬로미터쯤으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였다.

주일에는 성당에 빠지지 않고 다녔다. 때에 따라서는 복사도 했다. 당시 쌍교동 성당 건축을 하게 되었는데 요촌강변에서 자갈을 주운 일이 생각난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호랑이 신부님이라고 소문난 박성운(분도) 신부님이 남원성당을 건축할 때였다.

중학교 그룹친구들과의 그룹사진도 성당에서 찍었다. 나는 사춘기 시절 별다른 사고나 아픈 기억이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다. 모두가 종교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