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15일
나는 올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입장 때 애국가를 불렀다. 그것도 4절까지 말이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흥분도 되었다.
1945년 해방되던 해 나는 4살 바기 어린애였다. 그러나 55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맞는 광복절은 가슴이 뛰고 무언가 희망이 넘쳐흐를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해방된 그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 민족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남과 북이 원하지 않는 38선이라는 원한의 철조망으로 가로막히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기쁨과 슬픔을 어렸기 때문에 잘 모른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전쟁으로 이웃집 아저씨가 죽었다는 것과, 우리 마을도 낮에는 아군이 부락을 지키고 밤이 되면 산에서 빨치산들이 동네로 내려와 식량과 물품을 강탈해가는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부모님들은 식량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루밑이나 부엌 장작더미에 굴을 파고 식량을 묻어 두었다.
또 기억나는 것은 어느날 밤 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공개재판이라는 것을 한다고 해서 그곳에 가려고 떼를 쓰다가 어머니께 심한 꾸중을 들은 일이다.
화해의 몸짓은 있었지만 자주적 단결의 무능으로
그러나 2000년 8월에 분단50년을 뛰어넘는 역사의 한 장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도 두 패로 갈리어 항상 긴장관계에 있었다. 그 후 남과 북은 이념과 체제의 우월성을 따지며 50년이 넘도록 적대관계로 대해 오지 않았던가. 참으로 어리석고 헛된 세월이었다.
그동안 남과 북 서로 간에 화해의 몸짓은 있었지만 주위 열강들의 무관심과 우리 민족의 자주적 단결의 무능으로 인한, 그리고 정권유지를 위한 적당한 긴장관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않았던가? 참으로 아쉬운 세월이었다.
그러나 2000년 8월에 분단 50년을 뛰어넘는, 역사의 한 장을 여는 큰 일이 생겼다. 남과 북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남으로써 그동안의 불필요한 오해나 소모적인 정쟁을 해소하고, 서로의 신뢰와 믿음이 쌓여 이제는 이념을 초월한 상생의 길을 걷기로 합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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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8월 15일 남북이산가족 만남 [출처 ; e영상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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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시작이다. 처음부터 큰 일을 하기보다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인도적인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그들의 만남으로부터 통일의 길이 트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2000년 8월 15일에는 그 벽이 무너지는 기쁨을 나타내고자 미사입장 노래로 애국가를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신자들도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모두들 좋아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함께 불렀다.
사실 우리 민족의 해방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국인 미국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한 분단의 비극도 미·소 강대국들의 패권다툼에 의한 것이었다. 힘없는 민족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나라도 유엔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정도가 되었으며, 선진국 대열로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동안 해방과 분단이 강대국들의 힘에 의해 주어졌고 조국의 통일만은 우리 스스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다행히 남과 북의 정상들은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정상의 만남이 있지 않았는가?
나는 이 기회에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한 가지 있다. 그동안 우리는 50년이 넘도록 기다려왔다.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면 될 일도 안 될 수가 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자. 너무 서두르지 말자. 하나하나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TV앞에서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고 함께 울고 말았다.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희망을 가지고 순서를 기다리자. 이제는 이런 불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끊긴 길을 새로 놓고, 마음의 장벽도 허물어 버리고 서로가 치유되어 하나의 통일과 조국이 되어야 한다. 나는 소망한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인가? 나도 통일의 내 몫을 하고 싶다. 그것이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되더라도 기쁘게 지고 가겠다. 통일을 향해 남과 북이 손을 마주 잡아보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칠천만 동포가 하나 되는 모습을 나는 꼭 보고야 말겠다.
통일의 그날을 기원하면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성모님과 그리고 순교 성인들에게 전구를 빌어본다.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