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새 젊은 세대들에게 비웃음이나 사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한번쯤은 이야기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여기에 적어볼까 한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인 1960년대 초는 누구나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때는 근검절약을 하지 않더라도 절약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삶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아껴 쓰고 절약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몇가지 들어보면, 아랫방과 윗방의 가운데에 구멍을 내고 형광등 하나를 반 쪽식 나누어 써야했고, 연탄 한 장을 아끼기 위해 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형제가 많으면 대물림 옷도 입었고, 교과서도 누구나 대물림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때는 아무런 불행도 없었다.
나는 궁핍한 생활을 해본적은 없다
그러나 내 손에 한번 들어온 것은
망가지기 전에는 버리는 일이 없다
그 당시 선생님들이 근검절약 강의를 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던 내용이 독일국민들의 근면성이었다. 세 사람이 모여야 성냥개비 한 개로 담뱃불을 붙인다는 말과, 목욕탕에서 물을 어떻게 아껴 쓰는 지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받은 기억이 난다.
나는 1967년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할 때 교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새로 맞추었는데, 교복은 집에서 해주었고, 구두는 추천 신부님께서 사주셨다. 나는 신학교 6년 동안 교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소중히 아껴 입고 신었다.
신학교 때는 기숙사생활을 하기 때문에 주로 슬리퍼를 신는 것이다. 그러나 외출하거나 방학 때가 되면 구두를 많이 신게 된다. 방학 때 구두 굽이 닳은 것은 개학하고 나면, 구두수선 하는 사람한테 수선한다. 그때 나는 운동화도 기워 신고 구두 뒷 굽도 갈아끼워 신었다.
6년 동안 한 켤레의 구두만 신고 생활하다보니 바닥을 두 번 갈고 뒷굽은 네 번이나 갈았다.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 나보고 “학생 같기만 하면 구두 수선하는 사람은 살맛이지만 구둣가게는 망하겠다.”고 하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나는 궁핍한 생활을 해본적은 없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물건을 아껴 쓰고, 내손에 한번 들어온 것은 망가지기 전에는 버리는 일이 없다. 물건에 대한 애착이라기보다는 하나라도 소홀하게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졸업할 때 그 구두를 버렸다. 그리고 그때 같이 버리고 온 것이 작은 손톱깎이였는데, 이것이 버리고 온 것의 전부였다.
요새 ‘N세대’의 지나친 소비와 낭비를 볼 때면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다. 멀쩡한 것도 모양이 구형이라고 바꾸고, 깨끗한 가구도 색이 싫다고 뜯어내고, 아직 입을만한 옷가지도 요행이 지났다고 버리는 것을 볼 때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곤 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물건을 잊어버리면 얼마나 근심하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학교에서 물건이 주인을 기다려도 찾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경제가 좋아졌다고,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선진국이 되었다고 근검절약을 소홀히 하면 큰 낭패를 본다.
근검절약은 삶의 지혜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시대도 있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저렇게 펑펑 쓰고 버리는 모습의 ‘N세대’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을 좀 더 살아온 우리들이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모범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렇게 마구 쓰고 버린다면 한정된 지구의 자원이 남아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양복을 한 벌 맞추라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있는 옷으로도 충분하고, 양복을 맞추어도 대물림할 자식이 없으니 아까워서 못하겠다고 하였더니, 나보고 알만하다고 하면서 헌금으로 주고 갔다 .
30년 전 한공열 주교님께서 돌아가시고 유품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가방 하나를 구입했고, 이사 때마다 그 가방에 제의를 넣고 다닌다. 그 가방을 한공열 주교님이 30년은 쓰셨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시 30년을 쓰고 있다.
내가 쓰고 나면 누가 대물림을 할지 고민이다. 다음 사람이 대물림하여 100년이 넘는 유품으로 남기고 싶다. 이 글을 읽고 후배가 나타나면 그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나는 노랭이는 아니다. 쓸 때는 쓰고 절약할 때는 절약한다.
절약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있을 때 절약하고, 없을 때 나눠 쓰고, 귀할 때 챙겨 쓰자.
모든 사람들이 근검절약하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뿐인 지구의 자원을 오래오래 보존했으면 좋겠다.
절약은 없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할 사회 공동선이다.
